한국어 읽기 전문

1. 을사늑약
우리 한국인에게 우리 스스로를 멸시하도록 덧씌워진 일본의 교육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나만해도 옛날 학교 다닐 때 지금은 을사조약 혹은 늑약이라고 부르는 것을 을사보호조약으로 배웠다. 일본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맺은 조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을사조약으로 표기한다. 왜? 왜 조약이라고 표기할까? 조약이라고 표기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에서 그걸 아직 그대로 조약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걸 조약이라 표기하는 단 하나의 이유라도 대 보라고. 도대체 아직도 우리가 독립국인지 아니면 일본의 자칭 보호를 받고 있는 나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역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있나?
일단 조약과 늑약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조약이란 두 나라가 대등한 위치에서 강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서로 사인한 협정을 말한다. 즉 어느 한쪽이 우세하거나 약하지 않은 둘 다 윈윈할 수 있는 평등한 협정이다. 반면 늑약이란 강압적인 힘에 의해 강제로 맺어진 조약을 말한다. 바로 우리 을사늑약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을사늑약은 이 협정을 찬성한 을사5적,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만 참가하여 일본과 사인했다. 전체 정부의 대표자도 아니고 당연히 황제였던 고종도 아니고 이 5명의 역적이자 매국노들만 참가해서 사인했다. 그리고 당연히 고종은 이 협정을 비준하지 않았다. 즉 이 을사늑약이라는 협정은 그 자체가 무효이거나 이 을사5적들과만 관련이 있는 협정이다.
이 5인은 대대손손 일본의 보호 하에 떵떵거리며 살아오고 있다. 이들에게 을사보호조약은 너무도 옳은 표기이다. 하지만 거기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관련이 없어지고 그 협정이 무효이니 일본이 모든 것을 강제로 지 마음대로 지랄을 한 것이고 이 자체에 대해서도 일본은 사죄하고 필요한 배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라에 이처럼 비극적인 일을 초래한 을사5적을 부관참시라도 해서 그들의 죄를 처벌하고 당연히 그 직계 방계 모든 가족들의 재산과 모든 것을 추적해 그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몰수하고 그들을 일본으로 추방해야 할 것이다. 그곳으로부터 보호받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어쨌든 이 을사5적의 일본에 대한 헌신으로 맺어진 을사늑약 때문에 우리는 일본에게 외교권을 넘겨주게 되었고 일본이 통감이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우리 외교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우리는 독립국가가 아니라 일본의 지배 하에 이미 들어간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이 있기 직전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비밀협약도 있다. 이름하여 카쓰라 태프트 밀약. 일본 장관인 카쓰라라는 놈과 미국 장관이고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태프트라는 놈이 만나서 한 사인이다. 내용은 미국이 필리핀을 먹고 일본이 조선을 먹으며 둘 사이에 서로 모른척 하기로 한 내용. 그리고 이 사인을 주도했던 당시 미국 대통령 씨어도어 루즈벨트는 뒤에서 일본을 지원하면서 러일전쟁을 종식시키는 공적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런 그 놈 덕분에 일본에게 먹히고 철저하게 수탈당한 우리는 뭔가? 힘이 없으면 이렇게 된다. 힘 있는 나라들이 서로 힘 없는 나라를 먹어 치우고 서로 모른척하고. 이것이 힘의 논리를 따르는 제국주의이다. 어쨌든 이 사건이 있은 후 바로 을사늑약이 을사오적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것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절대로 을사조약이라 표기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비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을사늑약에 대한 반발로 고종은 헤이그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른바 헤이그 밀사사건이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 세명이며 동시에 뒤에서 끝까지 이들을 도왔고 그 이전과 이후에도 한국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표현한 호머 헐버트 Homer Bezaleel Helbert 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이들을 지원했다.

2. 호머 헐버트
잠깐 여기서 헐버트 박사(Homer Bezaleel Hulbert, 1863~ 1949)에 대해 알아보자. 정말 우리나라를 우리보다 더 사랑했던 진정한 한국인이 그였다.
그는 선교사였고 사학자였고 언어학자였고 당연히 교육자였다. 그는 실질적으로 한국의 독자적인 존립을 위해 그의 평생을 바쳤다. 그는 독립신문 발간을 도왔고 YMCA 를 통해 사회봉사를 실천했으며 한국어 연구와 보급에 앞장선 한국어 학자였다. 그리고 고종의 밀명으로 헤이그 밀사들을 도왔다. 하지만 헤이그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오히려 한국에 입국이 금지되어 미국에 목사로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미국 전역과 전 세계의 각종 회의와 강좌에서 일본 제국의 침략을 규탄하였고 한국의 독립에 관한 글을 썼으며, 1918년에는 파리 강화회의를 위한 ‘독립청원서’를 여운홍과 함께 작성하였다. 그는 1919년 3·1운동 후에는 이를 지지하는 글을 서재필이 주관하는 잡지에 발표하였고, 미국상원 외교위원회에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하였다. 1942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국자유대회에 참석하였다. 1944년 그는 ‘한국문제연구회’에서 간행하는 ‘한국의 소리’라는 책자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을사조약 직후 고종황제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동양의 역사가 바뀌었고, 미국이 친일 정책을 썼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시각은 어느 정도 옳아 보인다.
만일 미국이 조금 더 멀리를 보고 카스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 필리핀과 조선을 맞바꾸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세계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을지도 모른다. 태평양 전쟁 뿐 아니라 그 이후 일본이 세계를 재폐하는 것도 결국 미국 덕분이며 오늘날 중공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결국 전세계가 머지않아 중공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것도 결국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어떤 나라도 미국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미국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라는 문제와 연계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현명하고 얼마나 멀리를 보는가와 연계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전혀 이들이 현명해 보이지 않고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대충 처리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이 크다. 그것도 아니라면 소탐대실이 미국의 정책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용어라 볼 수도 있겠다.
다시 헐버트에게로 돌아가자.
헐버트에게는 두가지 소원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치게 되었다. 첫번째는 통일된 한국을 보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고종의 내탕금을 찾는 것이었다. 고종은 자신의 사유재산인 내탕금중 상당금액을 1903년 상해에 있는 독일계 덕화은행에 예치해 두었는데 이 사실을 헐버트에게 비밀리에 알리며 이를 찾아 대한제국의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할 것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이미 일제가 이 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빼돌려서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헐버트는 포기하지 않고 변호사를 고용해 통감부 초대 외무총장 나베시마가 쓴 인출금 영수증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들을 모아 진술서를 만든 다음 미국 의회에 제출하는 등 돈을 돌려받으려는 노력을 계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나이가 여든이 넘은 1948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인출경위를 추적한 보고서와 관련 서류 일체를 보내기도 했다.
1949년 광복절에 그는 우리나라의 초대를 받아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우리 땅에 돌아왔다. 그때 그가 내한했던 목적 중 하나는, 40년전에 일제가 고종황제의 독립운동자금을 불법적으로 갈취했다는 사실을 증거와 함께 널리 알리고, 일본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하여 그 돈을 되찾음으로써 고종황제와 했던 약속과 40년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특사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는 또한 한글과 한국문화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썼으며 특히 한글 띄어쓰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도록 한 장본이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안중근 의사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뤼순 감옥에서 경찰에게 “헐버트는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관련 15권의 책을 썼고 200편의 글을 남겼으며 “사민필지”라는 최초의 한글 교과서를 썼으며 주시경 선생이 바로 그의 제자이다.
그는 1949년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내한하였지만 오랜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입국 7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내가 젊은날 사랑했던 한국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지에 따라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헐버트보다 더 대한제국을 사랑했을까?
그는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받았고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상 헐버트에 대한 내용은 위키백과 참조.)
어쨌든 이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 당하게 된다. 민비를 죽이더니 결국 고종까지 쫓겨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고종이나 민비가 훌륭했냐 나빴냐를 따질 필요는 없다. 어쨌든 그들을 평가하고 상이나 벌을 주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지 다른 나라에서 암살하고 쫓아내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그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개새끼들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3 찌질이가 된 한국인
고종이 쫓겨난 후, 다음 단계는 1907년 정미조약.
헤이그 밀사 사건이 있은 직후 일제는 고종을 밀어내고 순종을 황제로 바꾼 후 정미조약이라는 것을 맺었다. 이 역시 매국노들이 주도한 일이다.
정미7적이라는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 이라는 놈들이 모여서 사인했고 한국은 결국 모든 권리를 상실하고 모두 일본에서 파견하는 통감이라는 놈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곧 일본은 우리 군대를 해산했다. 외교권도 없고 나아가 군대가 없는 나라? 그건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 1910년 경술국치가 있기 이전 이미 조선은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일단 우리를 집어 삼킨 후 일본의 대조선 정책은 조선인 말살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아주 지능적인 방법으로.
기본은 조선인을 3류 시민으로 규정하고 능력도 없고 머리도 나쁘고 말도 안 듣고 맨날 서로 싸움질만 해대고 단합도 안 되고 그냥 두드려 맞아야만 뭐라도 하는 피동적이고 한심한 인간, 이것이 일본이 만들고 싶어했던 한국인에 대한 정의였다. 그냥 무능하고 멍청한 모지리였다. 우리끼리 싸우고 서로 멸시하고 못잡아 먹어 안달이고 매일 두드려 맞아야만 말을 듣는 한심한 3류 시민. 그리고 3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 정책을 시행했고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조선인이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일본이 원하는 3류시민이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런 교육을 받고 그렇게 세뇌된 사람들은 아직도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한국인들을 3류시민이라 여기고 있다. 그리고 마치 나만 아닌듯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일본이 원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입맛에 맞게 조리된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나는 깨어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른 조선사람들은 한심하고 맞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많은 한국인들. 우리를 서로 멸시하게 만든 교육. 이것이 일본의 한국인 교육이었다.
일본이 지배하는 35년간 아니 나아가 지금도 조선인은 그냥 맞아야만 말을 듣고 일본인 아래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며 살아야 하는 정말 멍청이였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문화나 이런 것들도 다 3류라고 칭하고 우리의 역사를 바꾸어서 땅 덩어리도 이 한반도 안에서만 아둥바둥 서로 싸우던 찌질이들로 만들었다.
이게 일본이 우리를 규정한 방식이고 그리고 너무 불행하게도 아직 수많은 한국인들이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은 저게 문제야라는 말을 하면서. 이건 정말 너무도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 일본의 정책은 정말 성공했다. 많은 한국인이 다른 한국인을 멸시하며 저러니까 조선놈들은 안돼라는 말을 되 뇌이고 있다.
이는 사실 너무 너무 심각한 현실이다. 특히 다음 세대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 아이들 역시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에게 물었을 때 우리가 선진국이냐는 대답에 확실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들 선생님들의 생각이 그렇고 그들 부모의 생각이 그럴 것이다. 이건 정말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세대가 우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니…
그 어떤 문제보다도 심각한 문제가 이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 오히려 외부에 대한 경외심이 더 높다니…. 그래서 세계 최고인 삼성 갤럭시를 쓰는 대신 어린아이들은 아이폰을 쓰고 있단다. 맹목적으로 그것이 뭔가 자신을 더 있어 보이게 만든다 생각하며. 이건 너무 너무 너무 심각한 문제다.
이것이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덧씌운 굴레에 맞추어져 성장한 한국인이다. 1900년대 초에 시작된 이 작업은 아직도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 머리 속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하긴 1945년까지 이런 조선인 변조 작업이 진행되었고 그 장단에 춤을 추던 놈들이 지도층에 있던 놈들이었고 그러니 그놈들이 보기에 그냥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일반 백성들이 뭐가 대단하게 보였을까? 당연히 그냥 한심한 무지랭이 무식쟁이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당연히 일본이 망하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언제나 떵떵거리며 살 것이라 확신하며 자신의 자리를 누렸다. 자기가 아닌 다른 조선인들을 멸시하며.
그래서 세부류의 조선인들이 생겼다. 자기 스스로가 조선인인 것을 후회 혹은 거부하며 스스로 일본인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려던 친일파, 국적이나 국가는 관심 없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던 대다수의 시민 아니 이때는 시민이 아닌 국민들, 그리고 이 상황을 거부하고 내나라를 되찾기 위해 뛰어든 독립파.
우리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이들 중 첫번째인 친일파들에 의해 조정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들이 교육받은 놈들이었고 권력을 가지고 있던 놈들이었기 때문이며 중간에서 눈치를 보던 이광수와 같은 지식인들은 일본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친일파로 돌아섰다. 독립파들은 소수였고 어떤 권리도 가지지 못했고 대다수의 국민은 일본이든 조선이든 무관심했다.

4 친일파와 새로 시작되는 역사 찾기
모든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은 당연히 친일파들이다. 이들은 앞장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부끄러워했고 그 무식한 조선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깊은 참회를 거듭했으며 그렇게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던 놈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혹은 이들의 후손들이 우리 모든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남아 있다.
친일파들의 관심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 부끄러운 조선인 피를 뽑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정 자랑스러운 일본인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이들은 친일 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나 혹은 그것의 정당성 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조선인을 버리고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큰 행복을 느꼈으니까. 아마도 모든 죄를 용서받은 예수의 제자 와도 같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친일이란 정말 진심이었고 감사함 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강압적인 방법으로 친일파가 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조선인임을 부끄러워했을 것이고 할 수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본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정말 진심이었다.
왜?
우선 이때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문제는 조선이었다. 사실 조선의 건국 자체가 문제였다.
조선은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건국되었나?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먼저 필요할 것이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고대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쓰였나? 이는 우선 우리 민족의 마지막 왕조 국가였던 조선에 의해 쓰였고 이후 일본에 의해 완성되었다. 일본이 굳이나 우리 역사서를 새로 쓴 이유는 바로 우리 민족이 과거부터 별볼일 없던 민족이고 굳이 존재할 가치도 없는 민족으로 만들기 위함 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쓴 역사를 믿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3류 국민이라고 인정하는 꼴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소위 강단 사학자들, 즉 이병도라는 놈 이후 조선이 별볼일 없는 민족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하면서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에 의해 우리 역사는 철저히 한반도 내에서 일어난 일로 축소되었고 우리는 주로 당파싸움이나 해대고 별로 이룬 것도 없는 그런 나라로 전락되었고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아니 너무도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즉 별볼일 없는 민족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무언가를 감추려고 해서 감출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그 이전에는 교회에 대해 저항하던 사람이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모두 무시되고 잊혔다. 왜냐하면 그냥 혼자의 헛소리로 끝났으니까.
그렇지만 마르틴 루터는 파문당했다. 그 이유는 그의 생각이 그만의 헛소리가 아니라 전 유럽인에게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출판이라는 과정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의견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대에 비견될 수 있는 시대다. 여태까지 역사라는 것은 고서적에 대한 접근권이 있고 또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소수 사람들에 의해 자기들끼리 짬짬이 모여서 얘기하는 굉장히 한정된 영역이었다. 아마도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특히 역사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점점 더 일반인들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유튜브를 통해 그 접근이 시청각적으로 바뀌면서 정보 공급에 혁신이 찾아왔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혼자 보고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정보를 시청각적으로 풀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지금은 우리의 과거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물론 근거 없이 헛소리만 떠드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과거 우리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 공통 의견은 우리 역사가 한반도에 국한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5 한국의 사학자들
조선은 1392년 건국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조선 건국은 그때까지 중국과 만주 대륙에 걸쳐 있던 우리의 땅덩어리를 축소시켰고 결국 우리를 중국에 속박되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럼 도대체 조선이 멸망시킨 고려는 어느 정도의 땅덩어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가?
사실 고려뿐 아니라 고조선부터 시작해 우리의 과거 모든 나라 영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정말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오늘날 배우고 있는 우리 역사라는 것은 실제로 우리 역사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아니 적어도 땅덩어리에 관한한 우리 역사가 분명 아니다.
그나마 눈꼽만큼이라도 양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일부 사학자들은 우리가 중국과 형식적인 사대를 맺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중국에 실제로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그런척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 처음부터. 아니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우리는 중국과 일종의 형식적 사대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가 맞다.
우리가 중국에게 사대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중국이 우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대해왔다. 이는 연대만 보아도 너무 간단하게 파악된다.
중국 역대 왕조를 통틀어 평균 존속기간을 보면 한 왕조가 80년을 넘지 않는다. 통일했다고 얘기하는 진나라 15년, 한나라 18년, 수나라 38년, 당나라 289년, 송나라 167년, 원나라 97년, 명나라 276년, 청나라 296년.
게다가 수 당 원 청은 중국 화하족도 아니다. 이들 나라 존속기간이 보이는 것처럼 이렇게 짧은 상태에서 우리 나라 삼국과 고려가 사라진 나라들에게 충성을 바쳤다고? 반면 우리의 역사는 기본이 500년이다. 500년을 존속하는 나라가 80년도 버티지 못하는 나라에게 계속해서 사대를 했다? 귀신을 섬겼다는 것인가? 정말 지나가는 개가 다 웃을 일이다.
정말 어떻게 말을 해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지난 번 시진핑이라는 독재자가 한국은 원래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라고 말했다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지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데…
실제로 중국은 끊임없이 동이족들에게 지배당했고 그로 인해 현재 중국 땅 동쪽은 아예 진출도 못하고 시안 중심으로 살던 작은 나라였다. 그들은 원래부터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었고 그럴만큼 큰 나라도 아니었다.
사대는 우리가 중국에게 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우리에게 해왔고 단지 조선이 건국되고 땅덩어리를 잃어 버리면서 그 방향이 뒤집혔을 뿐이다. 실제 조선은 명나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대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과거에 역사는 정말 전공을 한 사람들만이 연구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기록이 한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웠고 또 책이나 이런 고서적들 자체가 찾아서 읽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사학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폐쇄적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뭘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강단사학자들, 재야사학자들, 그리고 최근 들어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그 존재가 알려지고 있는 시민사학자들.
이중 강단사학자들과 재야사학자들은 주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역사를 생계수단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시민사학자들이란 일반적으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거나 혹은 전공했더라도 다른 영역에서 일하면서 역사를 자기의 생계수단으로 연구하지는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앞의 두 부류는 출발점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재야사학자들조차도 자신들이 대학에서 자기 스승들로부터, 이 스승들 중 많은 숫자는 당연히 친일파 내지는 일본이 만들어준 역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하여 기본적으로 그 범주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설사 벗어나더라도 그 반대 방향으로 연구를 하지 전체를 펼쳐 놓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시민사학자들은 그런 한계가 없다. 그냥 자신들이 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을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에 이들은 역사에 관한 해석에서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들보다 훨씬 자유롭다.
또 다른 차이점은 강단이나 재야사학자들이 책을 보는 방식 혹은 연구하는 방식이 일단 기존에 존재하는 학설을 부정하기 어려운데 비하여 시민사학자들은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학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은 재야사학자들조차 손쉽게 동의하기 어려워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는 재야사학자라는 사람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6 일본을 떠받드는 강단사학자들
어쨌든 이들 중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쪽은 강단사학자들이다. 흔히 얘기하는 대학교수들.
앞에 이미 언급한 이병도라는 놈과 그의 뒷배였던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수회라는 어용단체를 통해 일본이 원하는 조선사를 만들고 그에 따라 우리를 교육시켜온 원흉들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현재 대부분의 사학과 교수들 중 조선사 혹은 한국사를 연구하는 교수들이 여기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이병도 신석호 이선근 김원룡 김용덕 김정배 김철준 한우근 송호정 노태돈 서영수 이기백 이광린 김현구 이기정 정재정 등이 있으며, 이병도는 서울대 신석호는 고려대 이기동은 동국대 이기백은 서강대 등에서 일본이 만들어 준 식민사관을 학생들에게 주입시켰다. 그리고 그 제자들과 후배들이 여전히 한국 사학계, 즉한국 역사계 를 지배하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사 연구 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권희영이란 원장은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마치 자기 할아버지를 향해 개새끼라고 욕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놈이 원장인 것을 보면 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는 곳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또한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곳에서는 50억 국고를 들여 만든 동북아 역사지도에서 일부러 독도를 누락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일부러 독도를 지도에서 누락시켰고 독도를 추가해서 지도를 다시 그리라는 주문을 결국 끝까지 듣지 않고 지도를 폐기시켰다. 정말 천하의 개새끼들이다.
이런 곳들이 지금도 우리 역사를 기술하는 주체이다. 아니, 이놈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역사를 기술하거나 혹은 역사를 제대로 밝히거나 혹은 수정하는 등의 뭔가 우리 민족 혹은 역사에 대한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없다. 이들이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 국사편찬위원회, 중앙박물관, 문화재청 등도 모두 기존 강단사학자들이나 그들의 제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건 참 심각한 일이다. 그래서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추진했던 가야사 연구를 통해 이놈들이 발표한 내용은 우리나라 경상도 전라도는 모두 옛날 일본 땅이었다라는 결과였고 그걸 떡하니 박물관들에 그대로 전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식 이하의 연구를 한 놈들도 문제고 그걸 받아들이는 박물관도 문제고 나아가 그런 한심한 내용을 역사라고 쓴 놈들을 인정하는 정권도 문제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놈들은 역사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놈들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단순하다. 역사란 무엇인가? 여기에 역사적 진실이나 객관적 사실이니 뭐 이런 얘기를 하는 인간들은 뭐랄까 순진하다고 할까 바보 같다고 할까, 하여간 이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면, 역사란 기록된 사건이다.
어디에 쓰여 있는 어떤 역사에 대해 사실은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것을 겪은 사람은 이미 사라졌고 실제로 겪었다 할지라도 겪은 이는 자신이 겪은 사실만 알기 때문이다. 월남전에 참전해 사무실에서 사무만 보던 병사와 실제 밀림에서 베트공과 전투를 벌이던 병사가 보는 월남전이 어떻게 동일하게 기술될 수 있는가?
게다가 그렇게 직접 경험한 사람도 아니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다면 그건 이미 사실일 수 없다.
역사란 기록하는 사람들이 기록하고 싶은 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을 기록한 사람들의 마음가짐 혹은 의도이다. 역사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객관적인 것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기록하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 사건일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역사는 어떤가?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놈들이 우리 역사를 쓸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일본놈들이 우리 역사를 새롭게 기술할 때 우리 역사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이는 매우 간단한 얘기 아닌가? 일본이 당시 원하던 것은 대동아공영권의 구축이다. 괜찮은 아이디어다. 유럽 제국주의 침입에 항거하기 위해 아시아가 함께 단결한다? 좋은 생각이지. 그런데 그게 왜 일본이 주축이 되어야 하고 더구나 그 놈들이 만드는 제국주의에 우리는 희생되어야 하느냐고? 정말 한 마디로 개똥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 조선은 힘이 없고 능력도 없고 일본이 보살펴 주어야 하는 약소국이 되어야, 그래서 조선인 스스로 일본에 무릎을 꿇어야 그림이 좋으니까 당연히 그런 목적으로 역사는 다시 쓰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사가 오늘까지 우리 강단사학자라는 놈들이 스스로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반도사관 역사이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관한 모든 관공서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되었고 또 지금도 그것이 바뀌지 않았으리라는 추정은 일본을 떠 받들고 있는 강단사학자들이 아직도 현역이고 그 제자들이 모두 현역이라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명백하지 않은가?

7 친일파 강단사학자들
이런 불행한 사실은 정말 큰 문제다. 앞으로도 적어도 수십년은 우리 역사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수십년 후에도 뭔가 달라질 수 있는 근거는 별로 없다. 모든 것이 애초에 털어버릴 것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그것에 끌려온 우리의 잘못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강단 즉 학교와 국가에서 역사에 관한 일을 하는 대부분 기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도사관에 물들어 있고 그것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연구해서 발표하거나 혹은 자기 스승이나 선배들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주변이 모두 스승과 제자 동문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 튕겨 나가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사 그들이 스승과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그걸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완전히 자기 자신의 앞날을 포기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가 지금도 잘 작동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 강단사학자들이 쓰는 역사가 또 이들이 배운 역사가 절대로 올바른 역사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올바른 역사 혹은 정확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근본적으로 왜곡일 수밖에 없다. 기록하는 당시 기록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거나 첨가 혹은 삭제하는 것이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 역사적 사실은 달라진다.
즉 역사란 한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 쓰이는 것이다. 내 나라에 해로운 사실은 생략하고 이로운 사실은 강조한다. 즉, 이런 너무나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방향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는 그 나라의 역사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가르치는 놈들은 그 나라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반도사관을 추종하는 놈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놈인 것이다.
당태종이 양만춘이라 알려진 (사실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안시성 성주의 활에 눈을 맞았다고 우리는 기록하고 있으나 중국 역사서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누가 옳은가? 모른다. 역사는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할 수 없고 오로지 기록하는 당시 기록하는 사람 혹은 기록을 명령하거나 주관하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역사적 사실이라 불리는 사건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록되는 것이다. 이게 역사적 사실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놈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새롭게 왜곡한 역사를 마치 우리가 겪어온 진짜 역사라 믿도록 교육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교육되고 있다. 그 역사관, 즉 일본놈들이 한국인을 3류시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조선인은 원래 별볼일 없던 작은 한반도에 살면서 자기 문화도 없고 그저 중국에 빌붙어 살아온 열등한 민족이다라는 프레임에 우리는 아직도 갇혀 있고 그것을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매국노들이 바로 이 강단사학자들이라는 놈들이다.
이 놈들은 그저 왜구들일 뿐이다. 문제는 이 놈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과거에 책을 수십 번 보며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그들이 그 책을 볼 때는 그들 눈에는 이상한 필터가 끼어 있었다. 그래서 필터를 통해 책을 보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그 필터를 아직도 끼고 있다는 것이다.
나라가 바뀌었으면 필터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나라는 바뀌었는데 필터는 바뀌지 않았다. 사실 이게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이다. 바로 우리가 해방되었을 때 친일파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척살하고 역사를 완전히 복원시켰어야 하는데 그만 친일파 놈들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 바로 우리에게 지금까지 왜곡된 역사를 만들고 있고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 교육받은 우리는 아직도 우리 스스로를 열등한 시민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말 친일파를 다 죽였어야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이 친일파놈들이 돈줄까지 틀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방되었을 때 친일파놈들은 떵떵거리며 자식들 교육 잘 받게 했고 돈 잘 쓰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독립 운동하던 사람들은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고 가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전마저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나라가 다시 원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럼 제일 먼저 이 떵떵거리던 놈들이 추락했어야 정상이다. 그리고 새 술은 수 부대에 담듯 독립운동을 하고 나라를 위해 애쓰던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이놈들은 추락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럴 수 있던 이유는 일단 나중에 얘기하고, 이 상태가 되면 이 놈들은 자기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억지로 정당성을 만들고 우리가 가는 길이 잘못이고 자기가 있는 자리가 제대로 된 길이라 끊임없이 주장해야 한다. 그 사실이 탄핵되는 순간 자기의 자리도 끝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왜곡돼 있게 된 이유이다.
이 왜곡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구축해 놓은 자리가 너무 견고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위 사회 지도층이다. 돈도 가지고 있다. 자식들도 잘 교육시켰다. 그렇게 그 놈들이 차지한 자리는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 물려지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 사회의 왜곡된 현실은 마치 아무런 문제가 아닌듯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8 일본놈들이 쓴 조선사는 아무 근거 없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을 정당화시키고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강단사학자들이다.
우선은 이렇게 자리를 유지하는 친일파 및 그 후손들에 의해 우리 역사는 아직도 일본이 만들어준 시각에 멈추어 있고, 친일파들은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우리의 원래 위치를 자꾸 없애거나 부정하고 하고 있다. 단군을 부정한다든가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한다든가 하는 것이 다 이런 이유이다. 즉 현실과 과거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해결해야 하는 한 축인 역사학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일본이 씌워 놓은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려 했던 관점을 그대로 물려 받아 그걸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 국가 혹은 민족의 정당성은 사라졌거나 혹은 의미가 없어졌고 그 위에 덧씌워진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너무나 우리에게 은혜로운 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떠 받들고 있는 식민사학자들 혹은 반도사관 사학자들.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부모 세대에서 행하던 짓을 거의 그대로 하고 있다. 아직도 그들이 쓰고 있는 필터는 식민사관이라는 필터다. 그리고 그 필터에서 벗어나는 것은 유사학문이니 사이비니 하면서 근거 없다고 말한다.
그럼 그들이 말하는 것에는 근거가 있나? 있다. 어디에? 그들 선배 혹은 스승, 즉 일본이 만들어 준 역사에 맞추어 우리 역사를 난도질하고 왜곡시킨 놈들이 말한 것이 바로 그들의 근거다. 즉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라는 것은 이미 일본놈들의 역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놈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 쓴 소설이 바로 그들의 근거다. 그게 어떻게 근거가 될 수 있나? 그들이 기술한 역사 혹은 근거는 역사가 아니고 그냥 자격지심에 찌든 일본이라는 나라가 앞장서 만든 허구의 창작일 뿐이다. 그런 허구가 우리 역사학계, 특히 강단을 지배하는 다수 역사학자들의 관점이다.
하지만 이들이 배웠고 또 가르치고 있는 우리가 형편없는 민족이라는 역사는 우리가 인류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전쟁을 딛고 초 단기간에 전 세계 10위의 초강대국이 되었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탄핵된다. 우리가 그렇게 시원찮은 국민이라면 지금도 우리는 가나보다도 못 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때 우리와 비슷했던 가나는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고 그때 우리보다 잘살던 필리핀은 이미 저 멀리에 뒤쳐져 있다. 우리가 정말 무식하고 능력 없는 3류 국민이라면 우리가 일군 이 역사는 어떻게 설명 가능한가?
하여간 확실한 것은 이 식민 사학자들 혹은 강단 사학자들은 정말 우리의 가장 첫번째 적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국가로부터 돈을 받아 역사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고 그런 연구는 하나 같이 과거 자신들의 스승과 선배가 얘기했고 또 오늘날 자신들이 주장하는 그런 내용을 끊임없이 재탕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 불행한 사실은 이들이 말하는 우리의 역사는 적어도 이들에 의해서는 재조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목적을 가지고 쓰는 우리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다. 이들이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주어졌던 그리고 앞으로 주어질 수많은 돈 혹은 권력이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스스로의 파멸이기 때문에 이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관점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악이란 선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집요하다. 악을 물리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역사가 새롭게 우리의 이익을 위해 다시 쓰이거나 재조명될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이 있듯, 지금 새롭게 자리를 잡는 제자들 역시 그 스승들의 관점 하에서 길들여졌고 교육받아졌고 그 덕분에 현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정말 만의 하나, 연구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고 배운 것이 잘못됐다고 느끼거나 발견할지라도 그걸 입밖으로 내뱉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미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그걸 부정하고 자신의 위치를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심하게 잘못 끼워졌기 때문에 이 첫 단추를 다시 끼우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하긴 우리의 적이 이 강단사학자들 뿐이겠는가?

9 또 다른 적, 한국어 학자들
대표적인 우리의 또 다른 적은 한국어 학자들이다. 정말 세상에 이렇게 한심하고 멍청한 인간들이 또 있을까 하는 정도로 문제인 인간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왜, 왜 국어 학자라는 인간들은 한국어 문법을 수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쓰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Friday 를 프라이데이라고 쓸 수 있을까? 이렇게 쓰면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글자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 F와 P를 구분하지 못하고 B와 V를 구분하지 못하며 L과 R을 구분하지 못하는 글자. 그게 어떻게 세계 최고의 문자란 말인가?
그럼 애초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에서도 이 글자들을 쓸 수 없었나? 쓸 수 있었다. 위의 6글자를 구분해 쓸 수 있었고 모음도 더 쓸 수 있었다. 애초에 세종대왕께서 글자를 만드실 때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또는 남들이 발음하는 모든 것들을 다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없앴다. 누가? 고쿠부 쇼타로라는 통역관 놈이. 언제? 1912년에. 왜? 일본놈들이 발음할 수 없는 것들은 다 없애고 우리의 발음을 일본어 발음처럼 만들기 위해서. 즉 한국어가 너무 발음이 많고 일본어가 너무 발음을 못하는게 많다 보니까 그게 불편해서 자기 편한대로 남의 언어를 마구 가위질한 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국어 문법의 기본 토대라고 한다. 이해가 되나? 난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것도 결국 해방되면서 일본놈들을 쳐내지 못했던 것이 원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저 고쿠부 쇼타로라는 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 학자들에게 있다. 언어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단순한 통역관이라는 놈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거의 그대로 따라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따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벌써 100년이 지난 세월이고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도 이제 80년이 돼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국어는 아직도 10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친일파를 지금이라도 당장 쳐 없어야 할 당위성이 성립된다.
어쨌든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의 원칙은 병서와 연서라는 것이란다. 병서란 필요하면 자음을 여러 개 붙여 쓰라는 것이고 연서는 순경음, 즉 V와 F 같은 것을 ㅂ과 ㅍ 아래에 ㅇ을 붙여 만들어 쓰라는 것이란다. 이게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남기신 말씀이란다. 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발음을 우리 훈민정음으로 표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어학자라는 놈들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적어도 해방된 80년간 아무 것도 안하고 있고 지금도 뭔가를 하려는 놈도 보이지 않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속담도 있는데 지금이라도 바꿀 일은 바꾸어야할텐데…
도대체 이 국어학자라는 놈들은 왜 세종대왕님의 말을 안듣고 있는가? 왜 왕께서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일개 일본 통역관 놈이 정리해 놓은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가? 도대체 이 국어학자라는 놈들이 여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필요하면 필요한대로 추가하고 수정해서 정말 세계 최고의 문자가 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서 Friday를 프라이데이라고 쓰고 있다니. 정말 세종대왕 시대에 비교해 훨씬 퇴보한 언어가 우리의 한글이 맞는 것 같다.
정말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두 집단이 있다면 당연히 이 식민사학자들과 국어학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덫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그 안에서 그들이 만들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밖으로 벗어나 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두 영역이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지켜 나가는데 가장 핵심인 영역이다.
물론 주시경 선생이나 박현배 선생처럼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분들도 있다. 이분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무엇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일제시대이다. 문제는 그 시기가 지나고 지금 해방된지 벌써 80년인데 마치 우리가 매일 먹는 밥보다도 더 많이 사용하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우리의 글이 이상하게 변질되어 있는데 그것에 대해 말하는 국어학자가 한 놈도 없다니… 왜?….
아직도 우리의 식민사학자 식민국어학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주류로 있으니 …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식민사학을 통해 한국인들을 3류로 만들고 있는 강단사학자들이 있고 그들 맞은편에는 재야사학자들이 있다.

10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재야사학자들
재야사학자들이란 간단하게 말해 식민사학을 거부하는 역사 전문가들을 말한다. 그렇다. 이들은 대부분 역사를 전공한 역사 전문가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비주류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 있지 않다. 재야사학자 중 대학교수는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주류는 식민사학자들이다. 즉 대부분의 사학과 대학교수들이 식민주의 사학을 따르고 있다.
대학교수의 말은 중시되고 진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국가 혹은 지방 자치단체 차원에서의 대부분 역사에 대한 일들이 이들에게 맡겨진다. 즉 돈이 이들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들이 바로 주류, 즉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돈이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모든 평가는 결국 돈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흘 굶어서 담 안 넘는 놈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돈이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쯤해서 그림을 한 번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주류는 강단사학자들이고 이들이 돈을 쥐고 있으니 그 반대말을 하는 사람들, 재야사학자들은 당연히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고 뭔가 자신의 전공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학과 출신들, 특히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스승들의 의견을 따라 말 잘 듣는 식민사학자가 되거나 아니면 그냥 스승을 거부하고 재야사학자가 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사학계를 완전히 떠나거나.
재야사학자는 배고프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별도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연구소를 만들거나 아니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한다.
하지만 결국 주류는 강단사학자들이니 이 재야사학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정부나 기타 자치단체들도 교수라는 권위를 가지는 강단사학자들의 얘기를 계속 듣지 재야사학자들의 의견은 중시하지 않는다.
여기에 재야사학자들의 딜레마가 있다. 현재 대학 교수들이 주장하는 식민사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이유는 그 근거라는 것들이 일제시대 일본놈들과 이병도 같은 놈들에 의해 계속해서 새롭게 역사가 쓰여졌고 그것을 지금까지 재탕해서 완전히 식민사관이 우리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학교들에서 가르치는 한국사는 어떤가? 삼한은 어떻고 단군은 어떻고 삼국시대는 어떻고 고려시대는 어떤가? 우리 학교들에서 가르치는 한국사가 과연 제대로 된 한국사인가?
이 역사는 이병도를 비롯한 식민사학을 하는 놈들이 새롭게 만들어 놓은 한국사다. 왜? 한국인은 자발적이지도 못하고 자주적이지도 못하고 그저 매일 욕이나 먹고 두드려 맞기나 하면서 고개 숙이고 살 줄 밖에 모르는 놈들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이게 지금 한국사이고 한국사를 새롭게 쓴 목적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아마도) 잘 알면서도 식민사학자들은 그걸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왜? 그게 돈줄이니까.
이렇게 운동장이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든 사학이라는 분야에도 들어서면 이미 공부해야 하는 내용이 정해져 있다. 재야사학자들에게도 같은 운동장이 주어진다. 즉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이나 강단사학자들이 연구하는 대상이나 대상은 결국 같다. 그리고 주어진 틀 내에서 서로 싸우는 것이다.
이건 사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재야사학자들이 공부하면서 그들의 공부나 연구 영역은 이미 한정되어졌다. 그들 스승들에 의해 또는 주변 사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래서 그들이 보는 책이나 참고하는 것들이 대부분 강단사학자와 비슷하다. 단지 서로 중점적으로 보는 내용이나 해석하는 내용이 다를 뿐이지 결국 같은 책들을 들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책으로 싸우면 당연히 재야사학자들이 밀린다. 왜? 돈이 강단사학자들에게 가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권위도 그들에게 가니까. 그래서 재야사학자들은 일종의 사이비처럼 보이고 대학교수들은 뭔가 올바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치장을 했고 주변을 온통 그렇게 쳐발라 놓았으니까.
결과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은 새로운 안목을 가지지 못했다. 이것이 이들의 한계이다. 완전히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하는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그것이다.
대학에서 자기 스승들로부터 우리 역사에 대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그로 인해 이들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반박만 할 수 있었지 그 밖을 보는 혹은 밖으로부터 내부를 들여다 보면서 넓은 시각을 가지거나 혹은 새로운 뭔가를 찾아 발표하는 것이 부족했다. 이것이 바로 재야사학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한계이다. 이미 처음부터 놀아야 하는 운동장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

11 정해진 운동장
사실 이런 정해진 운동장은 우리들이 흔하게 범하는 오류 중 하나이다. 문제를 풀더라도 문제 밖으로부터 다시 한번 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보일 수도 있는데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뭔가 얘기를 하더라도 이미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지 그 외 다른 것 혹은 다른 시선으로 뭔가를 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사업을 하면 떼 돈을 버는 것이다.
누가 전화기를 들고 다닐 생각을 했을까? 누가 음악을 허리에 차고 다니는 기계에서 재생할 생각을 했을까? 누가 손으로 쓰는 대신 기계로 찍어낼 생각을 했을까? 누가 말하는 걸 쓸 생각을 했을까? 이게 혁신이다. 내부에 머물면서 혁신을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혁신은 언제나 현실을 벗어나야 도달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에게 있어 이 정해진 운동장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우리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느냐 아니면 그 내부에서 있었던 일이냐에 대한 것이다. 즉 싸움의 장은 한반도로 정해져 버렸다. 우리 역사는 한반도에서 시작됐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됐고 맨날 한반도 내에서 싸움질만 해댔다. 이것이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만들어 준 역사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는 처음부터 한반도 내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한반도 안에 있었고 한반도 밖은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다. 고조선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한반도에는 나라 같은 것도 없었고 그냥 동네 몇 개 모여 있던 땅이었다.
일본놈들이 우리 역사가 한반도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교육시켰고 식민사학자들이 그걸 강화시켰고 그 제자들 역시 한반도 내부 혹은 그 주변이라는 역사를 배웠다. 그러니까 이런 교육을 받은 재야사학자들이 반박할 일은 우리 영토가 확대됐다면 어디까지 확대되었었느냐에 대한 것이지 뭔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우리 역사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냥 우리 역사는 언제나 한반도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반도사관이라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전라도 천년사 혹은 임나일본부설 역시 마찬가지다. 임나가 가야라고 말하고 있고 그것이 전라도 경상도 어디 어디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놈들이 설정해 놓았고 오늘날 대학교수라는 강단사학자놈들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저기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싸움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어느 곳이 맞고 어느 곳이 틀리다에 대해 싸우는 것이지 가야가 근본적으로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다. 그냥 처음에 일본놈들이 가야는 전라도에 있었다라고 말했고 그걸 그대로 배웠고 그 배운 내용 중 전라도의 이곳이 아니라 저곳일 가능성이 있다고 싸우는 것이지 실제 가야가 그곳에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있었는지는 연구조차 하지 않았다.
누가 가야가 전라도에 있었고 백제가 충청도에 있었고 신라가 경주고 삼한이 전라도 경상도에 있었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나? 이런 질문을 하면 바보 같은 질문이 된다. 왜? 이미 그렇게 됐다고 역사책에 다 기록이 돼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기록된 역사책은 어떤 역사책인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도대체 우리의 어떤 역사책에 그렇다고 써 있나?
그렇다고 써 있는 역사책은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 역사책이다. 우리가 기록했고 일본놈들이 새롭게 써놓은 조선의 역사책이다. 게다가 그들은 친절하게 각종 위치를 비정해 놓았다. 비정? 추측해서 여기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근거로 비정했나? 없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냥 여기가 거기다. 끝.
조선은 한반도 내부에 존재한다. 끝. 이건 확정된 사실이다. 누구에 의해? 일본놈들에 의해. 왜? 조선은 3류시민이고 쥐뿔도 가지고 있는 것도 없고 말도 더럽게 안 들어서 매일 두드려 맞아야 하고 단합도 안되고 자주성도 없고 아주 병신 같은 인종이 조선인이라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그런데 이런 역사를 아직도 가르치고 있으니….
이미 덧씌워진 굴레, 이미 만들어진 논리 내에서 자꾸 무언가를 하다 보니 재야사학자들의 해석이나 안목 역시 그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 밖은 나가보지도 않았고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책을 보더라도 가야가 중국에 있었는지 강원도에 있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것이 전라도의 이곳이냐 아니냐만 가지고 떠들어댄다. 가야는 이미 전라도에 존재했다고 일본놈들이 써 놓았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이거 정말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내가 여태까지 배우고 익힌 모든 것들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인데, 대부분의 인간에게 이미 자신이 쌓아 놓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뭔가 혁신적인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재야사학자들을 비난하기 보다 오히려 이렇게 사람을 가두어 놓은 일본놈들을 욕해야 하고 지금도 자기가 아는 것이라고 우기며 우리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강단사학자놈들을 미워해야 한다. 하긴 강단사학자놈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그놈들이 제일 불쌍하다. 얼마나 초조할 것인가? 자기가 우기는 일이 무너지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그들은 점점 더 악해지는 것이다. 강단사학자들은 이미 흑화 되어버렸다.
정말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뭔가 완전히 새로운 신선한 시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앞에 언급한 것처럼 기존 강단사학자들이나 재야사학자들을 통해서는 새로운 뭔가가 나타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희망이 나타나고 있다. 그건 바로 시민사학자들이다.

12 시민사학자는 희망이다
시민사학자들은 희망이다.
도대체 시민사학자가 무엇인가? 시민사학자란 말 그대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거나 혹은 전공했더라도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전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취향이나 아니면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정말 우리의 역사를 제대도 밝혀보고 싶어 우리의 역사, 특히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시민사학자들에게 있어서 우리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한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과거를 기록한 책에 대한 접근성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일단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기본이 성립된다.
하지만 다른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연구가 연구에서 끝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가 집에 금송아지 100마리를 가지고 있어도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걸 팔아서 먹고 살 수 있을 때 그 금송아지는 가치가 인정된다. 즉 가치가 인정될 수 있어야 그 금송아지의 존재 자체의 의미가 인정될 수 있다.
연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나 혼자 연구를 해서 노벨상 100개를 탈만한 실적을 거두었을지라도 그것이 노벨상으로 인정되어야 그 연구 또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저 앞에서 얘기했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생각난다. 루터 이전에 기독교를 비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없이 지나갔던 이유는 그들의 생각이 혼자의 생각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혼자 1+1이 1이라고 외쳐도 소용없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의견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나아가 검증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없는 개인 의견은 그 개인의 헛소리일 뿐이다.
루터는 공유되고 공감되었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루터의 생각이 출판이라는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그를 파문했던 것이다. 검증은 그 이후에 차차 진행된다. 어떤 것들은 검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 개혁 역시 검증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느님을 믿는 것이 옳은 것인지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는 개혁되었다. 즉 검증이란 일단 공유를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진행되어지며 공유가 진행되면 그건 결국 개혁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다. 즉 연구의 마지막은 공유가 된다.
한자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 그들이 볼 수 있는 고서적들에 대한 접근권, 그리고 이렇게 연구된 내용들의 공유. 이 문제들이 해결되면 누구나 시민사학자가 될 수 있다.
우선 한자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각자 해결할 일이다. 여기에서 능력이 딸리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거나 혹은 흔히 얘기하는 사이비,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도 많다. 불행이다. 우리는 각자의 평가에 의해 이런 사람들을 걸러내고 이런 사람들의 허황된 헛소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책에 대한 접근성은 인터넷으로 시작된다.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책들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게 개방되었다. 과거 우리 조상이나 중국 일본 혹은 기타 다른 나라들에서 쓰인 책들이 지금은 원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손쉽게 접근해 그 원본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인터넷은 정말 정보의 혁신이다.
연구는 공유를 통해 완성된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가 있더라도 그것이 공유되지 않고 한 개인의 얘기로 끝나면 그건 가치 없는 말일 뿐이다. 연구란 공유를 통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때 그 가치를 얘기할 수 있다. 마틴 루터가 종교 혁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공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공유는 당연히 인터넷을 통해 시작되었다. 인터넷은 정말 인류의 혁신이다. 수많은 정보들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웹사이트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찾아 정보를 알려주는 검색 사이트가 존재한다.
이 인터넷 사이트의 단점은 그걸 일일이 찾아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찾는 것은 검색엔진을 통해 찾더라도 그걸 읽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대신 누구도 할 수 없고 반드시 내가 내 눈으로 직접 읽어야만 한다. 이걸 누가 대신 읽어 주거나 한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공유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유튜브이다. 유튜브는 인터넷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물론 최근 들어 또 다른 혁신이 등장해 본격적으로 인간은 인공지능과의 싸움에 돌입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유튜브를 통해 보다 쉽게 내가 생각한 것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아마도 시민사학자들의 활동은 훨씬 더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내가 원하는 내용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근거를 눈으로 제시할 수 있음으로 인해 공유가 매우 손쉬워졌다.
인터넷이 전적으로 시각에 의존한다면 유튜브는 시청각에 의존한다. 그냥 단순히 쓰인 것을 읽는 것과 어떤 대상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 특히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손쉽게 확인도 가능하고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자료와 청각적인 설명은 정말 인류에게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이 혁신과 더불어 등장한 사람들이 시민사학자들이다.
이들은 한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고 수많은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자신의 해석을 유튜브를 통해 설명하고 검증 받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개인적 역사 연구는 타인들과 공유될 수 있고 그것이 기존 우리 사학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13 3자 전쟁
앞으로의 역사는 시민역사학자들에 의해 쓰일 것이다. 물론 이들이 직접 고대사를 바꾸거나 쓰는 것은 어렵다. 반대로 이들의 의견이 우리 즉 일반 시민들과 공유되어 우리에게 힘이 생기면 기존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 고대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혹은 우리의 자랑스런 과거를 되살리거나 우리의 미래를 더 자랑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써 가는 시민역사학자들이란 인쇄술로 무장했던 마틴 루터와 같다.
강단사학자들은 오로지 스승을 떠 받드는 일을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스승을 거스르는 것만 한다. 스승이란 그들에게 똑같이 하나의 출발점이다. 그들의 밥줄이다. 앞에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이들이 싸우는 운동장은 정해져 있다. 바로 자기들 스승들 혹은 과거 일본놈들이 떠들어댄 얘기들이다. 소위 우리의 역사라고 이름붙여진 한국사이다. 그럼 그놈들이 떠들어댔던 우리 역사는 객관적인 유물이나 어떤 근거를 통해 검증되었나? 전혀! 아무런 검증도 없었다. 그놈들이 떠들어댔던 대부분은 모두 헛소리고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지껄여댔던 소설일 뿐이다.
그들이 백제의 수도가 어디였고 고구려 수도가 어디였다라고 말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하다 못해 고대 역사책에 쓰인 내용과 맞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 근거도 없이 백제는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신라는 저기에 자리를 잡았고 고구려는 여기에서 건국했다고 떠들어 댔다. 물론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조차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 갖다 짜맞추어 놓았다. 정말 아무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그냥 그게 여기라고 말하고 도장 찍고 그렇게 지금까지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은 이미 이렇게 떠들어 놓은 것들을 앞에 두고 그게 동쪽으로 50미터냐 서쪽으로 50미터냐를 놓고 싸워대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떠들어 댄 얘기가 진실이냐 아니냐는 말하지 않는다. 이미 진실인 것처럼 씌여 있으니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에서 조차 처음에는 일본놈들이 경상도 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전라도까지 넘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구체적으로 기문이 남원이라고 확정해서 말한다. 근거는? 없다. 아무 근거 없이 그냥 기문이 남원이란다.
프로세스를 보자.
기문이 남원이라고 책에 쓰고 논문 쓰고 발표한다. 그건 한 연구자가 연구한 연구의 결과로 기록되어 남는다. 즉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하루 아침에 진실로 둔갑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기다린다. 하지만 10년 후에 한국사를 연구하는 어떤 연구자는 기문이 남원이라고 써 있다고 인용할 것이고 그 출처는 바로 오늘 기문을 남원이라 비정한다고 한 그 책이나 연구가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문은 남원으로 확정이 되는 것이다.
일본놈들이 그리고 우리의 강단사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위조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 일단 여기가 거기라고 떠든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중에 그걸 인용하면 되니까. 하긴 여태까지는 이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일본놈들 얘기가 옳은 얘기라고 받아들여졌으니까.
이처럼 우리 역사는 완벽하게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날조된 허구의 역사인데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아무런 비판도 없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야사학자들조차도 지역이 조금 더 넓으냐 좁으냐 조금 더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로 싸우고 있다. 그들도 정해진 운동장에 갇혀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승리는 거의 언제나 강단사학자들이다. 그들이 교수라는 타이틀로 믿음을 획득했고 관도 또 기업들도 모두 강단사학자들에게 돈을 주고 권력을 준다. 게다가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등의 기관에는 대부분 이들과 동일한 의견을 공유하는 그들의 동료 스승 제자들이 포진되어 있다. 재야사학자들은 이 사이에 낄 자리가 없다. 그들은 이방인이다.
지금도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배고팠고 친일하던 놈들은 배부르고 등 따시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똑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확실히 우리가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모든 일상에 너무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건 반드시 극복해서 모든 영역에서 반드시 친일파를 쳐내야만 하는 우리의 지상과제다. 반드시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
반대로 시민사학자들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 거리낄 것도 없다. 심지어 그들에겐 책임조차 없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연구하고 떠든다. 아니면 말고다. 그들은 자유롭다. 기존 주어진 전장에 서 있지 않고 또 그곳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밖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이 같은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을 때 시민사학자들이 그 운동장 밖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해 얘기한다. 그런데 운동장이 다르니까 그들이 얘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삼한을 얘기할 때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모두 삼한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자리 잡고 있었고 어쩌고 떠든다. 그래서 어디 영토가 어땠느니 아니니 싸운다. 하지만 시민사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누가 삼한이 거기에 있었다고 말했나? 그건 일본놈들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누가 그걸 검증했나? 아무도 검증하지 않았다. 그냥 그놈들이 그렇다고 말해서 지금까지 그렇다고 믿고 떠든 것이다.
즉 시민사학자들은 이 기존의 학설 혹은 추론 혹은 헛소리를 출발점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삼한은 그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각각 마한 변한 진한이라고 부른다. 무슨 근거로?
이 지점이 바로 시민사학자들이 빛나는 지점이다. 그들은 근거를 찾아냈다. 그냥 과거에 일본놈들이 했던 것처럼 이것이 저것이다 라고 아무런 근거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책에서, 우리 조상들이 쓰고 중국이 쓰고 일본이 썼던 역사책들에서 그 근거들을 찾아내고 나름의 해석을 붙여 삼한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4 역사란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다
역사란 결국 과거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해석이다. 그리고 해석은 주관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역사란 절대로 진실이나 사실이지 않고 오로지 각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각 개인의 해석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해석 이전에 역사는 기록이다. 그 기록이 과연 객관적이고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할까? 우선 물리적으로 있었던 일을 있던 그대로 기록할 수 없다. 축구를 비롯 대부분의 운동 경기에는 수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유사시 그걸 확인한다. 즉 어느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어떤 일어난 일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당연히 다르게 기록될 수 있다. 문제가 있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고 그 판독이 끝나 심판이 판정을 하더라도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전쟁일지라도 전방에서 매일 총싸움했던 사람과 후방에서 술마시고 놀았던 사람이 경험했던 전쟁은 같은 전쟁일 수 없고 그 사건을 누가 기록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건을 기록하는 사람에게도 목적이 있다. 아무 목적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란 한 개인의 일기가 아니다. 역사란 매일의 자기반성이 아니다. 역사란 한 국가의 존립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대한 국가적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부끄러운 부분은 감추고 싶을 것이고 바꾸고 싶을 것이다. 즉 역사책을 쓸 때는 뭐랄까 일종의 애국심이랄까 아니면 국가의 이익이랄까 체면이랄까 뭐 이런 부분들이 당연히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당태종이 안시성 성주의 화살을 맞아 결국 그 때문에 죽었다고 기록했지만 중국 역사책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즉 완전 객관적인 역사는 쓸 수도 없고 쓰지도 않고 혹시 그렇게 누군가 역사를 쓴다면 혹은 썼다면 그 인간은 바보 멍청이일 것이다. 진실을 기록하는 역사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나의 자랑을 더 알리기 위해 역사를 쓰는데 나의 단점까지 시시콜콜 다 써대는 인간은 모자르기 이를 데 없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우리 자신이 바보라고 말하는 역사를 쓰는 인간들이 있다니, 아니 많다니, 아니 그런 인간들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다시 쓰고 있다니, 정말 천인공노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게 매국노가 아니면 누가 매국노인가?
일본놈들이 우리를 쉽게 지배하고 우리를 3류 시민으로 만들어 모지리로 만들려고 했던 역사를 그대로 물려 받아서 그걸 아직도 국가에서 쓰고 있으니….. 우선은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부터 부수어 버려야 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놈들을 다 묻어야 하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다시 써야 한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역사를 쓰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당연히 우리 모두의 이익이다.
왜 일본놈들이 그토록 일본서기라는 책에 목매며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얘기하고 왜 중국이 그렇게 공을 들여 동북공정을 비롯한 온갖 공정을 행하고 있는가?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역사가 진실이나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것이 진실이며 사실이라면 왜 사람들이 역사를 가지고 얘기할까? 역사라는 학문이 존재하는 자체가 기록된 역사가 진실이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해석되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란 말그대로 그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것이 왕이거나 군주일 수 있고 오늘날에는 한 나라의 역사를 관리하는 부서이며 나아가 국가 원수일 것이다. 하긴 지금 대통령이란 윤뚱뗑이와 그 가족은 벌써 수십년 전에 가져다 버렸어야 하는 온갖 비리를 한 가득 품에 안고 있으니. 그 주변에 있는 놈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고. 그들이 무슨 역사에 관심이 있을 것인가…
어쨌든 조선시대에 고려사를 쓴 이유는 무엇이고 고려시대에 삼국사기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왜 수많은 역사책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대부분의 역사책들이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조선시대에 다시 쓰인 이유는 무엇인가? 뭔가 책에서 감추고 싶은 부분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역사책은 다시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상식적으로 우리가 쓴 우리 역사와 일본놈들이 쓴 우리 역사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이 그냥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서로 역사를 쓰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 가지고도 일본놈들이 쓴 역사를 지금 당장이라도 폐기하고 새로 연구해서 우리 목적을 담은 우리 역사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역사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읽힌다. 정권이 어떤 성향이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에 따라 역사는 새롭게 읽힌다. 그래서 일제시대 우리 역사를 읽는 방법과 오늘날 우리 역사를 읽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 왜? 정권이 다르고 정권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시민이 다르고 시민들이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단사학자들도 재야사학자들도 일본놈들이 써 준 우리 역사를 새롭게 읽지 않았다. 기존에 존재하는 서적에 대한 충분한 연구도 하지 않았다. 왜? 자기 스승이며 혹은 과거에 한국사를 새로 쓴 일본놈들이 이미 모든 판을 짜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해석해 놓았고 그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성서가 되었다. 우리의 역사는 조선사 편수회에 의해 친절하게도 잘 쓰였다. 감사해야 하나? 감사하는 놈들도 있지. 아니 많지.
어쨌든 시대가 바뀌었으니 역사도 새롭게 읽어야 한다. 물론 강단사학자놈들은 새로 읽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우리는 아직도 일제시대에 살고 있는 것과 똑같고 또 똑같아야 하니까. 그래야 그들이 현재 있는 그 자리에 대한 정당성이 유지되니까.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선사편수회에서 써 준 역사를 지켜야 한다. 그게 그들의 밥줄이다.
하지만 재야사학자들은? 그들은 왜 거기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 역사를 우리 시대에 맞게 다시 읽고 다시 연구하지 않고 자기가 배운대로 그 안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 이미 얘기했던 정해진 운동장에서.
물론 재야사학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자체가 별로 없고 또 당장 배가 고프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끝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나 깔아 놓은 판에서 벗어나려 하지는 않았다.
사실 대학이란 평생 살아야 하는 터전이다. 내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나왔다는 것은 내가 사회에 진출해서 어떻게 살아갈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래서 대학교수는 중고등학교의 선생님과 다르다. 혹시라도 중고등학교 선생님과 마찰이 있었더라도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선생님 두 번 다시 보지 않더라도 인생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일반적인 학과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특별한 학과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정말 평생을 간다. 왜냐하면 사회에 나가서 계속해서 자기 스승과 또는 동문과 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관계로부터 피할 수 없다. 혹시라도 여차하면 정말 내 인생이 통째 빗나갈 수도 있다. 이게 대학이다. 대학은 졸업해서 죽을때까지 항상 스승과 동문으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자기 스승을 거부하고 반기를 드는 것이 쉽지 않다.
아마도 오늘날 한국사를 배우는 수많은 전공 학생들이 일본놈들이 써놓은 우리 한국사가 잘못되고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스승이 그렇게 가르치면 따라야 한다. 잘못 반발하면 인생이 아작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이유도 재야사학자들이 보다 근본적인 반발을 하지 못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15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
어쨌든 강단사학자들이야 당연히 그 판이 자기들 밥줄이니까 그 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 벗어나서도 안된다는 것이 이해되지만, 재야사학자들은 정말 아쉽다. 이들은 마치 우리 한글이 다양한 모든 글자를 쓸 수 있는데도 한글 맞춤법을 수정하지 않고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는 한국어 학자놈들과 오십보 백보다.
재야사학자들 역시 오로지 자기들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그러니까 그들의 시각은 매우 편협하고 제한적이었다. 그들이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보지 못하고 그냥 자기들 스승이 하던 대로 따라하면서 식민사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들의 현주소고 잘못이다.
하지만 시민사학자들은 완전히 다르다. 그 지평이 넓다. 아니 새롭다. 그들에게는 기대거나 상대할 스승이 없다. 눈치 볼 주변 사람도 없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 얘기한다고 해서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들로부터 욕을 먹지도 않는다. 아니 먹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이 보기에 시민사학자들은 그냥 취미로 역사를 보고 자기만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마치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대결 같다. 애초에 게임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어쩌면 이 말이 맞을 것이다. 시민사학자들이란 역사를 취미로 보는 사람들일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전문적인 시각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역사를 말하기에 자격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격? 그 자격은 누가 인정하는 것인가? 그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한국 역사 전문가란 앞에 이미 얘기한 것처럼 눈에 필터가 끼워진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들이 전문가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의 시각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아니면 그 필터가 너무 두껍고 불투명해서 이미 장님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강단사학자든 재야사학자든 이 한국 역사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일본놈들이 만들어 준 역사 속에 갇혀서 한편으로는 거기로부터 나오는 것을 거부하거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인간들이며 혹시라도 누가 일본놈들이 만들어 준 역사와 다른 얘기를 하면 일단은 사이비니 유사 역사학이니 하며 헐뜯고 비판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다. 많은 재야사학자들도 많은 시민역사학자들의 얘기를 비판한다. 왜? 그들의 지평을 벗어나고 있으니까.
앞에서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역사란 간단히 말해 나 옛날에 잘 나갔어라고 스스로를 자랑하는 기록이다. 그런데 이 한심한 전문가라는 놈들은 나는 역사적으로 별볼일 없는 찌질이였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아니 도대체 왜 스스로를 비하할까? 내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은 못가질 망정 저 한국 역사 전문가라는 인간들은 남들 다하는 잘난 척도 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한쪽 귀퉁이에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대가리를 처박고 있다. 전문가일지는 모르나 역사가 무엇인지 왜 쓰는지도 모르는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머저리 새끼들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뱉으면서 나만 잘났어를 외치면 그게 잘난 인간인가? 마치 내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심한 팔푼이들이었는데 나는 그들과 달라서 똑똑해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다.
하긴 여기에서 강단 사학자와 재야사학자의 의견이 갈린다. 강단사학자는 우리 조상들이 한심하고 머저리였고 지금도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머저리로 살 것이고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본이나 중국이 다시 우리나라를 통치하면 우리는 너무 감사할 것이고 그들의 은혜에 매우 기쁠 것이다. 이게 강단사학자들의 관점이다.
반면 재야사학자들은 우리 역사가 옛날에는 별 볼일 없이 작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우리가 중국과 사대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작은 나라인 우리의 생존전략이었고 지금이라도 이 한반도와 만주 지역이라도 다시 회복해서 미래를 꿈꾸어 보자. 이것이 재야사학자들의 관점이다.
무슨 차이가 있나? 이 두 관점에.
뭐가 어떻게 됐든 강단사학자든 재야사학자든 이들의 시선은 만주를 넘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대를 했고 우리는 작은 나라였고 우리는 언제나 침략에 죽어가고 있었다는 게 이들에게 공통인 관점이다. 아쉽다. 아니 한심하다. 이 지점에서 재야사학자들에게 참으로 큰 아쉬움을 느낀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옛날부터 이렇게 잘 나서 이렇게 넓은 땅덩어리를 가졌는데 그만 약간의 다툼이 있었고 그때 옆나라가 부흥하고 우리가 약화된 상태였는데 그 놈들이 쳐들어와서 우리 땅덩어리의 일부를 뺐겼다. 그래서 현재 우리의 국경은 지금처럼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서로 도와 열심히 살면서 결국에는 잃어버린 땅덩어리도 회복해야 한다. 이게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기본 역사 기술 방향 아닌가? 그리고 이런 이유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라면 그 나라는 역사를 기술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역사를 기술하는 놈들이 우리 역사를 이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부터 별로 국가다운 국가도 만들지 못하고 찌질이 처럼 한반도 귀퉁이에 살다가 나라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놈 저놈이 쳐들어와서 항상 식민지 생활을 했고 삼국이 있었지만 눈만 뜨면 싸우다가 별볼일 없이 망했고 항상 중국에 사대하며 눈치를 보았고 내부에서는 언제나 당파싸움만 하면서 서로 싸움질만 해댔고 한반도 남부는 일본에게 북부는 중국에게 지배당하며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다. 이게 현재 우리 역사가 기술되는 방향이다.
그럼 이 역사를 배우는 우리는? 아, 우리는 원래 별볼일 없고 우리 땅도 남은 일본 땅이고 북은 중국 땅이니까 그냥 조용히 살다가 걔들이 쳐들어오면 땅 바치고 그냥 옛날처럼 식민지 생활이나 하면서 살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거 아닌가? 정말 생각할수록 열이 뻗치고 한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병신 같은 한국사 전문가라는 모지리 새끼들!
어쨌든 이놈들이 현재까지 떵떵거리며 모가지에 힘주고 잘 살아오고 있었다. 구텐베르그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16 시민사학자들의 참전
지금은 구텐베르그 시대이다.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던 것처럼 수많은 책이며 참조할 수 있는 참고서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누구나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고 약간의 개인적 능력을 더하면 무엇을 하든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역사 역시 이런 전문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다른 영역보다 더 쉽게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가 역사 분야이다. 한자에 대한 지식만 있으면 어느 정도 혼자 연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이전까지는 이런 한자 해독 능력을 갖추더라도 볼 수 있는 책을 찾기 어려웠다. 한자 능력이 있으면 뭘 할 수 있나? 읽을 책이 없다면. 물론 책이 있었지만 거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이제 책이 생겼다. 수많은 접근 불가능이거나 어려웠던 책들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우리 눈 앞에 펼쳐졌다. 구텐베르그가 인쇄기와 더불어 갑자기 우리에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는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고 싶어도 책들을 볼 수 없어서 연구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많은 책들이 원본과 함께 우리 눈앞으로 다가왔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그걸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사학자들은 사실 이 원서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아니 읽더라도 대부분은 무관심하게 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스승들이 다 읽고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이미 정리된 내용을 발전시키거나 반대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연구 범위는 좁았다.
강단사학자 혹은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그냥 자기 선생들이 떠들던 대로 떠들면서 그걸 더 확고하게 얘기하고 확산시키면 됐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미 다 만들어진 토대에서 그냥 살만 붙이면 된다. 약간의 창의력을 추가해 하나씩 영역만 넓히면 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식민사학은 점점 더 견고하게 토대를 닦았고 점점 더 우리만의 역사는 사라져 갔다.
2023년 올해에는 얼마전부터 시작된 전라도가 일본땅이었다는 책을 냈고 그걸 유네스코에 등록까지 하려고 했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들이 하는 모든 연구의 근거는 없다. 그냥 어느날 자기 멋대로 써놓은 일본놈들이 쓴 한국사이다. 이 한국사는 전혀 근거가 없는 혹은 기존 자료를 왜곡해 만든 완전한 소설이다. 그런데 그런 소설을 가지고 역사라 떠들어대며 우리 땅을 송두리째 일본땅으로 바꾸려고 했다. 누가? 강단사학자들이. 대학교수라는 놈들이. 우리 역사를 쓰고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놈들이.
우리 땅은 정말 우습게 됐다. 옛날 일본놈들은 우리를 반도에 가두는 반도사관을 만들었는데 현재 강단사학자라는 놈들은 반도를 반반도, 즉 한반도의 반으로 더욱 줄였다. 북쪽은 중국이 만리장성을 연결해 평양까지 중국땅이었다고 주장하고 남쪽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일본땅이었으니 결국 남은 것은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가 끝이다. 물론 이 지역들도 머지 않아 일본땅이되거나 중국땅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이게 현재 한국의 역사학이다. 강단사학자라는 놈들이 헤게머니를 쥐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 역사를 편집하고 팔아먹고 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재야사학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활동은 힘을 받기 어렵다. 왜 돈이 도는 곳은 강단사학자들 사이니까. 그나마 재야사학자들이 약간씩 힘을 내서 여태까지 견뎌왔는데 이들의 힘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 전쟁에 참전한 것이 시민사학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재야사학자들을 자극해서 그들에게 역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또한 일종의 후원세력이 되었다.
시민역사가들이 참전하면서 전장이 넓어졌다. 지금까지 전장은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에 멈추어 있었다. 그 외의 것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들어 놓은 한국사가 이들의 바이블이었다. 여기에 갑자기 시민사학자들이 큰 힘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사실 시민사학자들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수십년 동안 자기 나름의 공부와 연구를 통해 기존 우리 사학의 관점 자체를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얘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허공에 아무런 메아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힘없는 소리였다.

17 역사란 나의 미래를 위해 쓰인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학문에는 우선 연구가 필요하다. 밖에 보이는 현상을 파고 들어가 원리나 원칙 혹은 사실을 발견하여 일종의 공식이나 규칙을 만들거나 함으로써 그 지식의 토대를 닦고 그를 바탕으로 어딘가에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 학문이다. 기초적인 학문도 있고 응용 학문도 있고 어쨌든 우리 삶에서 다양하게 학문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연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는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되어야 한다. 공유 없이 혼자만 알고 있는 학문은 마치 과거 구텐베르그 이전의 종교개혁자들과 다를바 없다. 그것이 공유되고 사람들에게 확대되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 삶에 뭔가 관련을 지을 때 그것이 학문으로써 가치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연구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지지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그 연구를 인용해 주어야 하고 이를 통해 검증이라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진실 혹은 사실로써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식으로 입증되면 수학이나 과학이고 사유를 통해 입증되면 사회나 윤리 혹은 예술이 될 것이다.
시민사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과정이다.
우선 이들은 그냥 혼자 외로이 역사에 대한 연구를 했다. 일반적으로는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특히 우리 역사 왜곡에 대한 반발 혹은 우리 역사를 이해할 수 없어서 궁금증을 가지다가 이러면 차라리 내가 스스로 연구를 해 보아야겠다 라고 연구를 시작한 케이스가 많을 것이다. 이것이 학문의 시작이니까. 그래서 보통 수십년간 혼자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가며 하나씩 둘씩 연구를 해왔다.
이들 연구는 처음에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하지만 이들의 연구가 획기적으로 급진전하게 된 계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탄생이었다.
사실 인터넷을 정말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신이다. 인류의 그 어떤 발명보다도 더 가치있는 발명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10년 걸려 해결하던 일을 불과 1시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인터넷이 있기 위하여 그 이전에 컴퓨터도 있고 전화도 있고 전기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들을 통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인간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도입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그리고 이 인터넷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시민역사학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목말라 있었다. 이들이 볼 수 있는 책들이 충분치도 않았고 어디에 가서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또 구할 수도 없었다. 겨우 겨우 이 책 저 책 찾아 읽고 스스로 정리하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자료들이 인터넷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자신들이 보던 책들이나 자료들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었고 그 번역이나 해석에 오류가 있을 때 그걸 찾아낼 수 있었고 자신들의 공부 범위를 혁신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무한한 보고였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했고 또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연구를 인터넷에 올리고 카페 등을 통해 토론하고 서로 정보 교환하고 하면서 점점 더 이들의 연구 범위는 넓어질 수 있었다.
이들과 기존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이들에게는 일본놈들이 만들어 준 식민사관이 바이블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예 식민사관을 신경쓰지 않고 그 이전 자료들을 보았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이다.
강단사학자든 재야사학자든 이들은 식민사관이라는 주어진 운동장이 있어서 그걸 벗어나기 어려운데 비해 시민사학자들은 아예 그것 자체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부분을 기록한 다양한 책들을 찾아서 직접 읽어보고 비교한다.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들이 기본적인 원서를 패스하고 일본놈들이 만들어준 바이블을 가지고 해석하고 서로 싸웠지만 시민사학자들은 아예 노는 물이 다르다. 기존 사학자들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방향을 택했다.
기존 사학자들이 일본놈들의 식민사관을 통해 연구를 한 후 다른 책들을 읽은데 비해 이들은 기존 식민사관은 아예 덮어버리고 보다 근원적인 책들, 일본놈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비교적 순수한 상태의 책들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강단사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적지 않은 재야사학자들조차 위서라느니 믿을 수 없다느니 떠드는 책들도 이들은 읽는다. 예를 들면 환단고기 같은 책이다. 그들은 이 책 제목만 말하면 치를 떤다. 왜? 그들의 주장에 반대되니까. 그리고 일본서기를 아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왜? 자기들 얘기를 뒷바침하니까.
둘 중 어떤 책이 진실인가?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쓰는 것이 우리의 자존심과 미래를 위한 목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 당연히 우리를 잘났다고 쓰는 책이 옳은 책이어야 하지 않나?
이건 애국심도 무엇도 아니다. 그냥 상식이다. 나를 잘났다고 쓰는 책이 올바른 책이다. 괜히 어줍잖게 나를 비판하고 객관적인 서술을 하느니 어쩌니 하고 역사적인 반성을 하느니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는 책은 역사책으로 가치가 없다.
왜 중국놈들이 동북공정하면서 자기들이 잘났다고 난리를 치고 일본놈들이 굳이나 자기들이 쳐들어간게 아니라 대동아 공영이 어쩌고 저쩌고 헛소리를 씨부리고 있나? 그놈들은 병신이고 무식해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쓰지 못하는 건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역사는 나의 과거고 나의 미래다. 내 찌질한 과거를 가지고 어떻게 내 위대한 미래를 만들 것인가?

18 유튜브와 공유
설마 아직도 역사가 진실이고 사실이고 객관적인 기록이고 어쩌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흔히 하는 얘기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즉 역사란 쓰는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기 입맛에 맞게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당연히 주관적인 기록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리고 그 기본 방향은 결국 자기 자랑이 될 것이다.
어쨌든 볼 수 있는 책들이 많아졌다. 환단고기와 같은 책들도 다시금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감추어 놓았던 우리 조상들이 쎃던 책들의 필사본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훌륭하신 강단사학자놈들은 이 모든 책들을 다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위서란다. 가짜란다. 소설이란다.
무슨 이유로? 물론 이유는 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 중 가장 큰 위서는 바로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조선사편수회가 쓴 조선사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소설, 일본서기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환단고기도 위서고 일본서기도 위서라고 간주하자. 그럼 한국인의 입장에서 어떤 책을 지지해야 하나? 이건 유치원 애들도 아는 상식이다. 어차피 역사란 우리를 위해 기록하는 건데 당연히 우리를 위해 기록된 책을 지지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 않고 남들을 위해 기록된 책을 지지한다면 그놈은 완벽하게 매국노일 뿐이다. 너무나 단순한 얘기 아닌가?
게다가 우리 강단사학자들의 모든 연구는 조선사편수회로부터 출발했는데 그 조선사편수회는 정확하게 우리를 반대하고 우리를 못살게 구는 남을 위한 연구를 한 집단이니 그 집단에 근거한다는 자체가 매국이다.
더구나 그 남이라는 일본놈들은 정말 우리와는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존재 아닌가? 그냥 단순하게 일제시대 우리 인구 2천만 중 800만이 일본놈들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구는 총 250만 정도였는데 일본놈들이 쳐들어와 50-100만명을 죽였다. 어떻게 이들을 용서할 수 있나? 더구나 지금까지 그들은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놈들이 한 얘기, 너희가 원래 미개해서 우리 같은 똑똑이들이 가서 개화시켜줘야 너희도 인간처럼 사는 거야. 이런 헛소리를 그대로 아직도 따르고 그걸 일본놈들이 완성시키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내가 완성시켜야겠다고 지랄하는 이 한심한 강단사학자놈들.
한 마디로 조선편수회의 조선사가 소설이었으니 그 이후 조선에 대한 역사 연구는 모두 그냥 가짜가 되는게 맞다. 모두 위조일 수밖에 없다. 그저 한심한 개뼉다귀 같은 소리들일 따름이다.
어쨌든 인터넷을 통해 자료가 공개되기 시작했고 더불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고 카페 등의 활동을 통해 의견 혹은 연구들은 공유되어지기 시작했다. 이 공유가 무서운 것이다.
혼자 주장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아무리 혼자 외쳐도 대답은 없다. 그래서 아마도 1인 시위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 하는 행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것이 의미 있어지기 위해서는 공유되어야 한다. 공유가 되어야 힘이 생기고 힘이 있어야 무엇을 원하더라도 일단 시작을 할 수 있다.
시민사학자들이 우리 역사 전장에 참전하게 된 것이 바로 이 공유 덕분이다. 혼자 각자 하던 연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혹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거나 하면서 인터넷으로 사람들은 의견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정말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저 어쩌다 한 번 커피샵에 모여 떠들어도 겨우 몇 사람의 아무 메아리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공유는 몇 사람에서 끝나지 않는다. 100명, 1000명, 10000명, 그리고 100000만명. 이렇게 숫자는 늘어가면서 사람들은 또 훨씬 더 많은 내용의 자료들을 퍼오기 시작했고 그만큼 그들이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이러는 상황에 이 공유에 기름을 부은 일이 생겼다. 바로 유튜브인 것이다.
유튜브는 우리 역사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혁신을 선사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평면적인 공간이다. 글이 있고 그걸 읽을 수 있고. 하지만 유튜브는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진화했다. 거기에는 글보다 얼굴이 있다. 내 얼굴을 보여 주고 또 자료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수십명이 혹은 수백명이 모여 실시간으로 토도 가능하다.
유튜브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일차로 인터넷을 통해 궁금한 것은 검색하고 공부하여 지식을 습득했다. 하지만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공부하는 수고를 줄여 주고 대신 알려 준다. 내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교육을 시켜 주는 플랫폼이 되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냥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모두 나온다. 그리고 그걸 그냥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길게 문장이 씌여 있고 그걸을 읽고 이해하고…. 이런 과정이 필요치 않다. 그냥 틀어 놓고 보고 들으면 된다. 설거지하면서 화면은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된다. 그럼 그냥 나는 교육이 되는 것이다. 유튜브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편의성이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
이 유튜브의 등장으로 세계는 매일 혁신을 거듭한다. 이제 세상의 모든 흐름은 유튜브를 매개로 세계에 전파된다. AI 에 대한 소식도 매일 매 순간 매초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유튜브는 정말 혁신이다. 유튜브는 구텐베르그의 인쇄기이다.

19 시민사학자들과 넓어지는 지평
시민사학자들의 등장은 정말 우리 역사를 제대로 된 길로 이끌 희망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몰랐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고 서로 서로 확인하면서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뭉치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이들의 연구와 세가 서서히 확산되다가 유튜브를 타고 본격적인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모두 이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이들의 존재 자체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또 알려 지더라도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들은 아마추어였으니까. 프로와 아마추어는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하지만 시민사학자들의 연구는 생각과는 매우 달랐다. 이들은 그냥 단순히 역사에 취미가 있어서 심심할 때 한자나 몇 글자 찾아보는 수준이 아닌 정말 한자 전문가들이었으며 또 이들이 보는 책이나 자료는 한국어로 번역된 것들이 아닌 원서였고 특히 이들의 관점은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운동장 바깥에 서 있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론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강단사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무시하면서 한편으로는 더더욱 강력하게 반발했다. 시민 사학자들의 연구가 더 확장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면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 있게 될 것이므로 이를 차단해야 할 것이며 막상 공격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편으로는 깔보면서 그들은 그냥 취미로 역사책 몇개 뒤적이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 무시했고 자기들은 전문가라 저들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저들의 논리가 확대되어 그들의 영역을 침범할까 노심초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재야사학자들도 영향을 받았다. 사실 시민사학자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생긴 매우 큰 소득 중 하나가 바로 재야사학자들이 변화를 시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민사학자들의 폭넓은 연구는 재야사학자들을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등장으로 재야사학자들은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자기들의 전장터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뛰쳐나온 사람도 있고 또 아직도 그 내부에서 싸우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이 재야사학자들이 워낙에 자기들 스스로 자기들 영역에 취해있기 때문에 쉽사리 운동장을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시민사학자들의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우리 역사 범위를 매우 넓혔다는 것이 될 것이다. 강단사학자들은 우선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백제가 매우 늦게 건국해서 별 볼일 없이 찌질이 노릇을 했고 백제와 신라 모두 한반도 남쪽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고 고구려는 북쪽과 약간의 만주 지역을 차지했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의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 단지 조금 더 넓게 우리의 영토를 그리려 했지만 사실 재야사학자들이 그렇게 활발하게 연구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그들도 각각 나름대로 연구를 했지만 그것들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이 한반도에 머무는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시민사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이들의 관점과 다르다. 대부분의 시민사학자들은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들처럼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에서 찾지 않고 한반도 바깥, 특히 저 북쪽과 중국의 동쪽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연구한 내용을 발표한다. 그걸 누구에게 심사하라고 요청하지도 않고 학술 연구라는 이름으로 학회지에 게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그리고 그들의 발표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지지자가 되는 것이고. 이런 방법으로 그들의 이론들이 일반인들에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역사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일단 연구란 크게 논문과 책을 통해 발표한다. 그리고 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학교수들이다. 그리고 관련있는 영역에 존재하는 연구소들, 특히 역사 같은 경우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역사기관들의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발표한다.
연구의 발표는 기본적으로 논문이다. 논문은 주로 학회지를 통해 발표된다.
어떤 주제 혹은 연구 분야에 대한 학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사를 연구하는 곳은 한국사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사연구회 등 수많은 한국사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기관들이 있다. 이 기관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각 전공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그 제자들과 정부기관 연구원들이 학회에 가입하고 자기의 연구를 그들이 출판하는 학회지 혹은 학술지에 게재한다. 각 학회는 적게는 1년에 한권 많게는 1년에 6권 이상까지 학술지를 출판한다. 그리고 각 학회에 참가하는 회원들은 학회지에 자신의 연구를 투고할 수 있으며 일정 심사를 거쳐 게재를 하게 된다.
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심사다. 누가 심사하나? 각 학회는 학회 논문 심사위원들을 두고 있다. 물론 학회 회원들 중에서 임명한다. 당연히 주로 대학교수들이다.
여기에서 왜 대학의 한국사 연구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지 그 이유가 나온다. 바로 심사 때문이다. 심사를 통해 심사위원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논문들은 게재가 되지 못한다. 즉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더라도 발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발표되지 못하고 공유되지 못하는 논문은 아무 쓸모가 없다. 게다가 논문을 발표하지 못하면 대학교수가 될 수 없다.

20 공유의 확대
학회를 다시 한 번 보자.
보통 대학교수들은 1년에 정해진 분량 이상의 연구 성과를 성취해야 한다. 그 가장 기본이고 핵심이 바로 논문 발표이다. 그래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도 또 교수가 된 이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연구를 하고 보통 1년에 두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다. 만일 논문이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연구를 인정받을 수 없고 그러면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를 보면 왜 강단사학자들이 대부분 식민사학자들인지 쉽게 이해가 된다. 대학교수가 되려면 연구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만일 관점이 식민사학이 아니면 연구 실적을 쌓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아무리 새롭고 훌륭한 연구를 해서 논문을 발표하더라도 그것이 학술지에 게재되어 출판되지 않는 한 그건 연구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 연구가 인정받아지기 위해서는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식민사학자들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기존 대학 사학과에서 한국학을 하는 교수들은 많은 수가 식민사학자들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알까? 자기들의 연구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아마 아는 교수들도 있고 모르는 교수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구를 번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괜히 찍히면 자기만 여러 모로 불편해지니까. 물론 노선을 바꾸는 교수들도 있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고 보면 될까?
이런 이유로 연구와 그 연구의 공유자체가 최근까지 막혀 있었다. 아니 끼리끼리만 진행되고 있었다. 어차피 연구에 필요한 능력과 자료와 관점 중 능력은 그렇다치고 자료는 자기들이 보던 자료만 계속해서 울궈 먹으면 되고 관점이야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그런데 이런 정해진 운동장이 밖으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민사학자들의 등장에 의하여. 아마도 기존의 사학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의 능력을 갖추었고 자료는 오히려 시민사학자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강단사학자들은 굳이 다른 책들을 볼 필요 자체가 없다. 다른 책을 본다는 것은 아마도 불경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그들이 해야 하는 연구의 영역은 확정돼 있었으니까. 게다가 뭔가 자기들 의견과 다른 책이 있거나 하면 저건 위서야 거짓말이야 역사책으로써 가치가 없어 그리고 버리면 됐다. 그럼 기자들부터 시작해 모두 동일한 내용을 한번 뒤풀이 함으로써 그 새로운 발견은 그냥 헛소리가 되고 위서가 됐다. 그러니까 기존 사학자들은 아주 편하게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고 논문을 막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게 강단사학자들이다.
그리고 거의 동일한 능력과 자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로 약간은 서럽게 살던 사람들이 재야사학자들이었다. 단지 이 둘은 결과만 반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같은 운동장에서 놀되 노는 부분이 서로 다를 뿐 결국 같은 곳에 항상 함께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시민사학자들의 세가 불어나고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이 시민사학자들은 정해진 운동장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 운동장을 정한 것이 불손한 목적을 가진 일본놈들이었고 매국노들이었기 때문에 그 운동장 자체를 거부하고 다 무시한 상태에서 새로운 판을 짰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우리 역사는 이 시민사학자들에 의해 시작된다고 보아도 된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일제시대의 모든 한국사를 싹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이 시민사학자들이 시작한 연구를 정통으로 만들어 그걸 심화 연구하면 그게 우리 역사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독립운동 때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던 때 독립운동 단체가 거의 7000개나 됐었단다. 이걸 또 어떤 사람들은 단합이 안된다고 얘기하겠지. 하지만 이건 단합의 문제가 아니고 너무나 똑똑한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3.1운동 때 발표된 독립선언문을 내팽개쳤다. 왜?
여기서 잠깐 독립운동 시절로 가보자.

21 한국인의 위대함
우선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혁명선언의 일부를 보자. (링크를 걸어 놓았으니 꼭 전문을 읽어 보시길.)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발자국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일체의 자유가 없어 고통의 울분과 원한이 있어도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 – 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속여 소전오존(素전鳴尊)의 형제” 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 한 일본 놈들 적은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정치를 찬미하는 반 일본화(半日本化)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 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 채우기, 단근질·채찍질·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 콧구멍에는 물 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사전에도 없는 가진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옥문에서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가 될 뿐이다.
(중략)
이상의 사실에 의거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이건 신채호 선생의 조선의열단 선언으로 1923년에 쓴 것이다. 이 내용을 보면 신채호 선생 같은 사람들은 3.1운동 같은 순진한 행동으로 독립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3.1운동이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3.1운동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가를 볼 때 또한 3.1운동을 이끌었던 대표들을 볼 때 저런 방식으로 우리가 언제나 독립을 얻을 수 있을까가 의문이긴 하다.
우선 3.1 운동 독립 선언문이 낭독된 것은 1919년 3월 1일 토요일이다. 원래는 고종의 국장일인 3월 3일 전날인 3월 2일 일요일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장례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무질서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하루 앞당겨 3월 1일에 거사를 치루기로 했단다.
그리고 원래는 탑골공원에서 낭독하기로 했으나 사람들인 너무 모이게 되면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결과 요릿집 태화관에 모여 대충 눈으로 훑어보고 끝났다고 한다. 이에 분개한 학생들이 찾아와 항의한 후 이 학생 중 누군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읽었다는 것이다. 정말 이 지도자들은 이런 독립선언을 통한 독립 획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이 중 셋은 아예 친일파로 변절하기도 했다.
물론 3.1운동을 폄훼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당연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인 것은 너무나 자명하니까. 단지 이 운동이 보다 본격적이었고 보다 강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만세운동은 3개월간 진행되었고 102만명이 시위에 참가했으며 1542회의 시위가 열렸다. 사망자는 7500명 부상자 16000명 그리고 47000명이 체포되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보다 폭력적 혹은 혁명적인 방법으로 진행했더라면 실제로 그 당시 일본을 때려 잡고 독립을 성취할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처럼 동일한 현상 혹은 사건에 대하여 서로 같은 목적을 공유할지라도 그 방법론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할 때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더 빨리 원하는 것을 이룰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독립하는데 큰영향을 끼친 인물은 장개석이다.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전체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후 여러 나라들을 독립시키는 것을 어느 정도 찬성했지만 굳이나 그 선언에 한국을 콕 찝어 독립시킨다는 문구를 넣는데 크게 일조한 것이 장개석이란다. 이유는? 그가 한국인들의 독립을 향한 투쟁을 너무나 생생하게 잘 알고 있고 한국이 독립을 얼마나 원하는지 너무나 잘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는 김구 선생을 매우 존중했고 안중근 윤봉길 등 수많은 조선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적군을 사살한 사실에 매우 감동하고 있었다.
특히 안중근 선생은 일본놈들이 그를 테러리스트 취급을 했을 때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며 대한독립군의 일원으로써 적군을 사살했다고 천명했다. 이런 기개에 장개석이 감동하고 한국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미국 국인들과 함께 훈련받고 곧 한국으로 들어올 젊은 청년들이 있었고. 그래서 아마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독립을 쟁취했을 것이다.
어쨌든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들이 있고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3.1운동이 일종의 비폭력 운동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보다 강력한 독립운동을 요청하고 지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3.1운동 결과로 상해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그리고 일본놈들이 통치방식을 바꾸기는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소위 문화통치. 그래서 조선은 3류다라고 끊임없이 부르 짓는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쨌든 저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했고 저렇게 큰 희생을 치룬 것에 비하면 소득은 너무 적은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3.1운동의 가장 큰 효과는 저 만세운동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는 정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독립운동을 시작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누군가는 총을 들고 조선 독립군으로 뛰어 들었고 누군가는 밀정이 되어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연락병 노릇을 했고 또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시골로 내려가 어린 학생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3.1운동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고 하지만 조금 더 강력하게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쨌든 3.1운동은 우리 헌법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가장 먼저 꼽고 길이 지켜나가야 하는 숭고한 우리의 넋임에 틀림없다.

22 우리는 똑똑한 한국인이다
어쨌든 수많은 조선인들이 독립을 부르짖었고 직접 행동을 통해 독립이 되고자 노력하였고 그 방향이 다양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협회와 모임이 존재한다. 사람이 몇명 모이면 곧바로 협회나 모임을 조직하여 원래 있던 조직으로부터 독립한다.
왜 우리는 이토록 다른 모임을 만드는 일에 열중인가? 정말 우리가 단합이 되지 않기 때문인가?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래서 내가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하면 더 잘될 것 같기 때문에 독립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그래서 잘 되는 경우도 있고 잘 안되는 경우도 있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만이 가진 일종의 특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굳이 나쁘다고 볼 필요는 없다.
단지 서로 배타적이 되지 않는다면 서로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가면 되기 때문에 뭔가 모두 잘 될 수도 있고 또는 서로 배타적이 되어 모두 망할 수도 있다. 결국 서로의 의견과 방법의 차이이다. 의견과 방법이 다르다면 함께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단합이 필요할 때 단합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단합이 필요할 때는 그 누구도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
가장 최근에 우리의 단합을 보여 준 사건은 역시 IMF 때 금모으기 운동이다. 이를 통해 남들은 수십년을 끄는 IMF 빚 상환을 우리는 단 3년 8개월만에 끝냈다. 아무도 사람들을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도 참가하라고 독촉하지 않았다. 시민들 스스로 일어나 협동한 사업이었다.
우리의 단합은 특히 우리의 투쟁 때 빛을 발한다. 우리 역사의 몇몇 전쟁에서 우리를 구했던 것은 국가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끼리 단합을 통해 군대를 조직했고 투쟁했고 결국 이겼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것도 평범한 시민이었고 그 이전 이후 외국과의 전쟁에서 시민들은 항상 의병의 모습으로 등장했고 일제가 점령한 기간에도 의병들이 등장했다.
사실 우리의 왕조들은 다른 나라의 왕조들에 비해 온순했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온통 왕들이 앞장 서서 전쟁하느라 볼일 못본 역사들이 많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밥만 처먹으면 일어나 전쟁했다. 그들이 얼마나 전쟁을 했는지는 그들의 음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으면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없어서 그냥 생선을 날 것으로 먹었을 것이며 또 얼마나 밖에서 전쟁하느라 굶주렸으면 그냥 온통 음식을 기름에 튀겨 들고 다니면서 먹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런 전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음식만 보아도 음식 자체가 평화롭다. 우선 밥 따로 국 따로 그리고 반찬 따로 음식이 나온다. 우리 음식만 그렇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다 한꺼번에 섞어 나오지 우리처럼 다 분리해서 반찬이라는 형태로 나오는 음식은 찾기 어렵다.
만일 우리가 전쟁이 많았더라면 만일 우리가 먹고 살기에 급급했더라면 저런 종류의 음식문화가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바쁘니까 함께 다 섞어 넣고 한꺼번에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시절에도 우리는 그렇게 먹지 않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그냥 대충 음식 섞어 먹지 않았고 음식 따로 반찬 따로 가지고 가서 다 따로 펴놓고 먹었다. 평온하지 않았더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음식 문화이다.
일본놈들이 우리가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그놈들이 우리에게 뒤집어 씌운 프레임의 하나일 뿐이고 실제로 우리는 크게 전쟁을 벌인 일이 없다. 나라들 사이에 영토 전쟁도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았고 적절하게 서로의 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침도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수나라와 당나라를 제외하고 고려 시대 요나라가 몇 번 그 이후 일본의 침략과 두 번의 호란이 전부다. 만일 수많은 외세의 침략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 긴 시간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3국시대 1000년, 고려시대 500년 그리고 조선 시대 500년이다. 중국이 겨우 수십년씩 지속됐던 왕조를 유지했던 것과 너무나 차이가 나며 특히 중국 역사의 절반을 이민족이 지배했는데 우리는 일제 시대와 약간의 고려 후반부를 제외하면 외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이처럼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며 평화롭게 살아온 민족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우리가 똑똑했기 때문이 아닐까?

23 한국인의 IQ
지금 얘기의 핵심은 일본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 있지 말자는 것이.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가 똑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럿으로 분리되는 현상을 일본놈들의 교육에 갇혀서 우리가 서로 협동도 할 줄 모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고, 워낙 우리가 똑똑하다보니 서로 추구하는 이념이 같을지라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실천 방법이 달라서 그렇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할 때 하고 놀 때 노는 민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두 번째가 우리고, 더 충격적인 사실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열심히 노는 나라가 우리다.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한가? 우리는 할 때 하고 놀 때 놀 줄 아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바로 우리를 받치고 있는 똑똑함.
실제 세계에서 평균 IQ가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다. 2023년 8월 6일 기준으로 우리가 106.58로 세계 1위, 그 다음으로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스위스 싱가포르가 온다. 우리가 그렇게 선진국이라고 떠 받드는 미국은 97.81로 82위, 독일 102.04로 15위, 프랑스 98.93으로 50위, 영국 96.78로 110위 이다.
물론 IQ가 뭔가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전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것은 우리가 맞다. 그리고 그렇다는 증거도 여럿이다. 특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즉 특허출원. 인구 대비 압도적 1위가 바로 우리다. 우리가 이렇게 똑똑하기 때문에 다소간 흩어지는 경향도 있을 수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시멘트보다 더 단단한 단합을 보여주는 나라가 바로 우리다.
그런데 이런 장점을 가진 우리를 일본놈들은 단합도 하지 못하고 맨날 당파싸움만 했다고 폄훼하며 우리를 완전히 거지발싸개 취급을 했다. 세상에 당파 싸움 안한 놈들이 누가 있냐고?
어느 나라는 대통령을 했던 놈이 온갖 비리를 저지른 것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데도 그 놈은 뻔뻔하게 나는 잘못 없다고 외치고 있고 또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니 절반 가까이 되는 인간들이 지지를 한다. 도대체… 우리는 문제를 일으켰던 대통령들을 모조리 감방으로 보냈는데 이놈의 나라는 어떻게 이렇게 한심할 수가.
이게 바로 국민들이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는 국민들이 똑똑했기 때문에 여태껏 긴 시간 동안 나라를 유지해 왔다. 물론 꼭 한 민족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민족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어쨌든 우리는 이 머리로 5000년의 역사를 견뎌왔고 마지막 순간에 일본놈들에게 나라를 빼았겼지만 결국은 되찾았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를 그렇게 멸족시키려했고 정말 없애려 했던 그 나라를 넘는 성장을 이루어 드디어 그들을 추월했다.
이걸 뭘로 설명할 수 있냐고? 머리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너무 너무 한심하게도 아직도 일본을 칭송하는 놈들이 너무 많다. 특히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놈들이 그렇다.
과거 총리 후보라는 문창극이라는 놈이 있다. 그 놈이 한 얘기가 있다. <조선인은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총리 후보라는 놈이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는 불행하게도 단지 친일파이거나 혹은 그들에게 빌어 붙어먹던 측근들이 아닐지라도 많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다. 그냥 우리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일본이 우리를 이끌어 준 덕에 그나마 요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다는 생각.
이게 2014년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지 7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이런 참담한 소리를 지껄이는 개새끼가 있다는 것은 정말 정말 너무도 유감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놈들이 35년간 우리 머리 속에 심어 놓은 교육이고 이것이 아직도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우려스럽다.

24 우리 한국인이 시급하게 극복할 일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우리 한국인은 만나면 서로 피해 주고 또 단합도 못하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비하를 극복하는 것 이다.
이건 순전히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조선놈들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우리가 도와서 그나마 근대화라도 해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라고 끊임없이 교육한 결과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직도 그렇게 믿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인다. 주옥순인가 뭔가라는 그 한심한 할머니는 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이런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아이들도 우리를 별로 시원찮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교포들 중 이 일본놈들의 교육이 강하게 남아 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을 무시하고 한국인을 멸시한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성장한 자식들이 그 부모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은 거지같고 교양도 없고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다.
도대체 세계 10대 강국이 시원찮은 나라라면 어떤 나라가 괜찮은 나라인가?
무엇보다도 한국인은 스스로를 시원찮은 민족이라 생각하는 자기 비하를 극복해야 한다. 아니 당장이라도 우리는 원래 별로야 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는 원래 조선인이 미개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원찮은 종족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일본놈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35년간 끊임없이 시행한 [조선인 3류 시민 만들기] 교육 때문에 생긴 일이며, 우리가 일본놈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 당해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되어졌기 때문이다.
일본놈들은 조선인은 자주적이지 않고 협동적이지도 않으며 맨날 서로를 헐뜯고 당파싸움만 하다가 망한 민족이라고 끊임없이 한국인을 세뇌시켰고 그 효과가 아직도 강력하게 많은 한국인들에게 남아 지속되고 있다. 특히 많은 중장년층들, 그리고 이민 가정 중 옛날부터 한국이 시원찮다고 생각하는 부모로부터 영향 받아 한국인이라면 무시하고 멸시하는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한 세대들.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며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자주적이며 협동으로는 우리를 따를 민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IMF를 그렇게 빨리 탈출한 국가가 존재치 않고 대통령을 완벽하게 평화적인 시위로 탄핵해서 내쫓았던 국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 그게 바로 한국이다. 경제적으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우리가 오늘날 세계 10대 강국이 되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뛰어난 민족이라는 증거다.
우리는 정말 당장 벗어나야 한다. 당장 우리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덧씌운 프레임에서 벗어나 더 이상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고 우리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선 [한국은 아직 멀었어] [한국 사람은 원래 저래] [내 저럴 줄 알았어] [한국 사람은 저게 문제야] [한국 사람은 맞아야 해] [한국 사람은 저래서 안돼] 등과 같은 [한국 사람은….] 표현부터 없애야 한다. 그리고 정말 하루라도 빨리 일제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결국 일본놈들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가 별볼일 없는 민족이라는 교육이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3류 시민으로 간주하도록 만들었다. 역사가 문제다.
신채호 선생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겸 역사학자들 중 한 분이셨던 박은식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形(형태)이고 역사는 神(정신)이다. 즉 역사가 살아있는 한 국가는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
일본놈들이 변질시킨 우리 역사, 하루라도 빨리 원래 지위로 되살려 놓아야 한다. 우리 서로 무시하지 않고 서로 욕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자.

25 지금이라도 친일파는 척결되어야 한다
정말 앞에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일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두 번 얘기할 필요 없이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한 일종의 적개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건 한국인이 아닐 것이다. 굳이 그 이전 수많은 왜구의 출몰이나 임진왜란은 말하지 않더라도 아주 간단하게 일제시대만 보더라도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일단 표현부터 다시 가자. 일제시대는 일본제국주의 시대, 즉 일본의 제국주의라는 일상적인 표현이므로 우리에게는 맞는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산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대일투쟁기를 통해 살아왔다. 앞으로는 대일투쟁기로 쓰자.
어쨌든 이 시대를 얘기하면서 더 열받는 것은 일본이 다른 나라들에는 모두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상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사과를 한 후 곧바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직 우리에게만 제대로 된 사과도 배상이나 보상도 하지 않았다. 이 얘기를 다시 생각하면 일본은 아직도 우리 한반도를 자기 땅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한 것도 없고 배상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 2천만 인구 중 800만이 죽거나 피해를 입었는데 어떻게 그걸 자기들 잘못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나? 그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현재 죽지 않고 살아서 떵떵거리고 있는 친일파 놈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그 놈들이 끊임없이 여기저기 다니며 일본 덕분에 우리가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듣고 분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 그랬나 정도로 생각하거나 혹은 수긍하는 경우도 많다.
문창극이란 놈이 한 얘기를 다시 한번 보자.
“조선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 것은 이씨조선 시대부터 게을렀기 때문”이라며 “이를 고치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하나님이 받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조선 민족의 DNA로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성을 보면 우리가 온전히 독립했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됐을 것”이라며 남북 분단도 이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했다.
정말 이런 개새끼가 세상에 어떻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런 놈이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한국인은 바보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놈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겠다던 그 병신 같은 년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하긴 저 따위 인간들과 상종을 했으니 탄핵으로 감방에 갔겠지…
도대체 한국인으로서 저렇게 생각하는 놈들은 정말로 이해를 할 수 없다. 문제는 저렇게 생각하는 인간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주옥순이라는 늙은 년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국민의 짐이라는 놈들을 지지하는 인간들 중 많은 수가 저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이 가능할까?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으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옳고 그른 것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있는 머리가 없나? 그렇게 자존심마저 없나?
정말, 그때 일본이 우리를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선 남북으로 갈라지지도 않았고 풍부한 자원과 뛰어난 머리로 지금 세계 1위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일본이 우리를 정복하면서 우리나라는 영토도 잃어버리고 역사도 잃어버리고 비루하게 빌어먹는 3류 국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빌어먹는 3류 국민이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우리의 원래 DNA라 일본놈들은 우리를 세뇌시켰다. 그리고 그 세뇌당한 뇌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곳에서 너무나 잘 작동하고 있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천추의 한이다.
특히 일본놈들에 의해 직접 교육을 받고 또 그들의 발달된 문물을 경험했던 장년 세대에 이런 현상이 심하다.
이들은 정말 어려운 시대를 견뎌온 사람들이다. 못먹고 못입고 정말 거렁뱅이로 살면서 일본놈들로부터 똥개 훈련시키듯 훈련을 당했으니 이들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것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그냥 일본에 대한 찬양 내지는 감사일뿐이다.
물론 진심으로 일본에 감사하는 계층도 있을 것이다. 소위 친일파로 알려진 놈들. 그들의 삶은 20세기 초 이래 아니 어쩌면 그 훨씬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언제나 꽃길이다. 당연히 지금도 꽃길이고 너무나 탄탄대로다.
나라를 팔아먹고 동포를 못살게 군 대가로 자기들 개인의 이익을 취하고 재산을 불렸으며 그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아직도 이 친일파 놈들이 많이 남아있다.
물론 그 조선말기라는 시대 우리 삶이 매우 훌륭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시 고종이나 민비는 정말 최악의 왕이고 왕비였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언제나처럼 우리 문제를 해결했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그만 일본놈들이 우리가 자리를 잡고 일어서기 전에 쳐들어 오면서 문제가 생겼고 대일투쟁기가 끝나고 친일파놈들을 척결하지 못하면서 우리의 역사가 묘하게 뒤틀어졌다.
정말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친일파를 골라서 척살해야 한다.

26 독립과 미국의 진입
우리는 왜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했나?
우선 우리가 어떻게 독립하게 되었는가를 보자.
우리의 독립이 처음 언급된 것은 1943년 미국 영국 중국이 참가한 카이로 회담을 통해서이다. 이때 전세는 이미 기울었고 연합국이 승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이 회담에서 특히 영국의 입장이 문제가 되었다. 영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인도나 버마 등을 계속 지배하기 원했다. 그래서 문서로 확실하게 여러 나라들이 독립되는 것에 사인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 때문에 우리의 독립에 대한 내용도 논의될 수 없었다.
앞에 한 번 얘기한 것처럼 우리 독립이 논의된 것은 장개석에 의해서이다. 물론 장개석이 자신의 땅을 제대로 지키고 빼앗겼던 곳을 찾으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장개석은 무엇보다 한국인에 대한 일종의 존경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아시아 모든 국가를 지배하는 동안 누가 가장 격렬하게 투쟁했는가? 우리였다. 중국의 5억이 넘는 인구는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겨우 2000만의 인구로 안중근 의사를 비롯 수많은 한국인들이 목숨을 버리며 일제에 항거했고 수많은 투쟁을 하며 우리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장개석은 이런 한국인의 기개에 매우 큰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자기들이 정부를 옮기며 이사다닐 때 김구 선생도 항상 함께 모시고 다녔다. 그리고 카이로 선언에서 영국 때문에 한국에 대한 독립이 어려워지자 루즈벨트를 설득해 독립을 얘기한 것이 바로 장개석이다.
그 이후 포츠담 회담을 통해 신탁통치라는 일정 기간을 거쳐 한국을 독립시키는 것이 결의되었고 결국 남과 북에 소련과 미국이 진주하여 5년 이내에 독립국가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동아일보의 오보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내용은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미국이었고 또 그 신탁통치도 5년 이내 나라를 제대로 갖출 때까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국내의 모든 파벌들이 분리되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신문에서 그냥 덮어놓고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제 소련과 미국의 지배로 들어간다는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극렬하게 좌우가 나뉘게 되었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이는 남북이 분단되는 사건으로 귀결된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남북 분단의 시작은 이승만부터이다. 그러고 어떤 면에서 보면 해방 이후 우리 정부가 생기는 1948년부터 이승만이 실각하는 1960년까지 우리 현대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슬픈 사건들이 결국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1946년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정부를 조직하자고 강조했고 결국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정부를 세우며 나라는 갈라지게 된다.
물론 이때 남으로 들어온 미군이나 북으로 들어온 소련군이나 모두 해방군이었다. 그리고 이들 미군이나 소련군이 들어오기 이전에 여운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작업을 통해 전국에 건국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 독자적으로 이미 사회질서가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흔하게 생길 수 있는 약탈 같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련은 이 단체가 행동하는 것을 거의 문제삼지 않았지만 미국은 이 단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처음부터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에 대한 신탁통치를 시작했다. 미국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고 들어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건국준비위원회의 행동강령은 세 가지였다. 대동단결하여 일본을 쫓아내고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 조선의 완전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세력을 박멸한다. 민주주의적 대중의 해방에 치중한다. 이런 생각으로 나라가 유지되고 있었고 아무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 해체시켰고 이들이 한 가장 첫번째 일은 숨죽이며 숨어있던 친일 부역 공무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일본을 쫓아낸 후 우리에게 생긴 첫번째 불행이 이렇게 시작된다. 정말 모조리 다 잡아 죽였어야 할 인간들이 마치 바퀴벌레들처럼 스멀스멀 기어나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사람들에게 호령을 시작했다.

27 일본놈들은 죽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보자.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다. 우리에겐 당연히 정부가 있었다. 상해에 있던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미국은 그들과 함께 한국 내 침공작전까지 계획하고 함께 훈련까지 했다. 그리고 그 정부에서 잠깐 동안 대통령 노릇을 하다 탄핵당한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임시정부는 미국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당시 임시정부 간부들은 모두 자신의 직을 버리고 개인의 입장에서 국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까지 수많은 일을 하던 우리의 임시정부였다. 그런데 그걸 미국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임시정부의 임원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도 막았다. 개인의 자격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정부일에 관여치 않겠다는 서약까지 하고 들어와야 했다. 그들이 그때까지 주도해 오던 많은 항일 사업들과 미국과의 공조, 예를 들면 함께 국내로 들어와 후방교란을 하려고 했던 특수부대의 구성과 훈련 등의 모든 사업이 다 없던 일이 되었다. 그냥 그들이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개인의 일이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국내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승만도 들어왔다. 이승만은 이미 임시정부에서 탄핵된 인물이었지만 그는 영어에 능통했고 당시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어느 줄을 잡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세력을 만들기 위해 미군과 손을 잡게 된다.
미군 입장에서도 기왕에 있는 세력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그 세력이 매우 똑똑하고 강직한 세력이었고 오로지 우리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굉장히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관리하기 편하고 쉽게 컨트롤 가능한 사람을 찾았을 것이고 그것이 이승만이었을 것이다.
이때 이미 우리 사회는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시골 동네까지 세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조직이 그대로 국가 조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가능했다. 이미 모든 것은 다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이 조직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조직이 다소간 사회주의 냄새를 풍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미군은 이 조직을 와해시키고 처음부터 시작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유경험자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당시 유경험자란? 바로 대일투쟁기 일본에 부역하던 친일파 세력이었다.
해방을 맞이하며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했고 동시에 친일하던 부역자들은 숨기에 급급했고 언제 죽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곧 죽게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미군이 그들을 다시 원래 자리로 부른 것이다.
무늬만 일본에서 미군으로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은 과거와 동일하게 진행되게 되었다.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군을 죽이던 경찰이며 군대를 포함한 수많은 친일 공무원들이 모두 그대로 돌아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독립군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라는 사람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정말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인간들이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과거와 동일한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했다. 뭔가 좀 더 나은 어떤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헌국회를 통해 반민특위, 반민족행위자특별처리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단절된 정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일제에 부역한 놈들을 찾아 처단하는 일이었기에 제헌 국회에서 통과되어 친일파 색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활동한 후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는 해체되었다.

28 친일파를 처벌하지 못해 비뚤어진 우리 역사
여기 몇가지 수치를 보자. 중국과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하면 이렇게 된다.
사법처리 건수 – 중국 4만5천건, 프랑스 55천건, 한국 221건
집행 선고 – 중국 15000명, 프랑스 6700명, 한국 41명 (이 41명도 모두 무죄 또는 병보석으로 풀려남.)
사형집행 – 중국 359명, 프랑스 767명, 한국 0명
세상에 중국이 부러운 일이 생기네…
그러니까 반민특위는 겨우 3개월 활동하면서 이승만과 이승만 정부의 농간으로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 독립군들을 잡던 놈들이 그대로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 이제 독립군 대신 공산당을 잡는다는 소리를 하며 진정한 애국자들을 모두 처벌하고 못살게 굴었다는 것이다.
반민특위가 뭔가? 일단 해방이 되었을 때 미국놈들이 방해를 해서 일본놈들을 때려잡지 못했다. 우선 일본으로부터 이곳으로 와서 살던 일본인들은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 얼른 가지고 있던 재산 모두 팔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들보다 더 큰 문제는 일본놈들 밑에서 부역하던 친일파들이었다. 물론 이 중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그냥 할 수 없이 일하던 사람도 있고 또 자발적으로 정말 독립군 색출하며 독립군 고문하며 정말 일본놈이 되었다고 착각하던 놈들도 많았다.
노덕술이란 놈은 독립군 고문 기술자였다. 고문을 너무나 잘해 일본으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일본이 고문 기술을 정리했을 때 그 중 70%가 이놈의 작품일 정도란다.
이 놈은 정말 질이 나쁜 놈이다. 우선 고등계 형사, 즉 독일로 따지면 게쉬타포에 속한 경찰이었다. 그래서 주된 업무가 독립운동에 관련된 사람들 체포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일이었다. 정말 악질 중 악질이었다.
이 놈이 해방이 되면서 얼마나 겁이 났을까? 하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해방 당시 평양에 있다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구금되었지만 1945년 월남해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 되었다. 이게 말이 되나?
어쨌든 그러면서 반 이승만 세력을 숙청하고 좌익 분자 검거를 주도하였다. 여운형 암살 배후로 거론되기도 하고 이승만으로부터 반공 투사라 극찬을 받기도 했단다. 정말 그 밥에 그 나물이지… 그러다 드디어 1948년 정부가 수립되고 국회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를 만들어 친일파 숙청을 시작하는데 그가 반민특위 간부 암살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도망다니는데 이때도 경찰 지프에 경호원까지 대동하고 다녔단다. 요즘도 이것하고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하여간 이러던 놈이 잡혔는데 당시 가지고 있던 재산만 현재 시세로 100억이 넘는단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아무 일 없었다.
무죄로 풀려났고 다시 경기도청 경찰국 주임이 되었다. 그 다음에 한 술 더 뜬다. 군에 장교로 입대한다. 그리고 헌병 중령이 되었다가 헌병 대장, 범죄수사단장… 등을 지냈다. 이러는 중 우리나라로부터도 화랑무공훈장 2개와 충무무공훈장 1개를 받았단다. 참고로 이렇게 친일파 놈들이 이승만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경우는 17명이란다.
이후에 국회의원까지 한다고 설치다가 다행이 안되었지만 실제로 된 놈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있더라도 서로 그 밥에 그 나물이니 다 감추고 세탁을 했겠지… 참 열받는 일이다. 이런 악질 중에도 정말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부족한 놈이 경찰에 군대에…. 이처럼 반민특위가 아무런 업적을 못 이룬 것은 이승만이 결국은 반민특위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놈들을 이용하고 북에서 내려온 젊은이들로 서북청년단이라는 것을 조직해 빨갱이를 잡겠다고 온갖 난리를 치고 사람을 죽인 것이 제주 4.3사건이고 여순반란사건들이라는 것이다…. 참 정말 우리도 불행한 민족이다….
어쨌든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적어도 38선 이남에서는 과거 친일파가 그대로 친미파가 되어 과거 일본을 등에 업고 떵떵거리던 그대로 이번에는 미국을 등에 업고 떵떵거리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심각하게 슬픈 몇몇 순간들 중 하나이다.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 우리 역사에 심각한 해를 끼치고 있다. 우리 역사가 온통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기득권 세력, 친일파 세력은 하루 아침에 지옥에서 극락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일본이라는 파워에 빌붙어 있었지만 이제는 미국이 전적으로 앞장세우니 굳이 미국에 빌붙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기를 도모했다. 그래서 이승만이 생기고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생기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 세력이 빨간 넥타이를 매고 아직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승만의 업적(?)에 대해서는 이 유튜브 영상을 참조할 수 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올바른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난번에는 3.1절에 일본기를 집에 내건 어떤 목사라는 놈도 있었다. 이처럼 이들은 근본이 잘못된 사람들이다. 어떻게 3.1절에 일본기를 걸 수 있을까? 욱일기를 걸지 않았다고 칭찬이라도 해야 하나? 이들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비뚤어지고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그들 나라가 아닌데 이곳에서 자기 나라라고 우기고 있으니 이들의 존재가 제대로 성립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제대로 있는 것을 뒤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것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 역사는 참과 거짓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이상한 역사가 되어 버렸다. 이들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대일투쟁기 35년간 그들이 했던 그대로 조선인을 교육하는 것. 그래서 대일투쟁기가 끝났어도 계속해서 그들이 배웠던 그대로를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참이 되어야 자기들의 존재도 올바르다 인정되는 것이니까.

29 유럽의 등장
그럼 도대체 일본은 어떻게 저렇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사실 일본은 참 대책이 없는 나라다. 뭐랄까 지능도 수준 이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항상 남의 뒤통수 치기 좋아하고 눈치보고 스스로 뭘 하기보다는 언제나 남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기회를 노린다. 하다못해 일본이 세계를 대상으로 한 모든 전쟁은 단 한 번의 선전포고도 없이 모두 기습이었다. 어쨌든 그냥 한 마디로 야비라는 말이 전적으로 어울리는 국가다.
예를 하나 들면 우리나라 고려시대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즉 부모가 나이가 들면 그들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가 그냥 버리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게 고려시대 일반적인 우리의 풍습이었단다. 이를 보면 우리 조선 민족은 어른에 대한 공경도 하지 않는 완전 불량시민이다. 이렇게 조선인은 뼛속부터 불량하다 일본은 우리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역사를 확인하면 우리에게 고려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에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그걸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에 있던 제도라 구라를 쳐서 우리를 부모에 대한 공경도 모르는 원시인으로 만들려 했다.
참, 우리가 찌질한게 아니라 어떻게 저렇게까지 찌질한 짓거리를 하며 우리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을까…..? 한심한 찌질이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자기만 하늘이 보이지 않으면 하늘이 가려졌다고 생각하는 모지리들.
저렇게 찌질한 나라가 어떻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이는 사실 모두 미국 덕분이다. 미국이 일본을 키웠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우선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문호가 개방되었다. 흔히 얘기하는 페리 제독이 1853년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미국은 일본에 빨대를 꽂았다. 그리고 개화를 시키면서 하나씩 빨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1700년대말 영국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유럽 국가들은 발전을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유럽이란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던 나라들이었다. 그저 밥 먹고 눈뜨면 서로 싸우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다.
실제로 세계 역사를 중세까지만 보면 유럽은 인류에게 아무런 공헌을 한 것이 없다. 종이 화약 나침반 등 인류에게 필수적이었던 모든 것들은 다 동양에서 만들었고 하다못해 유럽어인 알파벳 역시 유럽이라고 볼 수는 없는 페니키아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들은 정말 자기들 세계에서 자기들끼리 싸움만 하며 살았다.
더구나 인간은 주체적이지도 않았고 모든 것은 하나님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졌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핑계로 수많은 전쟁을 하며 살던 나라들이었다.
실제 유럽 중세는 정말 미개했다.
우선 중세 유럽에 없던 직업이 하나 있다. 의사가 없었다. 의사는 나중에 이슬람으로부터 전파되었다. 그럼 의사가 없으면 아픈 사람들은? 그들은 간단했다. 아프면 그냥 교회에 가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픈 이유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교회에 가서 참회하면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 교회에 몰아넣으면 낫게 되나? 오히려 병만 더 키우는 거지.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 전염병으로 수천만이 죽었다. 당연히 전쟁으로 죽은 숫자는 또 별도로 생각해야 하고.
이 뿐이 아니다. 정말 도시 전체에 항상 사람 똥 말 똥이 흥건하게 흘러 다녔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 것들을 옷에 묻히지 않기 위해 하이힐을 신었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똥 벼락을 막기 위해 맑은 날에도 양산을 쓰고 다녔다. 이게 유럽의 중세다. 정말 이들이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싸우는 것 뿐이었다.
우리가 유럽 역사를 배우면서 알고 있는 모든 전쟁들, 다 하나님이 중간에 끼어 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게 뜻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앞세워 전쟁을 했다. 물론 실질적인 이유는 또 언제나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하나님과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싸움질만 해대다 어느 순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생산력이 수십 배 증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제국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제국주의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 남들을 못살게 구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이걸 조금 있어 보이게 표현하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정책이다.
산업혁명이 확산되면서 기계 기술이 발전되었고 더불어 자국 내에서만 생산 판매하는 것에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결국 대항해 시대를 통해 세계를 돌아다니던 상선이며 탐험선들에 군함이 추가되게 되었고 유럽이 세계를 휩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30 일본은 참 운이 좋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기계 기술이 발전되면서 유럽의 아귀다툼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것이 유럽 대륙을 넘어 다른 곳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미 대항해 시대라는 것을 거치면서 세계를 돌아다닌 유럽 각 국가들이 점점 더 나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자기들이 생산한 것들을 판매하고 땅을 빼앗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위 제국주의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전 세계는 유럽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 당시 혁신적인 기술과 싸움을 통해 축적해 놓았던 싸움꾼으로서의 능력 덕분에 세계는 유럽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유럽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세계의 무식하고 무능한 흑인이나 황인종들을 개화시키고 개종시켜 하나님에게로 이끄는 것은 우리 발전된 백인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라고.
중세 천년간 하나님이라는 단 하나의 등불을 앞에 두고 아무 생각 없이 싸움질만 하던 유럽인들은 갑자기 소명으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노략질은 심해졌다. 포르투갈부터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패권은 스페인을 거쳐 네덜란드를 거쳐 결국 영국에 이르렀고 영국이 신흥 강자로 떠 올라 세계에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영국은 다른 유럽의 강국들을 차례대로 제끼며 1763년 7년 전쟁을 승리함으로써 말 그대로 해가 저물지 않는 완전 깡패로 완성이 된다.
12년이 지난 1775년부터 미국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시작한다. 사실 미국도 영국의 식민지의 하나였다. 다른 식민지와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의 시민들은 원래 영국 사람이었고 단지 종교 탄압때문에 영국에서 살기 어려웠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산다는 것이지 다른 나라들처럼 완전히 다른 국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미국에 살던 미국인들도 대부분 자신들이 영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쟁을 하도 많이 한 영국이 정부 예산이 부족해지자 미국에 온갖 종류의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미국인들이 반발하였다. 그리고 이 반발에 영국은 곧 문제가 되는 세금을 폐지했다. 사실 미국이 독립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어쨌든 서서히 불붙기 시작한 영국에 대한 의심은 점점 미국인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영국의 간섭을 탐탁치 않게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스턴 학살을 거쳐 보스턴 차 사건을 거쳐 결국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넓은 땅덩어리와 적지 않은 인구 그리고 유럽의 산업화를 받아들이며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동시에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 확장에 어깨를 같이 하게 된다.
하지만 세계는 이미 영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극동 아시아뿐이었다. 이때 미국이 타겟으로 설정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래서 1853년 일본으로 페리제독이 출항하게 되었다.
일본은 얼마나 한심한 사람들인가? 아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뭐랄까 밸도 없고 속도 없는 사람들이다. 페리제독이 일본에 나타나 공포탄을 쏘았을 때 사람들은 그걸 불꽃놀이라 여기고 감탄했다고 하고 또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미군들이 일본에 진주했을 때 사람들이 너무나 그들을 환영하는 바람에 오히려 미군들이 더 놀랄 정도였단다.
일본이 말하는 자기 자리를 잘 유지하라는 말이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국가가 망했고 우리는 망한 나라의 사람들이니까 우리를 정복한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고분고분하게 대하게 되는 위치 설정, 이것이 일본인이다. 한마디로 노예근성이다.
정말 역사를 거슬러 가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의 후손 혹은 형제들일텐데 어떻게 저렇게 우리와는 다른 민족으로 변화될 수 있었을까 궁금할 뿐이다.
어쨌든 미국이 일본을 개항시켰다. 그리고 서서히 준비를 해서 드디어 빨대를 꽂고 빨아들이려는 찰나 미군은 갑자기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왜?
본토에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바로 1860년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일본을 개항시키고 근대화 시킨 후 빨대를 통해 단물을 빼 먹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본토에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빨대를 버리고 철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4년간 지속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뒷처리 하느라 정신 없는 동안 일본은 무주공산이 되어 스스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자국 역사상 최대 전쟁으로 인해 일본에 꽂았던 빨대를 빼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홀로 근대화를 해 나갔다. 얼마나 운이 좋았는가. 근대적인 시설이 들어서고 무언가 생산을 시작하는 찰나, 그들을 옥죄던 사슬이 사라져 버렸으니.
정말 세계 역사에 유래 없이 운이 좋았던 단 한 나라가 일본일 것이다. 모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이 유럽 국가들로부터 빨대를 꼽혀 철저하게 착취당했고 이후 독립을 시킬 때도 아무렇게나 마무리 지어 오늘날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어 놓았다.
실제로 오늘날 지속되는 세계의 영토분쟁부터 전쟁까지 거의 대부분 문제들은 결국 유럽이 제국주의를 끝내고 세계 대전을 마무리하면서 일부러 혹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여간 유럽 국가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이다.

31 우리에게 불행인 6.25가 일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일본은 아마도 제국주의에 의해 약탈당하지 않은 지구상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 근대화 산업화라는 기가 막힌 운에 의해 일본은 성장하여 세계 최고 국가 중 하나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전 아시아를 제패하며 아시아 최고 강자가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의 하나로 주제를 모르고 설치며 미국의 하와이를 때리더니 결국 미국에 의해 일본은 초토화되었고 두 발의 원자폭탄을 맞으며 항복하였다. 일본 기업들은 모두 해체되고 정말 폐허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그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가 등장했으니 바로 중공이었다. 으잉? 미국이 아니고? 물론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을 구원하게 만든 빌미가 되었던 것은 바로 중공, 중국이 아닌 중국 공산당, 즉 중공의 등장이었다.
이때 상황은 어떤가?
미국이 일본을 공습해서 쑥대밭을 만들고 한반도에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우리의 젊은이들도 미군과 함께 참전하여 우리 땅을 수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일본이 항복했다.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불운의 하나는 바로 이 일본의 항복이라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군과 함께 우리나라 땅을 수복했더라면 우리는 마치 프랑스처럼 당연히 참전국 그리고 전승국이 되어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를 재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는 전승국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땅을 치고 한탄했다는 것을 우리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 러시아 군이 참전하여 한반도로 밀고 들어왔고 미국은 부랴부랴 러시아 군의 남하를 저지했고 결국 우리나라가 잘리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공산화였다. 이미 세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공산주의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장개석이 중국을 유지하는 한 중국은 공산주의와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파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49년 그 수많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장개석이 중국 공산당에게 패하고 대만으로 도망가게 되면서 미국은 거대한 공산주의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아무도 미국을 도와 확장되는 공산주의를 막아낼 수 없었다. 이 당시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은 하나 같이 그저 거지들 뿐이었다. 일본에 의해 완전히 털리고 남은 것이 없는 정말 거지 중 상거지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5억 5천의 중국인이 공산당이 되었을 때 미국이 느끼는 공포는 어떤 것이었을까? 누가 미국을 도와 공산당의 확장으로부터 태평양을 지키고 미국을 지킬 수 있었을까?
어쨌든 미국은 중공을 상대해야 했다.
그 순간 운 좋게도 전쟁이 일어났다. 우리의 동족상잔 비극 6.25. 이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김일성이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 소련과 중공의 보호 하에 남침해서 시작되었는가?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오면서 전쟁이 일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정말 그게 다일까? 뭔가 이런 단순한 이유보다 더 심각한 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세상의 모든 전쟁에 미국 CIA가 관여한다고 하는데…
상황을 잠깐 보자. 한국전 발발 직전 미군은 철수한다. 물론 이때 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도 되었다. 하지만 미군이 철수했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발표한다. 한국은 미국의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 선언 5개월 후 전쟁은 시작되었고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틀만에 전쟁에 참가했다.
일본도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아니 미국이 일본을 전쟁에 끌어 들였다. 그리고 일본의 폐허가 된 모든 산업시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우리 땅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모든 전쟁 물자가 공급되어 농업 공업 산업 등이 활발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3년 후 전쟁이 끝났을 때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게 되어 다시 세계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모든 것이 있던 상태에서 부서졌다면 그 부서진 것만 고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일본은 단기간에 과거의 힘을 되찾고 중공과 러시아라는 거대한 악의 세력인 공산주의와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한국 전쟁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32 – 일본은 우리가 만든 나라다
어쨌든 한국 전쟁에 참가하면서 일본은 미국 대신 확장되는 공산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확실한 민주주의의 보루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태평양을 지키려면 막대한 돈과 기술 즉 한 마디로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다 때려 부수었던 공장을 다시 세우고 다 무너져 사라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우리나라 6.25 전쟁을 통해. 미국이.
일본은 우리를 침략하고 35년간 지배했고 그 이후에는 결국 그들 때문에 우리는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하지만 그 전쟁으로 인하여 바닥으로 고꾸라졌던 일본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정말 일본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 하다 못해 현재 우리의 경제도 일본놈들이 소위 말하는 가마우지 경제로 만들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들의 출발 자체가 우리로부터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일본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 사람이 꽃처럼 날아 그곳에 들어갔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 반드시 배를 타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먼 옛날에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다른 곳은 너무 멀어서 육지에 닫기 전에 다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어쨌든 일본에 사람이 들어간 자체가 우리나라를 통해서나 혹은 남쪽에서 난파한 배들을 통해서일 것이다. 두 길 중 하나는 우리로부터 또 다른 하나는 남쪽으로부터.
그런데 남쪽에서부터 가려면 가장 가까운 곳이 상해를 비롯 중국 동쪽 해안이거나 아니면 타이완에서 일본까지에 있는 섬들을 넘어넘어가거나 둘 중 하나 뿐이다. 어쨌든 가장 가까운 곳은 부산이고 또 동해안에서는 해류가 일본으로 흐르니 난파를 당하거나 하면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가게 된다. 또는 피치못할 이유로 일본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분명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 조상은 우리의 조상과 같다. 이것은 그냥 상식이다.
마치 우리가 걸으면 움직이게 되고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상식이다. 더 이상은 아무런 입증 조차 필요치 않은 상식이다. 설사 오늘날 소위 극우파 일본인들이 극구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도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상식을 지나 역사시대에 도달하면 실제로 우리가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 주었다는 수많은 기록이 존재한다. 우리의 고구려 신라 백제가 일본에 문물을 전달했고 특히 아마도 일본이 써 준 조선 역사에서는 거부할지라도 일본을 만든 것이 우리 조상이고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백제의 한 담로였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칠지도도 내렸을 것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위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물론 몰상식한 사람이라면 이 거꾸로 즉 일본이 우리를 지배했고 그러면서 무슨 임나를 만들었으니 어쩌느니 했다고 말하고 칠지도도 우리가 일본 왕에게 바쳤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어떻게 상식이 될 수 있나? 이건 상식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청동기 시대에 일본은 석기 시대였고 언제나 일본보다 한 발 앞에 우리가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향유하던 발전된 문물들이 바다 건너 일본으로 넘어갔다.
가장 간단하게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당시 일본의 문화 수준은 어땠나? 조선에서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막그릇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칼부림이 나던 때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일본놈들이 가장 많이 약탈하고 피해를 입힌 것이 바로 도자기 산업이다. 오죽했으면 우리의 도공들을 모두 붙잡아 가서 그때부터 일본이 도자기로 세계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게 상식이다. 그 반대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어차피 애초에 인류가 탄생한 것이 아프리카 대륙이고 거기부터 시작해 북으로 동으로 이동해 마지막 위치한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지금의 블라디보스톡 근처. 고조선이 있었고 고구려가 있었고 발해가 있던 곳. 그리고 그 남쪽으로, 어차피 북쪽은 추워서 살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자리를 잡던 나라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다.
아마 현재 강단 사학자라는 매국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지금 수많은 시민사학자들과 그들이 제시하는 자료들에 보면 현재 중국 동쪽과 한반도 그리고 러시아 동쪽은 모두 우리의 땅이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역사를 만들며 살던 민족이 우리였고 그들 중 일부가 여러 가지 이유로 넘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 일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그냥 상식이다. 아침에 해뜨고 저녁에 해지는 것과 아주 똑 같은 그냥 상식이다.

33 김춘추는 매국의 시작이다
일본은 우리가 만들었다. 한학 불교 천문 지리 의학 음양 음악 공예 등 모든 것이 고구려 신라 특히 백제를 통해 일본에 전달되었다. 왕인 박사를 비롯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인물과 기타 문화 혹은 기념물 등 구체적인 기록도 수없이 많다. 이런 기록과 더불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발굴되는 유적을 통해 우리로부터 일본으로 문화가 전달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특히 백제가 멸망할 때 일본은 백제를 돕기 위해 수만의 군대를 파견했다. 바로 백강 전투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보여지며 백제가 멸망한 후 수많은 백제 유민들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고구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적지 않은 숫자가 일본으로 갔을 것이다.
백제가 660년 고구려가 668년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것은 701년. 이건 우연의 일치도 아니고 그냥 상식적으로 그려지는 역사이다. 이 연도들만 보더라도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이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을 만들거나 혹은 만드는 것을 도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상식이다.
어쨌든 우리와 일본은 이처럼 옛날부터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들인 것이 틀림 없다. 물론 지금은 천하의 원수지간이지만. 어쨌든 그건 정치를 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고 교육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과 우리는 같은 조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우리와 제일 가까운 것은 당연히 북한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의 직접적인 형제 자매들이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즉 가족이니까. 이제 2세대가 지나고 점점 멀어져가고 있지만 어쨌든 당장이라도 통일되면 함께 기뻐하고 춤출 우리의 직접적인 가족들이다. 그리고 이 범위를 조금 더 넓게 잡으면 북한 다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과 중국 동부에 사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대략 1000년전 우리 조상들의 동족 후예들.
백제가 멸망하면서 일본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혹은 그때 당시 일본에서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백제 유민들이 도와서 제대로 된 국가로 만들었다. 혹은 백제 유민들이 일본으로 가서 지배층이 되었다. 등등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고 또 그러리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확실하게 말이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아마도 일본이 우리를 미워하거나 혹은 우리와 거리를 띄기 시작한 것이 이 때일 것이다. 왜냐하면 모국인 백제를 멸망시킨 것이 신라고 당나라니까. 여기에 고구려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고.
하긴 여기서 정말 슬픈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통일이라는 사건에 얽힌 우리 역사 최초로 외부의 힘을 끌어 들인 사건.
문제가 생기면 우리 민족 내에서 우리끼리 해결하면 될 일이다. 민비 시해 사건에 우리가 열이 나는 이유는 아무리 민비가 때려죽일 인간일지라도 그건 우리가 할 일이다. 그걸 왜 옆집 놈이 와서 해결하냐고? 이처럼 우리끼리 해결할 일을 옆집 아저씨까지 끼게 되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뿐더러 그 이후에 더 큰 부작용을 남길 수 있다. 아니 남긴다.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삼국통일 과정을 한 번 보자. 삼국통일은 통일을 하려고 시작한 전쟁이 아니라 순전히 김춘추라는 인간의 개인적인 복수욕에서 시작된 전쟁이다. 사실 우리 역사 5천년에서 가장 먼저 우리 민족의 적을 꼽으라면 당연히 김춘추를 꼽아야 할 것이다.
김춘추의 자식 부부가 백제와의 전쟁에서 죽었다. 물론 자식이 죽은 것은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고구려에 가서 군대를 청하고 고구려에서 듣지 않고 감금하니까 도망쳐서 왜국에 가서 군대를 청하고 또 도망쳐서 결국 당나라까지 가서 군대를 청한다. 그리고 결국 당나라가 우리에게 쳐들어오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킨 것이 김춘추 아닌가?
결국 김춘추로 인하여 우리 3국 내에서 알아서 해결할 일을 외세를 끌어들여 억지로 해결했고 그 때문에 결국 3국이 통일은 되지만 많은 땅덩어리를 중국에 빼앗겼을 것이다. 이후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매국노들도 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난 후 결국 이성계는 명과 짬짬이를 통해 그 넓은 고려 땅을 다 포기하고 우리의 역사를 겨우 만주와 한반도로 끌어 들이는 일까지 진행했고 급기야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 정미7적 등에 의해 나라가 송두리째 뺐기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 모든 일의 시작은 결국 김춘추 아닐까…
어찌됐건 백제가 멸망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한 백강전투에서 패한 이후 일본은 우리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즉 이 시대 이전의 일본은 백제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독립적인 국가로 존재하기 보다는 백제라는 나라에 속하며 아직 완전한 국가 체재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고 나라 이름도 없었다. 그래서 아스카 시대라 불리는 일본은 그냥 백제의 한 담로였고 또 고만고만한 소국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해적집단을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백제가 멸망하고 그 유민들이 정착하고 나라를 만들면서 제 2의 백제인 일본이 건국되었고 이들의 생각 중 많은 부분은 우리에 대한 반감이었을 것이다.

34 조선시대 이전에 우리는 사대를 한 적이 없다
이런 일본과의 관계는 차후에 계속 논의하고 일단 우리가 생각할 것은 명백하게 일본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것이고 또 그 이전에 우리 고조선과 삼국의 영토는 한반도에 제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튜버 <책보고>는 특히 이 지명을 매우 잘 분석해 놓았고 그를 바탕으로 지도를 새로 그리며 우리 고대 영토에 대한 믿을만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일단 런던이라는 도시는 어디에 있는가? 당연히 영국의 수도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미국에도 있고 캐나다에도 있다. 왜? 미국과 캐나다는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신대륙에 생긴 국가들이다. 영국인 뿐 아니라 나머지 유럽인들 그리고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시민들이 넘어가서 만든 국가다. 그래서 자기들이 살던 지역의 명칭을 그들이 새로이 자리 잡은 곳에 붙이고 또 자기들 왕의 이름도 붙이면서 유럽 대륙에 있는 여러 도시들, 나중에는 아메리카 남쪽에 있는 도시들 명칭까지 가져다 썼다.
즉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많은 도시들은 그냥 아무렇게나 이름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유럽 대륙에 존재하는 많은 도시들이 있고 그곳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그 도시 이름을 다시 써서 오늘날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많은 도시들이 중국 동쪽의 도시 명칭과 동일하다. 그리고 일본에 백제에 관한 수많은 도시와 유적이 있다. 아마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등장하면서 중국에 살던 고려인들이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생기게 된 현상일 것이고, 백제가 망하고 그 유민들이 일본에 정착하면서 생기게 된 현상일 것이다. 망하기 전 고려는 어디에 자리잡고 있었나?
역사서에 기록된 지명들을 따져보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 아마도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현재 중국 동쪽 지역은 모두 우리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이다. 하지만 고려가 망하면서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대거 한반도로 넘어왔고 그들이 오면서 자기들이 살던 동네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서 한반도에 그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 현재 중국과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일한 이름의 도시에 관한 해석이 될 것이다.
이런 해석이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동일한 이름의 도시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도시들이 있는가는 유튜브 책보고를 볼 것을 추천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시작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사대라는 것이 생겼다. 고조선과 열국시대 혹은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대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로 삼국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백제가 기원전 18년부터 660년까지 678년을 지속했다.
이 기간 동안 중국에는? 한나라 20년, 삼국시대 60년, 위진 남북조 시대 150년, 수나라 30년 그리고 당나라도 가운데 개원의 치를 포함하더라도 289년이다. 도대체 백제는 어느 나라에 사대를 했다는 것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에 어떻게 사대를 하나?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라는 놈들을 죄다 광화문에서 모든 시민의 이름으로 참수를 해도 시원찮다.
이런 역사관, 사대를 했다는 역사관, 우리의 영토가 한반도 내라는 역사관, 우리는 시원찮고 서로 헐뜯기만 하고 서로 욕하고 시기 질투하는 수준 낮은 민족이라는 얘기, 이거 다 누가 만들었나? 일본놈들이 만든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35년간 죽어라 가르쳤고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뇌가 되어 지금도 우리는 사대를 했어라고 떠들고 있다.
지난 번 어떤 역사학자라는 놈이 떠들기를 낙랑이 지배를 하고 어쩌고… 도대체 100년도 못 간 그 한나라에 누가 어떻게 조공을 바치고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 말이 되나? 도대체 사학자라는 놈들은 왜 저런 말도 안되는 얘기들을 아직도 계속해서 가르치며 우리가 사대를 한 것은 실제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형식적인 사대였다고 씨부리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이쯤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결국 일본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을사늑약과 그 직전 미국놈들과 일본놈들이 맺은 카쓰라 태프트 밀약에 대해 얘기했고 그 다음 헤이그 밀사로 파견됐던 분들을 돕고 우리의 많은 부분을 세계에 알렸던 호머 헐버트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결국 일본놈들이 우리 역사를 왜곡시켰고 그것을 지금까지 금이야 옥이야 하며 붙들고 있는 강단사학자라는 놈들에 대해 얘기했다.
지금은 인터넷과 유튜브와 더불어 시민사학자들이 등장했고 그들과 함께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역사를 다시 쓰거나 혹은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이 글의 가장 핵심은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덧씌운 반도사관 식민사관, 한 마디로 말해 조선은 자주적이지 못하고 협동적이지 못하고 게으르니까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3류민족이다라는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35 일본은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다시 일본 얘기로 돌아가보자.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했던 일본은 한국 전쟁을 통해 완전히 회복되었고 특히 공산주의를 막는 첨병이 되어 미국의 안전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자임하면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일단 정상에 섰었던 그들에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은 급속하게 경제를 회복했고 60년대와 70년대에 지속적인 발전을 거쳐 80년대가 되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 국가가 된다.
1987년 세계 10대 기업 중 8개가 일본 기업이며 20대 기업 중 16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이때 10대 기업에 미국 업체는 겨우 2개, 20대 기업까지 하면 3개가 포함되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영국 프랑스 합작 회사였다. 정말 이 당시 일본은 세계 최고의 막강한 파워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일본도 참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1945년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전쟁 막바지에 미국 폭격기들이 날이면 날마다 일본 본토를 폭격했고 마지막 원자 폭탄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이유도 그 도시들보다 큰 도시는 모두 폐허가 됐기 때문에 당시 남아있던 가장 큰 도시들이 거기여서 그곳에 원폭이 떨어졌단다.
정말 아무 것도 남은 것 없이 모조리 부수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물론 자기들이 부린 욕심 때문에 겪은 고초지만 어쨌든 불쌍한 것은 그 모든 일을 하루 하루 겪고 살아야 하는 시민들이었다.
그 전쟁을 주도했던 인간들 몇몇은 목이 잘렸다. 그리고 그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이 야스쿠니 신사 때문에 우리 그리고 또 다른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일본과 독일의 차이를 보자.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히틀러를 나쁜놈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히틀러의 표상인 깃발을 금지했고 만일 누군가 그걸 흔들면 처벌한다. 나아가 지금도 독일에 의한 전쟁 피해를 입은 나라나 사람들을 보면 국가적으로 사죄한다.
일본은? 일본도 패배했다. 그렇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 후속조치가 약했거나 혹은 없었다. 특히 아시아의 모든 나라에게 다 잘못했다고 했고 배상도 했지만 우리에게만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거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우선 일본 천황이 발표했다는 항복문서 내용을 보자.
우선 이 놈은 단 한마디도 항복한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특히 전쟁하는 이유를 일본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제하고 영토를 침탈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라고 말한다. 참 여러가지 한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항복하는 이유는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빈번히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는 참해를 벌이기 때문에 일본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까봐 그걸 피하기 위해서 공동선언에 응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 방송을 들은 어떤 사람이 일본이 항복했다고 알 수 있었을까? 그리고 도대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따위 항복문서를 받아들였을까?
당연히 연합국으로서도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왜 남의 전쟁에 참가해서 피를 흘릴 것인가? 독일이 이미 패망하고 손들었으니 아시아는 나 몰라라 손을 들고 나가는 것이 맞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유럽에서 단 한 나라도 참전하지 않고 있다. 그냥 무기만 보내고 있다. 미국도 이제는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자기 뿐이다. 그래서 자주국방은 모든 국가에게 가장 기본이다.
어쨌든 일본 천황은 항복했다. 하지만 저 위의 내용이 정말 항복하겠다는 문서인가?
항복문서라면 우리가 너희를 침범해서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항복문서의 내용은 온통 말도 안되는 핑계에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힘을 장래 건설에 기울이고 도의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굳게 다져 국가체제의 정화를 뿜어내어 세계의 추세에 뒤지지 않도록 기해야 한다 라고 쓰고 있다.
이건 완전히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 비슷한 분위기다. 뭔가 국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전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인 느낌이다. 패배하는 놈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놈들이 저렇게 말해도 되나?
참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죽인 사람은 대략 1100만명이다. 주로 유대인과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이었다. 그럼 일본은? 일본이 죽인 사람 수는 약 300만에서 1400만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얘기할 것도 없고 모든 아시아 국가 나아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사람들을 죽였다. 하지만 이 숫자는 잘못됐고 중국에서 죽인 1800만명을 포함 대략 3000만명 정도를 죽였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죽이는데 앞장 선 놈들을 자신들의 조상신으로 모시며 매년 떠 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야스쿠니 신사가 그것이다.

36 현대사는 미국 맘대로 진행된다
도대체 야스쿠니 신사가 뭔가?
우선 일본의 신사에 대해 알아보자.
신사란 말 그대로 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어떤 신? 아무 신.
일본인들의 종교적 성향은 매우 특이하다. 흔히 세계적인 종교로 인정받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일본에서는 우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미미하다. 그냥 그렇고 저런 수준의 잡교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통계상으로 불교가 많지만 이것도 우리가 이해하는 불교가 아니라 대부분 토속신앙에 바탕을 둔 신사와 연계된 신토형 종교이다. 한 마디로 말해 그냥 모든 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고양이신도 있고 개신도 있고 처녀신도 있고 물론 장군신도 있다. 나무신에 불신에 물신에 하여간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것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도 모두 그들은 신으로 믿고 섬긴다. 그런 신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 신사가 되고 그 신들로부터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신사란 곧 신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데 이 신사들 중 이런 원래 목적과 다른 곳이 있다. 일종의 사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즉 뭔가 큰 일을 한 위인을 모시는 곳이다. 이런 곳들 중 하나가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그러니까 이 야스쿠니는 일반적인 신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곳은 메이지 유신 이래로 일본 제국에 기여한 자들을 모시고 있으므로 우리로 따지면 일종의 현충원 같은 곳이다. 당연히 이런 현충원 같은 곳이 존재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겠나? 한 국가에서 자신들을 위해 애쓴 조상을 모시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 야스쿠니 신사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바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 14명을 비롯 총 1068명의 전범이 여기에 합사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 죽은 우리나라 사람과 대만 사람이 함께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빼달라고 해도 들은척만척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미국의 태도가 문제다. 태평양 전쟁이라면 바로 일본이 어느 일요일 아침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해 미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그런데 패전국에서 그 사건을 일으킨 놈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자기 국가의 영웅이라고 떠받들고 있는데 막상 그것을 당한 피해국가에서는 아무 소리 안하고 있다? 바보지.
미국이 힘이 없다면 뭐 참 할 말이 없지만 충분히 일본을 들쑤시고 협박하면 바로 일본놈들은 무릎 꿇는다. 일본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존재들. 그러므로 미국이 눈만 크게 떠도 바로 스미마셍을 외치며 철거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현재도 감감 무소식이다. 왜 미국은 큰소리를 내지 않고 인정하고 있을까? 물론 미국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어쨌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국이 가만히 있고 또 일본 역시 가만히 있다.
역시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없으면 그저 허당일 뿐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 관계에서도 우리가 힘이 없이 남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면 들어줄까? 그 어떤 나라도 힘없는 국가를 위해 애써주는 나라는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고 완전 폐허가 됐던 일본은 1950년부터 1953년 사이 우리나라 전쟁에 참전하면서 모든 폐허를 극복했고 이후 불과 30년 만에 미국을 제끼고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었다. 일본에서 만든 제품이 세계를 장악했다. 세계 모든 방송국의 카메라나 모니터는 모두 소니로 도배되었고 수많은 나라에서 일본차를 탄다. 지금도 미국 승용차의 대부분은 일본차다.
하지만 헤게모니는 미국이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성장한 일본을 미국은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 때문에 자기들이 피해를 입으니까. 그래서 미국은 일본을 불러 참교육을 시킨다.
1985년 9월 22일 뉴욕에 있는 프라자 호텔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사인을 한다. 이름하여 프라자 합의. 이를 통해 일본은 서서히 고사되고 무력화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상황이 현재 중국과 벌어지고 있다.
중국을 키운 것은 누구인가? 역시 미국이다. 중국문을 열고 그곳에 공장을 세우고 중공을 거대한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것이 바로 미국이다. 왜? 당연히 자본주의의 원칙에 따라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분명 현대사에서 미국이 끼지 않고 성사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은 미국이 직접하거나 혹은 뒤에서 조정하면서 일어난다.
이렇게 중국은 성장했고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아마도 미국에서 아시아권 정책을 수립하는 곳에서 일하는 놈들이 주로 바보들인가 보다. 이미 미국은 일본을 통해 아시아 나라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학습을 했다. 이건 또 저 앞에서 말한 세계 각 국가들 평균 아이큐와도 연결된 이야기다.
즉 아시아, 특히 극동아시아 3국은 그냥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통해 이미 벌어졌던 일인데, 이제 똑같은 방법으로 중국이 치고 올라왔다. 아마 일본을 통해 뭔가 배웠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중국을 통제했을텐데 이런 문제를 전혀 예기치 못했으니 갑작스럽게 억지로 중국을 죽이려 애쓰는 것이 현재 미국의 상황이다. 또 다른 바보가 여기에 있다.

37 위계질서라는 것이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이식한 최악의 문화다
어쨌든 미국은 프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두 배 가까이 상승시켰다. 그렇게 되니까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일본 물건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하게 되었다. 물론 독일도 비슷한 조정을 거쳤지만 독일은 크게 피해를 보지 않았고 일본은 심각한 피해를 입어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게 되었다.
죽어가는 일본을 살린 것도 미국이고 또 너무 잘 나가는 일본의 날개를 꺾은 것도 미국이다. 일본이 그 꺾인 날개를 다시 펴고 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 중 하나는 폐쇄된 사회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중국처럼 독재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70년 동안 한 당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그 당은 과거 잘 나가던 때의 정책을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동일한 당이 70년을 집권한다는 얘기는 그냥 독재국가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표가 나오는데 왜 정치적인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가? 이게 현재 일본의 상태다. 그리고 이런 상태로 그대로 진행되면 당연히 국가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미래는 뻔히 보이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에 일본은 이런 자기들 위기를 남들을 못살게 굶으로써 해결했던 나라다.
계속되는 내분을 끝내고 시끄러운 내부사정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벌였던 전쟁이 바로 1592년 임진왜란이다. 이후에 제국주의 때 역시 주변 국가들 모두를 침범했다. 이것이 일본의 과거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에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또 다시 동일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일본은 시작했다. 그래서 소위 평화헌법을 뒤엎고 원하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군비도 대폭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까?
사실 아무런 힘 없이 큰소리만 치는 북한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힘도 있고 돈도 있고 외교력도 있고 그리고 지금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고 있는 일본이 훨씬 더 크 문제이고 우리의 주적이다.
정말 우리는 모든 안테나를 세워 일본을 경계해야만 한다.
하긴 일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나라를 자기들이 지배하던 나라라고 생각해서 고토회복 정도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지난 번 아베 수상 때 방위상이었던 고노 다로라는 작자의 집무실에 우리나라 지도가 걸려 있었다. 이걸 보면 정말 걱정이다. 아마도 일본이 우리 땅을 자신의 땅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무슨 임나일본부설이라는 황당한 얘기는 할 가치도 없고 그게 아닌 백제의 유민으로서 적어도 한반도를 과거 백제의 땅, 즉 자기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생각하여 수복하려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정말 진지하게 일본과 논의를 해 볼 가치는 있다.
어쨌든 일본과 우리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행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유독 우리에게 뭔가 할 얘기가 있어 보인다. 나는 그게 백제에 관한 얘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인들과 진지하게 백제에 대해 논하고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혹은 누가 군주고 누가 신하인지를 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이 일본이라는 나라로부터 우리가, 적어도 많은 숫자의 한국인이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너무 많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왔다고 보는게 맞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소위 계급문화다.
일본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네 자리를 지켜라 라는 것이다. 즉 니가 신하라면 꼭대기에서 너를 어떻게 취급하든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순종하라 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고 미군이 일본땅에 들어왔을 때 일본인들이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쌍수를 들어 환영했던 것이다. 왜? 우리는 패망했고 미국이 이겼으니까 미국이 우리 위에 있고 우리는 우리 위에 있는 나라에 충성을 다 해야 한다. 이게 일본인들의 생각이다.
이 위계질서를 따지는 문화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이것이 아주 심각하게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우리나라 군대문화고 또 소위 검찰이라는 곳의 문화다. 물론 학교도 그렇고 또 공무원 사회도 그렇고. 이들에게는 아주 개떡같은 고참과 졸병 문화가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없어졌으리라 본다. 이 문화는 무조건 고참이 신참을 우습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것이다. 그냥 단순하다.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고 혹은 선배니까 너는 아무 소리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이거다. 불행하게도 이 문화가 우리에게 전달되어 우리나라 최악의 갑질문화로 정착되었다.
그럼 그 이전 우리 문화는 그렇지 않았나? 적어도 그렇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조정랑이라는 자리다. 이 자리는 등급은 낮지만 왕에게 직언할 수 있는 자리다. 이뿐 아니라 수많은 관직들이 그 지위에 상관없이 할 얘기는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즉 일본처럼 너는 위 나는 아래, 그러면 나는 무조건 니 아래라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38 고구려 백제 신라는 어디에 위치했었나
이제 원래 하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우리 과거 역사 얘기다.
나는 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듣는 동안 크게 세 가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시민사학자들의 연구와 발표에 의해 이제 그 부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안되던 것은 장수왕의 남하정책이었다. 장수왕은 고구려 역사 최대의 전성기 때 왕이다. 그런데 그가 왜 평양으로 천도했을까? 아마 평양이라는 지명은 분명하겠지만 그가 왜 굳이나 땅도 작고 더 이상 나갈데도 없는 한반도 내에 있는 평양으로 천도했을까? 이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수왕이 전성기가 아니라 다 죽어가는 고구려에서 그나마 나머지라도 지키겠다는 목적이 아닌 이상 그가 한반도로 들어올 단 하나의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평양은 한반도 내에 있어서는 안된다.
두 번째 이해가 안되는 것은 강화도다. 고려 무신 정권이 그 섬으로 피난을 해 수십년을 싸웠다는 것이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몽골이 강화도를 점령하지 못하고 수십년을 허비했을까? 강화도란 육지에서 수백키로 아니 수십키로 떨어진 곳도 아니고 바로 조 앞에 보이는 섬이다. 그거 아무리 바보라도 마음먹으면 사람들 동원해 한달만 땅 파서 메우면 충분히 건널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정복하지 못해 수십년을 발만 동동 굴렀다? 이거 역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이해가 정말 안가는 세 번째는 왕건에 대한 이야기다. 왕건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었나? 송악이다. 그리고 송악은 현재 개성이란다. 그런데 이 왕건 가문이 궁예에게 귀속된다. 그리고 궁예는 철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즉 그들이 신라나 후백제와 전쟁을 벌이던 주무대는 강원도나 경기도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건 강단사학자들이 얘기하는 바이고 많은 수의 재야사학자들도 이 해석에 별로 반대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런데 뜬금없이 전라도 나주가 등장한다. 왕건이 갑자기 개성에서부터 아마도 서해를 따라 내려갔겠지. 하여간 전라도 나주까지 가서 나주를 점령한다. 그럼 개성부터 전라도 나주까지 견훤은 전혀 해군이 없었나?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옛날에는 배가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항하기 어려웠다. 설사 견훤이 해군이 없었더라도 왕건의 군대가 서해를 가로질러 전라도까지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다가 공격당했나? 견훤이 장님이었나? 이것 역시 도저히 말이 안된다. 정말 아무런 이유없이 경기도 강원도 싸움판에서 갑자기 전라도 나주가 등장하니까 말이다.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지명도 분명 전라도 나주는 아닐 것이고 또 현재의 개성도 아닐 것이다. 이게 현재 우리나라의 나주와 개성이라면 견훤과 견훤의 군대는 모두 장님에 바보 멍청이어야만 한다.
이외에도 우리 역사에는 말이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우리 역사에서 확실한 것은 조선시대 중반 이후에 일어난 일들뿐이다. 그 이전 시대, 하다 못해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우리의 영토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영토가 역사적으로 한반도 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조선 중반 이후고 그 이전에는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나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럼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그건 일본놈들이 3류 한국인을 만들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새롭게 쓴 완벽한 소설이다. 특히 그 소설에서 고조선부터 조선 초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완전히 잘못된 역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장소들이 그들이 그렇다고 써 놓은 것이고 그게 전혀 입증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역사를 계속 재탕하면서 그 역사는 마치 실제 우리 역사처럼 고착화되었고 현재도 우리는 그렇다고 교육 당하고 있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강단사학자들과 역사에 관련된 공무원들 모두를 능지처참해도 부족하다. 정말 그 이전 이병도를 비롯한 이 식민사학 혹은 반도사학자들을 부관참시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우리 역사에 대한 의문을 별로 가지는 사람들이 없었다.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역사에 대한 접근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낙 우리 사회가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교수들의 권위에 대항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역사에 대한 커다란 반전은 박창범 교수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우리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북한으로 넘어갔고 북에서는 일제를 청산했기 때문에 그대로 조금 더 남한보다 열린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보다 광범위한 연구를 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사료가 부족했고 지금처럼 이동이나 유적 발굴 사료 검사 등등이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마저도 일부는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현재 남한의 재야사학자들과 비슷한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박창범 교수는 삼국시대 문제 두 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일식 관측지,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장마 기록. 그리고 이 둘의 기록을 함께 보면 그 위치가 동일한 지역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그 지역들은 우리가 현재 배우고 있는 한반도 내에 있는 여기 저기가 아니다. 반대로 고구려는 만주와 몽골, 백제는 발해만 부근 그리고 초기 신라는 양자강 유역 그리고 후기에는 한반도 동부로 밝혀졌다.
일식과 같은 천문 기록을 어디 그 나라의 시골 구석에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수도나 적어도 그 근처인 것이 너무도 상식이다. 이 상식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수도가 어디였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 삼국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는 것 다 잊어 버리고 그냥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는 일식과 홍수 기록만 따라가자는 것이다.

39 일선동조론 vs 선일동조론
우선 우리 역사는 근본적으로 왜곡돼 있다. 그런데 누구든 우리 역사가 어떻다라고 얘기하면 바로 기존 사학자들, 특히 강단사학자들은 바로 거품을 문다. 사이비 또는 책이라면 위서라고 부르짖으며. 이렇게 그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을 떠받치는 역사가 왜곡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현재 배우는 역사 중 조선 중기 이전 역사는 거의 믿을 수 없다. 조선 중기 이후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이기 때문에 있던 그대로 우리가 추적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로 보이는 것들이 꽤 있다. 그래서 조선 중기 이후에 무슨 일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우리가 어느 정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 그러니까 조선 중기 이전, 아마도 대략 세조 시대 이전까지의 역사는 전혀 믿을 수 없다. 이 역사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쓴 우리 역사가 아니다. 이건 일본놈들이 조선인 바보 만들기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조작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업이고 가장 공들인 작업이다. 그 결과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왜곡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식민사관이라는 것이다.
식민사관은 크게 6가지 정도의 논리를 포함한다. 문제는 그 논리가 하나도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 6가지 논리는 일선동조론, 정체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 반도성론, 만선사관 등. 우리 머리 속에 이미 들어 앉아 있는 내용들이다. 우리가 그렇게 지겹게 공부했던 내용들이고 일본놈들이 우리 속에 이 내용을 쑤셔넣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내용이고 불행하게도 크게 성공한 내용이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이 6가지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걸 신주단지 모시듯 붙들고 앉아서 끊임없이 조선인은 병신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이 6가지를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보자. 그냥 오늘날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상식적인 시각으로 보면 된다.
일선동조론이란 일본과 조선이 같은 민족이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사실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선후 혹은 상하가 뒤집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얘기하는 일선동조론이란 우선 일본이 앞서고 조선은 뒤따른다는 것이다. 간단하다. 일본서기라는 소설책에 나온 얘기들을 앞세워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고 자기들을 우리가 뒤따르고 있다는 얘기다. 설마…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사실 이 일선동조론은 맞는 얘기다. 단지 순서를 바꾸어서 선일동조론으로 하면 딱 맞고 그 반대로 하면 소설이 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인종적으로 한국인이 후지고 언어도 일본어가 우수하며 고대부터 일본은 한국을 지배했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또는 전세계 그 어느나라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이 내용을 듣고 맞아 라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적어도 세계지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인터넷을 통해 약간의 검색이라도 해 볼 수 있다면 이 주장이 황당무계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우선 인종적으로, 좀 유치한 얘기지만, 일본과 한국인 사이에 몇 가지 비교를 해보자. 우선 키는 일본보다 한국인이 대략 4.1cm 더 크다. 이건 요즘이라서 그렇지 과거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일본놈과 당시 조선인을 비교하면 거의 어른과 아이의 차이였다. 아마 적어도 20-30cm 이상은 차이가 났을 것이다. 오죽하면 왜놈이라고 불렸겠나? 그리고 자기들도 그렇게 불리는게 듣기 싫어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간청을 했었다.
그리고 피부상태만 보아도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월등하게 깨끗하고 인물도 훨씬 한국인이 뛰어나다. 그 어떤 인종적 특징을 가지고 와도 일본이 한국을 앞서는 일은 없다.
다음으로 일본어와 한국어 중 어떤 것이 더 우수한가? 두 말하면 잔소리지. 일본어로 쓸 수 있는 발음은 고작 300개 밖에 되지 않는다. 하다 못해 표의문자를 쓰는 중국어 보다도 못하다. 중국어는 400개의 발음을 쓸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럼 한국어는? 한국어는 일본어나 중국어와 레벨이 다르다. 한국어로 쓸 수 있는 발음은 무려 11,000개. 압도적 세계 1위. 이거 하나만 얘기해도 어떤 언어가 더 우수한지 그냥 답이 나온다.
갑자기 지난 팬데믹 기간 중에 일본놈들이 일본어가 우수하다고 그 무슨 I have a pencil 인가 휴지 앞에서 발음하면서 떠들던 생각이 나서 진짜 웃기는구만…. 어쨌든 일본어는 한 마디로 한국어에 비하면 쓰레기다. 타이핑 하기도 어렵고 디지털화 하기도 어렵고. 그냥 간단하게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일본어와 한국어 중 어떤 것이 더 우수한가? 라고 물으면 거기에 단 한 명도 일본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일본인 언어학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일본어라고 답변하는 학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언어학자가 아니겠지.
다음으로 일본은 한국을 지배했다. 이 말은 그대로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어서 한국이 일본을 지배했다 라고 쓰면 된다. 이건 여러 번 얘기하는 것처럼 굳이 역사책을 들춰볼 필요도 없고 여기에 뭐라고 얘기할 가치가 없는 상식이다. 그냥 상식. 조선에서 바다 건너 일본을 만들었다는 상식.
만일 일본이 고대에 한국을 지배했다는 가설이 맞으려면 일본은 어느날 갑자기 바다 속으로부터 솟아올랐고 거기에는 아주 발달된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살고 있었다 라면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이게 일본이 얘기하는 식민사관 첫번째 일선동조론의 실체다. 그냥 간단히 선일동조론으로 바꾸면 끝난다.
그리고 사실 일본도 이걸 인정한다. 수도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 나라의 수도는 우리 말로는 서울이다. 일본말로는 경성이다. 경성은 어디에 있나? 우리 서울이 경성이다. 그럼 일본의 서울은? 일본에는 서울이 없다. 단지 동서울, 즉 동경이 있을 뿐이다. 즉 본토인 우리나라에 있는 서울이 원래 서울이고 현재 일본 서울은 임시로 쓰이고 있는 동쪽의 서울일 뿐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우리 땅으로부터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본놈들이 우리 서울을 자기들 서울이라 생각하고 그걸 회복하려고 시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거겠지…

40 정체성론
다음으로 정체성론을 보자.
정체성론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정체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말 지나가는 개가 웃을 말이다.
정체성론이란 한국이 사회질서나 경제가 전혀 발전하지 못해 근대로의 발전에 필요한 봉건사회가 이룩되지 못했기 때문에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고대사회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얘기다.
이 얘기는 후쿠다 도쿠조라는 놈이 한 얘기란다. 일본의 경제학자이고 이 놈이 한 보름 동안 한국을 여행한 후에 그의 인상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인상이 근거란다. 그래서 당시 한국의 수준이 일본 고대말기의 사회와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냥 한 마디로 이런 얘기는 두 번 다시 듣거나 얘기할 가치가 없는 얘기다. 그냥 듣고 한 번 쳐다보고 저런걸 낳고 지 에미가 미역국을 처먹었겠지 하고 한 마디 던지면 끝나는 얘기다. 이건 학문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고 연구도 아닌 그냥 기행문이다.
내가 기행문에 미국에는 거지만 득시글거리니 거긴 사람 살 곳이 못되는 지옥이라고 쓰면 미국은 지옥이 되는건가? 이것과 똑같은 얘기를 오늘까지 끌고 와서 마치 무슨 학문이나 어떤 근거있는 혹은 대단한 학설처럼 대우를 한다는 자체가 황당하다. 그냥 미친개가 짖은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한 보름 본 다음에 조선은 고대말기에 머물러 있다? 그냥 자기 인상이 그렇다나…
이 시대에 만들어진 식민사관이라는 것이 다 이렇다. 역사에 대한 교차 검증이나 아무런 유물도 없이 그냥 생각해 보니까 이렇고 아마도 이 장소가 그 장소인 것 같고.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한심한 얘기들이 하나의 학설이 되어 이 순간에 나까지 이 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말 이 친일파놈들 혹은 식민사관을 따르는 역사학자라는 놈들. 피가 끓는다. 진짜 부관참시밖에 답이 없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쓴 역사책이라는 것과 그것을 근거로 지금까지 써진 책이며 논문은 그냥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단 한 마디도 근거 있는 말이 없고 오로지 인상과 생각에 의해 필요한 장소도 비정했으므로, 비정이란 어디어디라고 짐작한다는 뜻이다, 이런 역사책은 한 마디로 그냥 쓸모가 없다.
여태까지 조선사편수회에서 짐작해서 쓴 역사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거기에 살을 붙이고 뻥튀기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지고 강화된 일본이 쓴 소설 조선사가 오늘날 우리가 우리 역사라고 부르고 배우는 조선사다.
여기에서 조선사란 1392년 세워진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아니다. 적어도 단군으로부터 시작하는 우리 한민족 혹은 동이족 혹은 예족과 맥족 등등 족속들의 역사를 말한다.
어쨌든 저 일본놈과 아직도 이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소위 강단사학자라는 놈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고대에 머물러 있던 사회기 때문에 우리는 다가오는 근대를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없으므로 이런 무지몽매한 조선인을 개화시켜주고 인간처럼 살게 해 준 것이 바로 일본이니까 일본에게 감사해라 라는 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말 눈물나도록 감사한 얘기 아닌가?
그때, 그러니까 19세기말, 아마 우리 사회가 정말 최악의 상태였을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소위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통성과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에서야 많은 시민사학자들에 의해 하나씩 밝혀지는 역사적 사실들이지만 우리의 고조선 시대와 삼국시대는 위대했었다. 땅덩이도 지금 현재 우리의 땅덩이보다는 확실하게 컸었고 우리가 한반도 내부에서만 살지 않았던 것도 아마 확실해 보인다. 이게 고려시대까지 진행된다.
이 영토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어쨌든 우리의 역사는 고대라는 시대에 정체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일본놈의 인상을 마치 학설처럼 만들어 떠받들고 나아가 그걸 아직까지 떠들어 대는 한국인 사학자라는 정말 똥물에 튀겨 죽일 놈들이 적지 않다는게 문제다. 이놈들이 뻑하면 하는 얘기가 바로 이거다.
그리고 누가 역사가 발전한다든가 뭐 이런 얘기를 하는가? 사람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유럽놈들이 만든 무슨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어쩌고라는 시대들이 지들이 지나온 것처럼 일치하게 맞아야 하는가? 우선 저따위 학설을 씨부려 댄 유럽놈들이 문제고 그걸 황당하기 이를데 없이 주절거린 일본놈이 문제고 하여간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강당사학자라는 사학과 교수놈들이 진짜 크고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인류의 발전이란 각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자기들에게 적절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무슨 고대 중세 근대 현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정말 의사 하나 없던 놈들이 학설이라고 떠들어 대니 우습기 그지없다.
어쨌든 정체성론이란 자체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얘기고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나는 멍청이라고 고백하는 얘기일 뿐이다.

41 타율성론
다음으로 언급할 내용은 타율성론.
이건 진짜 정점을 찍는다. 우리 역사는 우리 민족 스스로 만들어 온 역사가 아니라 북쪽의 중국이나 몽고 그리고 남쪽의 일본의 영향과 간섭 아래 끊임없이 타율적으로 진행되어온 역사라는 얘기다. 정말 끝내주지 않나? 이런 얘기를 어떻게 지어낼 수 있는지.
한 가지만 보자.
중국 수양제가 침입했다. 군사 숫자는? 전투 부대만 130만. 13,000이 아니고 130,000도 아니고 130만명. 그것도 1,500년 전에. 아마 전 세계 모든 역사를 통틀어 한 나라에서 이런 숫자가 동원된 전쟁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보급부대를 다 합치면 최소 200만.
200만의 군대가 쳐들어왔다. 어느 나라를? 고구려를. 고구려가 북쪽과 남쪽의 나라들에 의해 휘둘리는 작은 나라였으면 그 작은 나라 하나 정복하기 위해 200만이 쳐들어왔을까? 단 하나의 나라를 쳐들어 가는데 200만을 동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상대 나라가 얼마나 컸는지 너무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도대체 이 얘기를 한 일본놈들은 뇌가 없는 모양이다. 뇌가 있으면 저렇게 생각을 할 수는 없다. 200만의 군대가 쳐들어 가는 나라. 정말 거대한 나라가 아니라면 저렇게 큰 군사를 일으킬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런데 200만이 쳐들어왔다.
이 하나의 사실만 보아도 삼국 중 하나인 고구려가 얼마나 큰 나라였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일단 이 하나 만으로도 타율성론이라는 것은 탄핵된다.
그렇다면 백제나 신라는 작았나? 그랬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에 따르면.
교과서에서 우리 역사는 백제와 신라를 한반도의 절반 정도도 안되는 부분을 양분하는 작은 나라들로 표현한다. 하지만 문제는 고대 역사책에 나오는 지명 대부분이 현재 어딘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한반도 내에 있는 지명 여기저기가 거기라고 “비정”했다. 즉 “추측해서 그렇다고 했다”. 누가? 그때 우리 역사를 쓰던 일본놈들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대 우리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 사서들에서 밝히는 지명들은 대부분 중국 동부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지역은 삼국 시대 일식 관측이 기록된 지역과 일치한다.
즉 백제와 신라도 한반도 남쪽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중국 대륙 동쪽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지금 소위 유튜브를 통해 시민사학자들이 접근 가능한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 연구해서 밝혀내고 있는 사실들이다. 아직 더 많은 내용들이 더 많이 밝혀질 것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는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에 기록된 영역보다 훨씬 더 넓었고 훨씬 더 강했던 국가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과 우리의 관계는 어땠나?
이 얘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얘기들이 한국이 중국에 사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얘기에는 그 빌어먹을 강단사학자라는 놈들도 대부분 꼭 형식적인 사대였다고 말한다. 일말의 자존심이랄까…
아니 사대면 사대지 거기에 무슨 다른 얘기를 할까?
조선은 확실히 사대를 했던 국가였다. 왕이 스스로 명이라는 대국의 황제 아래에 존재하는 왕이고 중요한 일은 모두 중국의 승낙 내지는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물론 명나라가 왕을 임명하거나 바꾸거나 하지는 않고 조선이 독자적인 세습으로 왕위가 계승되었고 또 단 한 번도 황제 앞에 직접 나아가 머리를 숙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왕위계승을 포함한 중요 사항은 모두 명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놈들은 우리의 이전 시대도 모두 그렇게 했다고 소급 적용해서 말하고 있다. 자 이것이 바로 일본놈들이 우리의 타율성론을 입증하는 가장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다. 조선이 중국에 사대했으므로 그 이전 나라들도 모두 그랬다. 말이 되나? 이건 마치 지금 중국놈들이 한 번이라도 쳐들어갔던 적이 있던 땅은 다 내꺼라고 우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어쨌든 조선 시대 이전 왕조가 중국에 사대했나? 앞에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이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얘기들이다. 어떻게 수백년씩 존재하던 나라들이 100년도 존재하지 못하던 나라들에 사대를 할 수 있는가? 사대를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대상은 모두 사라졌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과거에 중국에 사대했다는 사실은 성립될 수 없다.

42 우리는 민주화와 경제선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일본놈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역사를 손보기 시작한 것은 데라우치라는 놈이 총독으로 오면서 부터이다. 일본의 목적은 명백했다. 조선은 원래 시원찮은 민족이니까 우리가 너희를 지배하는 것이 지극히 옳은 얘기고 너희는 그저 우리가 지배하는 것을 감사하다고 받아들이고 말만 잘 들으면 된다. 그리고 그들은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폭력적 지배를 시작한 것이다.
조선인은 돼지새끼들이니까 그냥 돼지새끼 몰듯 마구 몰아붙여도 찍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우리가 시키는대로 할 것이다. 이게 일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 가만 보면 일본놈들도 참 돌대가지지. 임진왜란 때 이미 겪은 일이 아닌가? 대가리가 나라를버리고 도망을 갔어도 그 나라 지키려고 수많은 의병이 등장하는 이상한 나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거는 나라.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또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인을 생각하고 다루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5000년의 역사를 지켜온 민족이다. 그런 민족이 그런 단순한 압박에 굴할 것인가?
이건 우리가 직접 겪어온 현재 시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얼마나 우리가 타율적이지 않은지.
우리는 정말 자율적인 민족이다.
세계 어떤 나라가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1980년 5.18, 또 1987년 직선제 개헌 그 이후에 박근혜 탄핵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그리고 그 투쟁의 대상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정부 즉 국가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내 나라에 부당하게 들어선 정당성 없는 정부에 대한 항거.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이런 항거는 실패로 끝난다. 왜냐하면 정부는 경찰과 나아가 군대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성공을 하더라도 다시 비슷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위 쟈스민 혁명이라 불린 중동 지방의 민주화 운동 이후 대부분의 국가는 일시적으로 성공했으나 결국 다시 원상태로 복귀했다.
하지만 우리는 주저앉지 않았다. 정말 전두환이라는 개 쓰레기 보다도 못한 놈에 맞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하여간 말도 안되는 인권 유린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놈이 다시 체육관 선거를 통해 장기집권하는 독재가가 되려는 꿈을 막았고 더구나 결국에는 감방에까지 보냈다. 물론 그런 놈은 당연히 감옥에서 죽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놈은 다시 풀려나 떵떵거리며 살다가 얼마 전에 죽었다. 분명 지옥도 최악의 지옥으로 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했던 이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시민 각자가 알아서 필요성을 느껴 투쟁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대학생들이 아무런 바라는 것 없이 투쟁했고 시민들도 여기에 동참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취되었다.
물론 아직도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찌질한 조선인에 속하는 30% 정도의 한국인이 꾸준히 존재하면서 일본을 떠받들고 있지만 그들도 서서히 바뀌어 갈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일본처럼 꼭대기에서 뭘 시킨다고 아무 생각없이 따라하는 타율적인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처럼 주어진 자리에 찍소리 말고 멈추어 있지 않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잘 단합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론에서 일치하는 것이고 결국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게 한국인이다. 개개인으로 놓고 보면 자율적이고 무엇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잘 뭉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로 보면 동일한 목적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는 민족. 아마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일 것이다.
현대사에, 그러니까 우리가 눈으로 직접 관찰하고 영상으로 기록되는, 이런 민주주의 쟁취 역사는 우리 밖에 없다. 이건 마치 인디언 기후제와 같은 것이다. 즉 비가 올 때까지 기후제를 지내는 것처럼 우리도 원하는 바를 얻을 때까지 설사 내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투쟁하는 민족. 세계에 유일한 민족.
게다가 한국인은 필요 이상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거만하지도 않고 꼴값을 떨지도 않는다. 정말 세계 유일의 어떤 샘플과 같은 인종이다.
우리가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것도 결국 이 민주주의 덕분이다.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달성되어야 한다. 그게 달성되지 못하면 누군가 자꾸 통제하려 하고 그러면 부패가 생기는 것이고 결국 세계에 신임을 얻지 못하고 경제는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이게 바로 현재 중국 상태 아닌가? 그런데 다행이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먼저 달성했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경제 선진화도 달성했다.

43 일본은 역사를 조작해 우리를 중국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다시 일제에 대한 투쟁으로 돌아가자.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투쟁도 시작되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거의 멸망해 가는 시점에 결국 재수가 끔찍이도 좋은 일본에 의해 망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위로는 왕부터 아래로는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싸우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런 상황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가 항복하면 아래는 그냥 아무 소리 없이 따라가는 것이 일본인이다. 사실 타율성의 샘플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다. 조선인은 그렇지 않다. 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너무도 일상화된 조선인이다. 그래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맞서기 시작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전략을 수정해 강압적인 방법이 아닌 문화적인 방법, 즉 교육을 통해 조선인을 말살시키는 일에 박차를 가해 조선인을 끊임없이 루저로 교육시켰고 그 교육 효과는 지금도 강력하게 남아있다. 참 일본놈들도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교육에 있어 가장 첫 번째고 또 중요한 것이 바로 역사를 손보는 것이다.
1900년대 초에 뭔가 대단한 역사적 연구가 있을 수 없다. 또 뭔가 사료나 유적도 없다. 있어도 감추고 또는 광개토태왕비 같은 경우는 억지로 글씨 지우고 다른 글씨로 만들어 가며 자기들의 목적에 맞추어 조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책들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었다.
사실 이성계가 만든 조선이 우선 문제다. 비록 우리의 조상이지만 조선이라는 국가는 그 출발부터 문제가 많았다.
조선이 한 가장 비극적인 일은 바로 우리 역사 지우기를 스스로 시행했다는 것이다. 태종 세조 성종 등 여러 왕 시대에 전국의 역사책들을 모두 금서로 지정하고 일종의 분서갱유를 통해 우리 고대 역사를 지웠다. 그러니까 1900년대 말 우리에게 남아있는 역사책은 거의 없었고 그저 중국과 일본의 역사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왕조실록 같은 조선의 책들은 아주 상세하게 기록돼 남아있었다. 그리고 왕조실록에는 중국에 사대한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었고.
이러면 간단하지. 그 이전 시대도 조선시대처럼 그랬다 라고 그대로 쓰면 되니까. 조선의 중국에 대한 사대. 이미 말한 것처럼 이전 왕조에서도 그렇게 했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이 일본이 조작한 역사는 근본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역사책에 기록된 위치가 정확하게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책들을 지금 많은 시민역사가들이 하는 것처럼 이러 저리 찾아 살펴보면 어느 곳이 역사의 현장인지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냥 대충 한반도 내에서 이곳 저곳이 이곳 저곳이었다라고 말하면 됐다. 그렇게 한다고 누가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돈주고 그렇게 하라고 시키니 정말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할 쓰다 소치키라는 놈을 필두로 이병도라는 놈 등등이 아주 신나게 역사를 새로 썼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역사를 아직도 우리가 우리의 역사라고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조선 이전 역사는 조선에 의해 우선 지워졌고 이후 쓰다 소치키라는 놈에 의해 완전히 새로 써졌다. 이게 진실이다. 그리고 그 놈이 조선사를 쓸 때 가장 중시했던 것은 바로 이 타율성론의 입증.
간단하다. 현재 조선이 그래온 것처럼 처음부터 언제나 중국에 속해 사대하며 눈치보며 살아온 영토도 작고 별볼일 없는 민족 생성. 이것이다.
정말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얘기들이다. 이건 주장도 아니고 그냥 억지로 아무말이나 떠들어 대는 막말잔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도사관의 다른 얘기들도 그렇지만 특히 이 타율성론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는 내용이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내용부터 특히 우리가 중국에 사대했다는 내용을 여기서부터 뽑아냈고 결국 지난 번 시진핑이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옛날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제 세계에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 영토는 옛날부터 한반도였고 지속적으로 중국에 사대했으며 반쯤 중국 식민지로 살다가 결국 일본에게 먹힌 하찮은 국가.
기가 막히게 짜여진 논리지만 단 한 마디의 진실도 없는 논리다.
진짜 우리나라 강단사학자라는 놈들부터 때려 죽여야 한다. 이 놈들을 어떻게 해야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44 당파성론
다음으로 당파성론이라는 것을 보자.
한국인들은 국가나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잘 뭉칠 수 없다는 얘기며 이를 입증한다고 드는 대표적인 예가 조선시대 사색당파라는 것이다. 진짜 이 놈들의 얘기는 하나씩 하나씩 들으면 들을 수록 너무 웃겨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떻게 이렇게 유치할까? 그런데 이런 유치하고 정말 수준 이하의 얘기들이 아직도 우리 민족에게 강력하게 먹히고 있으니….
우선 국가나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앞선다? 이런 얘기를 하니 개새끼라는 소리를 듣지. 어떻게 국가나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중요한가? 물론 이 질문은 관점에 따라 다른 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이냐?
100년 전 관점으로 보면 국가의 이익이 우선한다 말할 수 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관점이다. 그리고 독재국가에서는 당연히 국가의 이익이 우선한다. 그래서 우리만 해도 옛날에는 군관민이라고 칭했다. 즉 군대가 가장 중요하고 다음은 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민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은? 현재는 언제나 민관이라는 표현을 쓴다. 즉 국가의 주인은 누군가라는 질문이 있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시민이다가 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권리를 갖는 시민, 즉 개인이라는 것이다.
저 위 일본놈들이 한 얘기가 정확하지도 않지만 만일 정확해서 우리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민족이라면 우리는 이미 100년을 남들보다 앞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놈들이 국가 앞에 고개 숙이고 있을 때 우리는 시민이 앞장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살고 있었으니까.
저 시대는 제국주의 시대고 약육강식의 시대다. 물론 역사는 언제나 약육강식의 시대였지만 특히 이 시대는 전 세계 특히 유럽과 미국의 소위 백인들이 미쳐 날뛰던 시대였고 나머지는 모두 그들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받던 시대였다.
그리고 일본이 이 흐름에 편승하면서 스스로 탈아입구, 아시아를 탈출해 구라파, 즉 유럽의 한 나라가 되겠다고 설치던 때였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너무 웃기는 얘기 아닌가? 탈아입구! 그 이후에도 이 일본놈들은 자신들이 원래 백인이었다느니 정말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얘기들을 한다. 자기들이 원래 백인이래…. 이건 정신병이지. 자신들이 너무 초라해서 모든 것에 대해 컴플렉스를 느끼는 소위 열등감 혹은 자격지심. 못난이 컴플렉스? 하여간 이 일본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참으로 문제가 많은 종족이다.
물론 일반 시민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소위 지도층에 있는 인사들. 소위 극우파들, 그냥 일본이 세계 최고야를 외치는 모지리들. 얘들은 정말 유치하기 이를데 없다.
어쨌든 일본은 우리가 1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2 잘 뭉치지 못하고 3 당파싸움만 한다 라고 말했는데 첫 번째 얘기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남들보다 100년을 앞서 나갔다는 칭찬이 될 것이고 두번째 잘 뭉치지 못한다 또한 할 얘기가 많다.
지난 1997년 금 모으기 운동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버리고 조직되는 의병들 역시 우리가 얼마나 잘 뭉치는가, 그것도 타율적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얼마나 잘 뭉치는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축구를 보자. 지난 2012년 월드컵이 있을 때 누가 시청 앞으로 모이라고 한 적이 없다. 물론 모인다고 알려는 주었지. 하지만 그건 한참 지난 후의 일이고 처음 시청 앞에서 응원할 때는 그런 종류의 알림도 별로 없었고 또 모이는 것도 잘 몰랐다. 하지만 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시청 앞에 모여서 단체로 응원을 했다. 축구한다고 100만명이 그것도 자발적으로 모이는 나라? 그런 나라가 단합이 안된다? 개가 풀이 아니라 개가 듣고 너무 웃겨서 웃다가 고양이가 될 일이다.
물론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쉬울 것이다. 그 동네 국회의원 쯤 되는 놈들이 모여서 동네 사람들에게 돈 좀 주고 관광 버스 보내면 잘 모일 것이다. 그놈들은 국가와 사회가 개인 앞이니까 국가 적인 관점에서 모이라고 하면 말 잘 들을테니까. 또 그렇게 말 잘 듣는 국민들이니까.
여기에서 일본은 국민이고 우리는 시민이라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국민은 뭔가? 국가를 이루는 각 개인을 말한다. 즉 국가가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시민이란? 국가의 주권을 가진 구성원을 말한다. 즉 개인이 국가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시민인 우리에게 이런 모임을 하는 것에는 어떤 강요도 없었다. 아니 강요가 아니라 안내도 변변히 없었다. 그냥 모인다더라 뿐이었다. 그 소리 만으로 100만이 모였다. 더 한 것은 100만이 모이면 그들이 흩어진 후 무슨 일이 생기는가?
그건 미국에서 12월 31일 뉴욕 타임즈스퀘어에서 새해맞이 쇼가 끝나고 보면 안다. 그 단 몇 시간에 수십 톤의 쓰레기가 생긴다. 어느 나라에서나 생기는 일이다. 우리나라만 빼고. 당시 축구 응원이 끝난 후 휴지 한 장 현장에 떨어져 있지 않았단다. 아마 사람들이 쓰레기를 가져 갑시다라고 한 마디 했겠지. 그랬더니 다 가져 갔다. 이건 자율성에 대한 얘기고 잘 뭉친다는 것에 대한 얘기다.
이런 선례가 있었더니 요즘 일본 사람들 몇몇은 뭘 하고 있나? 이나라 저나라 축구 경기장에서 경기 끝나고 나면 쓰레기 줍고 있단다. 전형적인 뒷북 내지는 보여주기식 행위. 요것이 일본의 랜드마크이다.
우리가 잘 뭉친다는 것은 그냥 한 마디로 우리의 역사 5천년 동안 정권이 몇번 바뀌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잘 뭉치지 않는 나라라면 긴 역사를 가진 나라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45 당파는 망국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다
당파싸움에 대해 알아보자.
아, 진짜 개새끼도 천하의 개새끼들이네. 도대체 당파싸움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
세상 모든 나라 모든 시대 모든 정권에는 모두 당파가 있고 당파가 있으면 서로 사이에 싸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싸움을 꼭 나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왜? 이걸 소위 견제와 균형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이런게 없다면 견제가 없다는 것이고 그건 바로 독재를 뜻하는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일본이 이미 70년을 한 당의 지배 하에 수상만 바뀌면서 살아오고 있지. 일본이 전형적인 독재국가 혹은 후진국가가 아니고 무엇인가? 당파싸움마저도 없는 독재국가. 아니지. 당파싸움의 끝장을 보고 상대를 다 죽이고 홀로 섰고 우매한 백성들은 그렇게 센 놈 밑에 빌붙어 다른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는 불쌍한 일본.
당연히 일본에도 당파가 있었다. 아니 우리처럼 말로 싸우고 해결하려는 당파가 아니라 총과 칼을 앞세우는 당파가 있었다. 진짜 천하 최악의 당파여서 지들끼리 밥처먹고 전쟁만 했다. 오죽이나 당파가 강했으면 서로 군대도 섞지 않는다.
옛날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일본놈들은 모두 등때기에 자기가 어느 장군 밑의 군인라는 표식을 매달고 다녔다. 그들은 일본 병사가 아니다. 마치 지금 중국 군인이 중국이라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공산당의 군대인 것처럼 임진왜란 때 일본 병사는 자기가 속한 대장의 군인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돕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심지어 상하도 없었고 그냥 누구 누구 소속 병사만 있을 뿐이고 그 병사는 자기 주인의 명령만 따른다. 물론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칼부림난다. 그러니 걔들에게 연합해서 전쟁을 하라면 그게 제대로 될까? 그냥 욕심만 부리고. 이처럼 완전히 파벌이 갈라져서 서로 명령체계도 없고 각자 대장이라고 우기는 놈들이 서로 파를 만들어서 남들 우습게 알고 서로 죽이고 이건 당파를 넘어서는 폭력 단체들이다. 그냥 우리가 하는 말로 양아치 집단.
이런 양아치 깡패 새끼들이 남들을 욕한다고? 우리가 당파 때문에 아무 것도 못했다고? 정말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놈들이다. 진짜 따지고 보면 일본에는 당파가 없다. 그냥 총칼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총칼에 항거하는 놈은 또 없고. 그러니 일본은 옛날부터 고개 숙이고 하이 하이 스미마생을 부르짓고 뒤에 가서는 뒤통수치는 일이 흔하지. 앞에서 대놓고 싸우지는 못하고, 왜? 그러다가는 칼 맞으니까. 당파마져도 존재하지 못했던 일본이 참으로 불쌍하다.
우리는 과거부터 다양한 파벌이 있었다. 고구려에는 다섯 개의 가문이 있었고 신라에는 6개의 가문이 있었다. 이들이 합하여 국가를 만들었고 서로 서로 상의하며 국가를 운영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특징이다. 항상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면서 국가를 운영했던 나라.
그래서 우리 왕조의 왕들은 실제로 그렇게 전제적인 힘을 가지지 못했다. 대신 언제나 신하들의 의견을 들었고 그것을 적극 수용하며 독재를 행하지 않았다. 영조 때 탕평책을 썼던 것은 유난히 당파가 심해서가 아니다. 여러 파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보다 나은 정책을 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영조가 좋았던 왕이라 기억되는 것이다.
이렇게 탕평책을 쓰지 못했던 다른 왕들은 하나의 파만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정책을 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문에 결국 조선이 망하게 된다. 당파가 없어지고 하나의 파가 고인물이 되어 썪어 버렸기 때문에 망하게 된 것이다. 이 순간 다양한 파벌들이 유지되며 견제와 균형이 이어졌더라면 아마 우리가 일본놈들로부터 치욕을 당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이 망하는 때 이미 더 이상의 당파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결국 언제나 문제는 어떤 시각이냐에 달려 있다. 물잔에 물이 반이 남아 있을 때 겨우 반으로 볼 것이냐 아직도 반씩이나로 볼 것이냐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래서 당파싸움을 볼 때 그걸 망국의 원인으로 보느냐 아니면 견제와 균형으로 보느냐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결국 문제는 당파 자체가 아니다. 마치 당파가 우리 만의 문제인듯 아직도 당파를 강조해서 교육하는 우리의 교육이 문제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되지 않는 일본이고 또 강단 사학자들이다.

46 반도성론
다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반도성론.
말 그대로 우리 역사가 한반도 내에서 이루어졌고 우리가 반도에 살았던 국가이므로 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부수성과 주변성을 강하게 띈다는 말이다. 즉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언제나 변두리에 서 있는 찌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도라는 것은 해양으로 나가려는 세력과 대륙으로 들어가려는 세력 가운데에 있으므로 우리는 꾸준히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또 그 때문에 나라를 뺐겨 중국의 지배를 받고 살았다는 것이다.
얼핏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참 개소리다.
우선 그 먼 옛날 배타고 다니는 자체가 위험하고 어렵던 시절에 무슨 해양세력 대륙세력이 얼마나 있었나? 왜 바다에서 육지로 또 육지에서 바다로 가려고 애를 쓰겠나? 그냥 살고 있는 자리에서 살면 되는 것을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육지로 갈 필요가 없고 갈 능력도 안됐었다.
그런데 이 반도 사관의 핵심은 이처럼 우리의 위치 때문에 우리가 수많은 외침을 겪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반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침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계를 내서 우리가 수천번의 외침을 받았다고 씨부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우리가 너무 너무 외침을 많이 받았다고. 진짜? 도대체 우리가 그렇게 많이 외침을 받았나?
그렇단다. 하지만 일본놈들이 얘기하는 외침은 주로 왜구나 혹은 변방의 소소한 양아치짓거리들. 이런걸 어떻게 침략이고 보는가? 이런걸 침략이라고 보면 과거에 존재하던 수많은 산적 해적 모두 역적으로 보아야 하고 특히 내란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소한 패싸움들도 모두 내란이다. 이게 가능한 말인가? 하여간 일본놈들은 이런 짜잘한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엄청나게 침략을 받아서 결국 자주성을 잃어버리고 찌질이가 됐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외침은 우리 역사 5천년에 10개도 되지 않는다.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몽고 거란 그리고 임진왜란 정도. 제발 우리 스스로 이 반도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동안 우리가 수없이 들어온 우리는 수많은 외침을 받았다느니 등등의 얘기들은 모두 헛소리다. 우리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적게 싸웠던 국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바다에 나간다는 자체가 어려운 시절에 반도라는 지형은 아무런 차별점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아마도 그 시절에 여기가 반도라는 사실도 대부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대표적인 반도국가라면 이태리를 들어야 한다. 이태리가 계속 지배를 받았나? 외침에 시달렸나? 더구나 이태리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배만 타면 건널 수 있고 지중해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바다기 때문에 정말 많은 침략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태리는 로마를 건설했고 중세 천년을 지배했으며 현대 역사에서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3국 중 하나이다. 그만큼 강하고 자력으로 잘 살아온 것이 반도국가 이태리다.
그런데 그 이태리라는 반도는 문제가 없는데 우리 한반도는 문제다? 진짜 지나가는 개가 웃고 갈 말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는 얘기지만 사학자라는 인간들이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서 이런 논리에 대해 반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재야사학자들이라고 본다. 그들은 그래도 우리를 지키려는 생각이겠지. 하지만 이런 헛소리를 자꾸 상대해 주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건 논리도 아니고 어떤 검증이 된 것도 아니고 그냥 개소리들이다. 일본놈들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만든 헛소리다. 그냥 무대응하고 뭐라고 떠들면 한 번 위 아래 훑어보고 미친놈 한 마디 던지면 된다.
이런 한심한 헛소리들을 마치 뭔가 의미가 있고 떠들어 볼 주제인 것처럼 만든 것이 문제다. 하긴 반일종족주의 라는 책을 쓴 놈들 같은 놈들이 자꾸 씨부려 대면 그것도 가만히 있기도 곤란하고…. 참고로 이 책을 쓴 놈들은 이영훈이라는 놈을 우선으로 김낙년 김용삼 주익종 정안기 이우연 이라는 놈들이다. 글쎄 뭐하는 놈들이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읽을 가치가 없다. 개들이 짓는 소리를 썼다고 해서 그걸 보거나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개는 그저 개일 뿐이니까. 그리고 또 그놈들이 가끔씩 떠들어 대는 말만 봐도 저놈들 수준이 뻔한데 왜 이런 쓰레기 냄새를 맡겠는가? 그냥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저런 것들은 그냥 무시해서 스스로 주둥이를 닥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또 굳이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헛소리를 씨부리고 다니니 그냥 두고 볼수만은 없기도 하고… 참 문제네. 일본 가서 살지 왜 굳이 한국에 살면서 저러고 있을까?
하긴 아직 30% 가까이 되는 모지리 조선인들이 있으니까… 주옥순 같은 모지리도 있고…

47 만주는 원래부터 우리 땅이다.
이제 만선사관이라는 것을 보자.
만선사관이란 만, 즉 만주와, 선, 즉 조선은 하나라는 뜻이다. 이건 마치 일선동조론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과 조선이 하나인데 일본이 주인이고 조선이 하인이라는 말.
만선사관 역시 동일하다. 만주와 조선, 여기서 조선이란 한반도를 의미한다, 은 하나인데 주는 만주고 조선은 그 만주에서 잘 나가지 못하는 찌질이들이 도망쳐 만든 것이 한반도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한반도는 독자적이지 않고 만주에 종속되어 있다는 뜻이다.
진짜 이 반도사관이라는 내용은 살펴보면 살펴볼 수록 너무 야비하고 찌질하고 비겁하고 한심하고 황당하고 우습기만 할 뿐이다. 어떻게 학자라는 작자들이 저런 소리를 할 생각을 하고 저런 소리를 연구해서 만들 수 있을까? 저런 의견을 발표한 놈들은 그냥 한 마디로 학자가 아니다.
반도사관은 어디부터 시작되는가? 1940년 일본 학자 미시나 쇼에이라는 놈이 쓴 조선사개설에서 처음 발표된 모양이다. 이 놈이 한 얘기를 한 번 정리해 보자.
한국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동양사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 세력이며, 정치적 문화적으로 항상 외부 세력의 침입에 시달리며, 다른 세력에 의해 지배당했다. 그러므로 한국사는 부수성 주변성 종속성으로 규정지어지며 이는 곧 사대주의가 한국사의 기본 원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의 모든 것은 중국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며 이 사대주의는 한국인의 의식구조 행동양식 등에 투영되는 민족성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은 자주적으로 이룬 것이 없고 식민지배는 불가피하다.
진짜…. 사실 이게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교육받은 내용이다. 딱 요렇게 배웠다. 우리는 반도라서 침입이 많았다. 우리는 중국에 형식적으로 사대했다. 그리고 지금 나부터도 이 논리에서 이제야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에 대해 보기 시작했다.
10년 전만해도 나 자신이 우리가 시원찮아서 우리끼리 죽어라 싸우는 민족이고 우리끼리 욕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했고 믿었고 그에 맞추어 행동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이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반도 뭐 이런 헛소리 생각하지 않고 또 우리의 사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무의식 중에 나처럼 우리 스스로를 깔보고 있을까?
정말 일본이 하려던 교육은 완전히 성공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정말 교육이 중요하다.
어쨌든 이 반도사관 자체가 앞에서 이미 여러 번 밝힌 것처럼 단 하나도 말이 되는 것이 없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한다라는 내용이다. 마치 우리 강단사학자 혹은 과거 일본놈들이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어떤 지역 이름을 대충 아무 곳이나 지칭하고 여기가 거기다 라고 말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씨부린 것이다. 아니 분명한 목적, 조선인 찌질이 만들기, 하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위조된 내용일 뿐이다.
이 반도사관 어쩌고 하는 것을 언급하는 자체가 한심한 일이고 역사에서 그냥 헛소리로 치부하고 버리면 되는데 이 놈의 반도사관이 우리에게 교육되어져서 그게 문제가 된다.
어쨌든 이 반도사관의 마지막 만선사관을 계속 보자.
여기서 만주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은 사실 맞는 얘기다.
우리의 고조선이 출발한 지역도 만주고 부여도 그곳에 있었고 고구려가 자리 잡고 있던 지역도 만주고 발해가 자리 잡던 지역도 만주다. 그리고 조선시대마저 우리는 만주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 이제 간단한 질문. 만주는 누구 땅인가? 바로 우리 땅이다.
그렇다면 여진, 즉 만주를 자기들 고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은 누군가?
일단 우리의 남북국 시대를 보자. 남으로 신라가 있었고 북으로 발해가 있었다. 그 이후 신라는 고려로 계승된다.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992년 존속한 나라이며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 존속했고 발해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228년간 존재했던 나라다. 아마 신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짧았던 왕조국가일 것이다.
문제는 발해가 멸망하면서 부터 생긴다. 발해는 누구에 의해 멸망 당했나? 거란 즉 요나라에 의해 멸망 당했다. 거란은 누구인가? 만주에 살던 사람들이다. 원래 만주에 살던 사람들이 누구였나? 우리였다. 즉 거란은 그냥 우리 민족이다. 적어도 고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했고 그 이후 발해를 계승하는 사람들이다. 이게 우리 민족이 아니면 누가 우리 민족이라는 것인가? 심지어 거란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외쳤다. 물론 발해도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했고.
그리고 그 다음 만주 역사에 또 다른 이름이 등장한다. 여진. 여진은 누구인가? 여진은 발해가 멸망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어디 갑자기 다른 곳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다.
고대에는 숙신이었고 이후 읍루 물길로 불렸다. 이들을 통합해 말갈로도 불렀다. 발해 멸망 이후 거란인들이 이들을 여진으로 불러서 여진이 되었다. 이들은 그냥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사람들이었는데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을 때 그 발해인들을 여진이라고 불렀다. 그냥 우리 조상이다.
쳐들어왔던 거란도 원래 발해 땅에 살던 여진도 모두 우리 민족이다. 모두 고조선 사람들이고 고구려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바로 그 땅, 즉 만주에서 원래부터 살던 민족이다. 바로 우리 민족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만든 나라 요 금 청 이 나라들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 맞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역사는 새롭게 쓰여야 한다.
지난 번 시진핑이라는 놈이 트럼프라는 놈을 만나서 원래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게 뒤집혀야 맞는 내용이다. 중국 대륙 역사의 최소 절반은 바로 우리의 역사였고 즉 중국이 우리의 식민지 노릇을 했다고.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그 역사를 우리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로 바꾸어 버렸다. 누가 왜? 결국 조선이 문제다.

48 철수와 영희
결국 문제는 조선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에 대해 그것도 우리 역사와 조상에 대해 이렇게 말하면 안되지만 정말 우리 역사에서 조선이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그럼 이쯤해서 우리 역사를 먼저 한 번 보자.
우선 중요한 사항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우리 역사는 우리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미 얘기한 것처럼 역사란 사실이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목적을 가지고 알아서 쓰는 것이다.
역사를 쓰는 목적은? 우리가 잘났고 앞으로 더 잘나갈 것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 역사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있는 우리 역사는 이 목적에 일치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잘 보아주면 우리가 못나고 별로 신통치 않고 우리 역사에 내세울 것이 없다 정도? 그리고 실제로는 우리는 반도에 살아서 개뿔이나 아무 것도 없고 자주성도 없고 일본 똥구멍이나 핥으면 되는 찌질이다. 이게 우리 역사책에 써 있는 내용이다. 역사가 서술되어야 하는 방향과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이 역사는 우리에게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 미래는 안 살아도 뻔하고 우리는 자율적이지 않고 단합도 안되기 때문에 결국 머지 않아 다시 일본이나 중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즉 역사를 쓰는 기본 방향에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이 역사는 우리 역사가 아니다. 존재해서는 안되는 역사고 반드시 없애야 하는 역사다.
역사는 반드시 그 민족 혹은 나라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정당한 역사가 아니다. 아니 그런 역사는 쓸 필요가 없다.
내가 바보라고 말하는 역사? 그런 역사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 현재 역사는 바로 우리 스스로를 바보라고 아직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 역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우리 역사의 훼손된 원본이다.
원본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원본이란 원래 쓰인 고대사에 관한 책들이 아니다. 원본이란 그 소스들을 이용해 처음 쓰인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현재 우리 역사의 출발점을 말한다.
여기 철수와 영희가 있다.
철수 아버지는 아주 잘 살고 돈도 많고 공부도 많이 했다. 그런데 영희 아버지는 돈도 없고 공부도 못했다. 철수 아버지가 생각했다. 이 영희네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서 평생 저 집안 대대로 우리 집안 노예처럼 공짜로 써야겠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하다가 아, 저 집안 족보를 만들어서 너희는 원래부터 우리 가문에 속하는 노비라고 만들어 놓으면 되겠다 라고 결정했다. 그래서 철수네는 영희네가 자기 노예라는 족보를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영희네 온 가족을 불러다가 무릎 꿀린 후 족보를 보여주면서, 너희는 여기 보이는 것처럼 옛날부터 우리 노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가 시키는 대로 우리 노예를하면서 살아야 한다 라고 외쳤다. 영희네는 그런 족보가 나와 당황했지만 그래도 그런 것이 나왔으니 할 수 없이 예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철수네가 시키는 대로 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철수네가 망했다. 그리고 짐싸들고 사라졌다.
그래도 영희네는 스스로 철수네 노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노예문서를 소중히 간직하고 거기 혹시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더 철저하게 자기네가 철수네 노예라고 덧붙여 써 넣었다. 그리고 철수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옆집에 삼룡이네가 이사를 왔다. 삼룡이가 보니까 영희네는 그 떠나간 철수의 이야기를 굳건히 믿으며 자기네가 철수네 노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삼룡이네가 여기 저기 수소문해 보니까 그 노비문서라는 것이 별로 믿을만해 보이지 않았다.
삼룡이네가 영희네를 찾아가서 얘기했다. 너희 노비문서는 보니까 뭔가 좀 이상해 보여. 그랬더니 영희네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이 문서가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이 문서에 써 있는 대로 우리는 철수네 노비가 맞다. 두 번 다시 다른 얘기는 하지 마라. 우리는 철수네 노비다.
이 영희네가 바로 우리의 현주소이다.우리가 배우고 있는 우리 역사다.
정말 가슴이 아프고 무너지고 갑갑하기 이를데 없지만 이게 우리, 특히 역사학의 현주소다.

49 우리 역사의 기초는 무엇인가
우리 역사의 원본을 보자. 누가 우리 역사의 출발점인가?
즉 근대에 들어 본격적인 공교육이 생기고 국민들을 교육시키면서 역사라는 학과목을 가르치게 되었고 우리 역사를 최초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즉 우리나라 역사를 정리해서 우리가 오늘날 배우는 우리 역사의 바탕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모든 것처럼 근원 혹은 기초가 중요하다. 기초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훌륭한 건물을 짓더라도 당연히 무너지거나 비틀어져 쓸모 없어지고 결국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역사의 기초는 쓰레기다. 하나도 쓸모가 없다.
물론 우리 역사 연구 초창기에 소위 민족주의 사학자분들이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던 분들이 있었다.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과 같은 분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와 노력은 그저 박물관에 들어가 있고 그 분들에 대한 연구나 그분들 연구의 후속작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최근 들어 유튜브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관심사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그분들의 관심이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계승하는 것은 재야사학자가 아니라 시민사학자들인 것처럼 보인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배우는 역사는 처음부터 잘못된 토대 위에 자리 잡았고 해방 이후에도 그걸 뒤엎어 버리고 제대로 된 역사관을 바탕으로 수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친일파 청산 실패를 들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친일파 청산을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해서 솎아낼 것은 솎아내야 한다는 이유이다. 어쨌든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하면서 일본놈들이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왜곡시킨 조선의 역사가 지금 현재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다. 만일 친일파가 청산되었다면 역사에 대한 재조명도 가능했을 것이고 역사가 지금처럼 처참하게 조선인 병신 만들기 노릇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 역사가 아직도 계속해서 우리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를 3류 시민으로 만들고 있다. 주변에서는 꺼떡하면 일본놈들이 또 중국놈들이 우리 나라가 자기들 땅이라고 자기들 식민지라고 씨부리고 있다. 그리고 그 헛소리에 동조해 아베 수상님 미안합니다 라고 쓴 피켓을 든 주옥순이라는 할머니도 있다. 이 십장생!!!! 정말 욕이 안나올 수 없다. 정말 미치치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백주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왜? 역사가 잘못되어 있으니까. 즉 우리의 뿌리를 모르고 우리가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를 모르니까.
저렇게 미친짓하는 것들이 보는 역사와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보는 역사는 서로 다르다. 불행하게도 지금 대세는 저 미친소리 하는 인간들이 보는 역사이다. 저들이 보는 역사에 따르면 우리는 찌질이고 모지리고 중국에 사대하고 일본 지배를 받아야 마땅한 머저리들이기 때문이다. 그걸 스스로 그렇다고 인정하면서 스스로 일본에 머리 숙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일본이 우리에게 한 단 한 가지 행동만 가지고도 일본에 분노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난 100년 전 그러니까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이 있었다. 이 지진으로 도쿄 일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중요한 것은 일본 내무성에서 각 경찰서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그 내용은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신문에서는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 고 보도했고 그 결과 눈먼 일본인들이 단합해 6,066명의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그럼 이처럼 조선인이 획책하는 사건들을 공문으로 전달한 근거는 뭔가? 없다. 이게 일본의 특징이다. 일단 씨부리고 그 근거는 없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뭐랄까 줏대 없고 시키는 대로 하니 신문에서 조선놈들이 폭도다라고 떠들어 대면 흥분한 이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학살할 것을 알고 미리 지진 이후의 흉흉해지는 민심을 조선인들에게 화풀이 하는 것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이 하나의 사실 만으로도 일본은 죽일 놈이다. 일본이 얼마나 나쁜지는 얘기할 필요도 없다. 하여간 쳐죽일 것이 바로 일본이다.
물론 현재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일본이라는 대명사를 앞에 두고 일본과 우리의 겹치는 역사를 뒤돌아 보면서 그런 끔찍한 짓거리를 하고도 아직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가끔씩 우리 뚜껑을 열게 만드는 일본 정부와 그들의 교육을 옛날 제국주의 시대와 연결시키려는 분자들, 이놈들이 바로 우리가 열받는 대상이다.

50 냄새나면 뚜껑을 덮어라
앞에 던졌던 이 질문, 누가 우리 역사의 기초를 만들었나? 그 대답을 찾아보자.
우리 역사는 일본이 조선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선사편수회라는 단체로 부터 출발한다. 조선사편수회. 1900년대 초 우리 역사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것을 알고 일본이 친절하게도 우리의 역사를 대신 써 주었다. 이게 친절하다고 감사할 일인가?
역사는 교육이다. 역사는 자존심이다. 그런데 그 역사를 내 조상이 아닌 나를 침범해서 억압하고 짓누르며 목잡아 먹어 안달인 놈들이 썼다? 그리고 그 역사관이 아직도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조선사편수회에 대해 알아보자.
결국 모든 일은 3.1운동부터 시작된다.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우리는 국가로서의 자존심을 빼앗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1907년 고종은 헤이그에 밀사를 보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일본이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이, 그것도 남들 못살게 구는 특기를 가지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양의 힘도 없고 빽도 없고 정말 쥐뿔도 없는 작은 나라인 대한제국이 뭐라고 떠든다고 들어 줄리는 없다. 당연히 약육강식은 인류역사에 언제나 존재하는 유일한 명백한 진리니까.
결국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일본은 고종을 폐위시켰다. 고종은 이태왕이라는 명칭으로 뒤로 물러나 앉고 그 아들이 황제가 된다. 순종이다. 그리고 1910년 드디어 일본은 조선을 멸망시켰다. 한일합방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경술국치, 대일투쟁기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초기 데라우치라는 총독이 있었고 이후 하세가와 요시미치라는 군인놈이 총독으로 부임한후 무력통치를 실시했다. 보이는 대로 패고 때리고 죽이고… 그러다 1919년 고종이 죽게 된다.
물론 고종은 우리 역사 최악의 군주 2명 중 한명이다.
나머지 한 명은? 아들과 신하에게 까지도 그렇게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에서 싸울 생각은 않고 백성은 물론 신하들까지 버리고 자기 혼자 중국으로 도망쳐 살 생각만 했고 또 귀때기가 얇아서 원균이라는 놈이 올린 편지를 보고 이순신을 치고 원균을 등용함으로써 칠천량 해전을 통해 조선 수군을 완전히 괴멸시킨 최악의 군주, 선조를 꼽는다. 진짜 둘 다 누가 더 못났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머저리 군주들이다.
어쨌든 1919년 고종은 이상하게 죽는다. 식혜를 마시고 갑자기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고, 이빨이 모두 빠지고 혀가 닳아 없어지며 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단다. 즉 독살이라는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이에 따라 민심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대한 민족의 특징 중 하나이다. 우리는 평상시 매우 순하고 조용한 민족이다. 별로 싸움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특히 남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조금 손해보고 마는 평화로운 민족이다. 우리 5000년 역사에서 남들을 쳐들어간 경우도 매우 손꼽히도록 적었다. 물론 민족 내에서의 전쟁도 별로 없었다. 이게 조선인이다.
물론 이건 근현대사 이전에도 그랬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호란 때도 그랬고 대일투쟁기 내내 그랬다. 투쟁은 우리의 의무고 또 권이다.
하지만 일단 한 번 불이 붙으면 정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단합도 말할 수 없이 강력하다. 당연히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게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어쨌든 이 고종 독살설이 퍼지고 고종의 장례날에 맞추어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놀란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아무리 사무라이들이 사람을 함부로 목을 베고 전 난리를 쳐도 아무도 우리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그들의 민족성이다.
그들의 민족성은 냄새나면 그 냄새의 근원을 찾아 근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냄새가 나면 그냥 그 뚜껑을 덮는 것이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일단 현재 내가 있는 이 순간만 지나면 되는 것이다. 괜히 대들었다가 뒤지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못본척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 사람들이 뭔가 저항하거나 대규모로 정부에 또는 사무라이들에게 대드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이게 일본의 특성이다. 냄새나면 덮어라.
특히 일반 시민들이 일본 역사에서 정부에 항거하거나 했다는 기록은 없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인에게는 또 다른 그들 삶의 철칙인 자기 자리 지키기가 너무나 깊이 뿌리 박혀 있어 웬만해서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어느 회사 종업원이면 그냥 그 회사 사장에게 이유 없는 충성을 할 뿐이다. 죽을 일이 있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죽는다. 아마 옛날 같으면 할복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시민혁명이 일어날 수 없는 국가를 꼽으라면 당연히 일등은 일본일 것이다.

51 뒷돈 문화는 일본이 우리에게 이식한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앞에서는 무조건 오케이를 부르 짓는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도 대부분은 웬만해서는 인상을 쓰지 않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그냥 웃으며 오케이를 부르짓는다.
오케이를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버릴 수 있는 행동이 될 수 있으므로 일단 오케이를 부르짓는 것이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아주 사소한 불만이었던 것까지 하나씩 모두 얘기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얘기하는 것이냐이다. 주로 위에다 얘기한다. 즉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문제와 직접 연관된 현장 당사자와 얘기하지 않고 일단 앞에서는 모두 오케이를 부르짓고 수용한 이후,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난 다음에 우회적으로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통수도 꼭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뒤통수다.
이런 이유로 일본인들에게는 빽이 너무 너무 중요하다. 뒤통수를 치려면 강력한 빽이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 빽에게 강력하게 어필해야 자신의 자리가 보존되니까. 그리고 만일 빽이 없으면 뒤통수를 치고 싶어도 못치니까. 그래서 일본 문화의 핵심은 결국 빽이 된다.
그런데 빽이란 무엇인가? 결국 비선이다. 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즉 정당하지 않거나 혹은 공식적이지 않거나 혹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된다. 이게 일본의 특징이다. 일단은 오케이 하지만 뒤에서는 찍어 누르기. 그리고 이 문화가 우리에게 이식되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정당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이런 상황에 처해있고 거기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으니까. 옛날 박근혜가 청와대에 앉아서 잠이나 자고 예뻐지려고 마사지나 받고 일은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뒤에서 순실이가 모든 것을 진행했던 것처럼.
이런 것을 보면 아베라는 놈이 그렇게 개판을 치고 신문에 연일 났어도 아무도 아베 물러가라고 떠든 시민이 없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는 일이다. 아베는 저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내가 얘기할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고 또 뒤통수를 치고 싶어도 뒤통수 자체가 불가능했을테니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아베가 했었던 수준의 비리는 일본에서 대충 인정받는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걸 다 이해하겠지. 저 사람은 높은 사람이니까 높으면 뒤로 좀 해 먹어도 된다. 뭐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생각이 사실 우리에게도 있다. 물론 우리나 일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권력에 이런 생각이 기생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대와 사회 그리고 국가를 막론하고 고위층 비리가 어디에나 언제나 있는 것이다. 사회에 따라 좀 더 많은 나라가 있고 좀 덜한 나라가 있을 뿐이다.
이 문제가 우리에게도 심각했다. 아니 우리 시민들이 문제였다. 높은 놈들은 의례히 돈 받아 쳐먹는 것이다. 이게 우리에게 심겨져 있던 생각이었다.
조금 더 관찰하면, 조선시대에 각 고을 이방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월급 같은 보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을 사람들에게 조금 더 받아서 세금으로 내고 자기 주머니에 넣었었다. 이게 그들의 호구지책이었다. 이건 인정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정도를 취했을 것이다. 그게 우리의 문화니까. 물론 조병갑 같이 천하잡놈도 있었지만 그건 일부 케이스일 것이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스스로를 보라. 우리가 그렇게 남의 것 기를 쓰고 훔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일본놈들이 지배하면서 완전히 바뀌게 된다. 왜? 일본에게는 어느 정도 꼭대기에 있으면 무조건 상납을 받아 호의 호식하는 것이 상식이었으니까. 게다가 일부 친일을 부르 짓는 놈들이 같은 동포들로부터 엄청나게 뜯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욕심꾸러기로 전락했으니까. 아마도 이런 뒷돈은 대일투쟁기에 만연한 상태가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해방되고 1970년대까지 보편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80년대 들고 사회가 변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민주화를 거치면서 줄었지만.
어쨌든 지금도 빨간 넥타이 매는 놈들이 다수당이 되거나 여당이 되면 이런 유치한 문제들이 사라지다가도 계속 다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이명박이니 박근혜니 하는 인간들이 아주 빨간 넥타이의 전통을 여지 없이 활용했고 그 결과 감방에 갔다 왔고, 사실은 죽을 때까지 그 안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는 윤석열이라는 놈과 그 마누라 김건희가 과거 60년대에나 할만한 짓거리를 들을 다시 하고 있다. 정말 유치하기 이를데 없는…
이 문화, 이건 순전히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이식한 정말 더러운 문화이다. 네 자리를 지켜라! 십장생들….

52 3.1운동은 우리의 얼을 되살렸던 저항이다
다시 3.1운동으로 돌아가자.
물론 3.1운동이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만세운동은 아니다.
3.1운동 이전에 우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있고, 이에 고무된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39분이 무오독립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이 독립선언에 참가했던 분들은 이 선언서를 작성한 조소앙을 비롯 김규식, 김좌진, 박용만, 박은식, 신규식, 신채호, 유동열, 이동녕, 이동휘, 이범윤, 이상룡, 이승만, 이시영, 이세영, 정재관 등 차후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이끌던 인물들이었다.
내용도 3.1운동과 매우 다르다. 이 선언에서 이들은 일본을 동 아시아의 적, 국제법규의 악마, 그리고 결국 인류의 적이라 규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을 이렇게 끝낸다.
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국민본령을 자각한 독립임을 기억할 것이며, 동양평화를 보장하고 인류평등을 실시하기 위한 자립인 것을 명심할 것이며, 황천의 명령을 크게 받들어 일절 사망에서 해탈하는 건국인 것을 확신하여,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3.1운동 독립선언서의 내용과는 너무 다른 내용이다. 3.1 독립선언문은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것처럼 매우 평화로운 내용이다. 흔히 간디의 비폭력투쟁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쓴 사람은 최남선이다. 아마도 나중에 변절을 이미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마지막 단락을 좀 보자.
오등(吾等)이 자(玆)에 분기(奮起)하도다. 양심이 아(我)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古巢)로서 활발히 기래(起來)하야 만휘군상(萬彙羣象)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어도다. 천백세 조령(祖靈)이 오등(吾等)을 음우(陰佑)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의 광명으로 맥진(驀進)할 따름인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뭐 어쩌자는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진짜 누군가 비판했던 것처럼 이건 마치 지하철 역 노숙자가 세계 평화를 지키자고 외치는 한심한 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투쟁을 통해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이 무오독립선언서에서는 투쟁을 시민들이게 요구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근거는 우리의 독립과 동양 평화 보장 및 인류평등을 내세웠고 이에 따라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쟁취하리라 촉구하고 또 이후 스스로 그 길로 뛰어들어 우리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가장 대표적인 우리의 조상들이다.
이 무오독립선언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김규식이 지시하여 조소앙은 일본으로 건너가 2.8 독립선언을 이끌게 된다.
2.8 독립선언. 도쿄 한 복판에서 한달간 항일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참가자는 당시 유학을 가 있던 유학생들. 최팔용이 조선청년독립단을 선포했고 나중에 변절하게 되지만 이때만 해도 조선독립을 소원하던 이광수가 2.8 독립선언문을 썼으며 백관수가 낭독하였고 장영규, 최팔용, 윤창석, 김철수, 서춘, 김도연, 송계백, 윤치영, 정공균, 변희용, 강종섭, 이정훈, 이봉수, 김승민 등 500여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내용도 무오독립선언에 비해서는 많이 조용한 내용이지만 3.1 독립선언문 보다는 과격하다.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전 제항의 요구가 실패될 시에는 (우리가 독립되지 못할 시에는) 일본에 대하야 영원히 혈전을 선함. 차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오족(조선 민족)이 기책을 임치 아니함.
이 사건은 당시 상해로 피난해 있던 이광수에 의해 조선에 전달되어 뭔가 시위가 벌어질 수 있는 분위기는 무르익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3.1운동이 고종의 장례식을 기해 벌어졌던 것이다. 정말 3천리 방방곡에서 3개월간 106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그리고 당연히 일제는 총칼을 사용하여 우리 강산을 핏물로 적셨다.
나라를 빼앗고 남의 왕과 왕비를 죽인 것도 모자라 나라를 되찾겠다는 무고한 시민들을 총칼로 죽였다. 그 놈들이 통계로 기록한 숫자는 554명. 이건 시위 현장에서 사망한 숫자고 그 이후 감옥에서 또 병원에서 혹은 집에서 아니면 그 아무도 알지 못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통계로 대략 7천명 정도에 이른다는 것이 기록이다.
10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으므로 당시 조선 인구를 2천만으로 계산할 때 어린이와 노인을 빼고 거의 전 조선인의 10%가 시위에 참가했던 것이다. 세계 역사에 이런 일이 있나? 단연코 없다. 우리에게만 있는 특징이다.

53 나쁜 놈들은 언제나 있다.
이 3.1 운동에 관련된 사람들 몇을 보자.
우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유관순 누나가 있다. 16살인 1919년 이화학당을 다니는 중에 3.1운동이 벌어졌고 참가하였다. 하지만 학교가 휴교되면서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5년을 선고 받고 항소해서 3년을 받았지만 결국 1920년 9월 28일 17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순국했다. 이 피어 보지도 못한 어린이가 왜 죽어야 했는가? 도대체 유관순이 무슨 죽을 일을 했는가?
그런데 짜증에 정말 왕짜증 나는 일이지만, 지난 2020년에 어떤 천하의 모지리가 유관순 누나가 가짜라고 유튜브에서 씨부려댔다. 뜬금없이 왜? 게다가 3.1운동이 강제동원이었다고 말도 했단다. 강제동원? 누가 어떻게? 그 당시 조선에서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서 만세를 부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조선인이 있었나? 한 두 군데 있을 수 있다치더라도 전국적인 것은 어떻게 가능한데?
정말 이런 얘기를 하는 인간들은 씹어 먹고 갈아 마셔도 시원찮다. 어쨌든 만일 조선인이 조선인을 만세 부르는 일에 강제동원을 할 수 없었다면 일본놈들이 강제로 동원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일본놈들은 왜 조선인을 만세 운동에 강제 동원했나? 아마도 강제 동원해서 만세운동 부르게 하고 그를 이유로 학살하려고?
정말 저런 헛소리를 떠들어 대는 인간들은 혓바닥을 뽑아서 줄넘기를 해도 시원찮다. 진짜 물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떠들 권리가 있지만 도대체 이런 말하는, 이병훈이나 또 그 전광훈이라는 목사놈이나 주옥순이라는 할머니 이런 것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도대체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물론 나름대로 자기의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저런 종류의 생각은 보통 사람들에게 생각이나 가능한 생각일까?
게다가 이런 헛소리를 씨부리는 근거는 이영훈이라는 놈이 쓴 책이란다.
이놈은 진짜 악질이다. 1951년 생이니까 2023년 현재 72살. 아직도 한참을 더 살테니 저 낮짝을 한참 더 보아야겠네. 정말 저 인간 사진이라도 한 번 보면 눈을 씼어야 할텐데. 마치 요즘 윤석열이가 나오면 채널 돌리는 것처럼.
어쨌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 박사를 받고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를 하다가 서울대학교로 옮겨서 교수를 하고 정년퇴직을 했다. 그리고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상, 경제사학회 연구이사를 역임했고 낙성대 경제연구소 이사장, 이승만학당 교장이란다.
다른 모든 것을 일단 차치하고라도 이승만 학당…. 우리 역사에서 두 번 언급할 필요가 없는 쓰레기들이지만 심심하면 다시 재평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인물이 둘 있다. 하나가 원균이고 또 다른 하나가 이승만이다.
원균은 정말 두 번 얘기할 가치가 없는 그냥 단순한 쓰레기다. 그가 제대로 한 일 자체가 없으며 전쟁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나서기나 했고 애초에 임진왜란이 벌어졌을 때 자기가 가진 배들을 다 침몰시키고 도망갔던 놈이다. 그러다 이순신 밑으로 가게 되니 뚜껑이 열려서 술이나 처마시고 짜증이나 내다가 바보 같은 선조에게 자기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빌고 빌어 이순신 뒤통수를 친다. 결국 이순신을 쫓아내고 자기가 이순신 자리에 앉은 후 또 술 처먹고 비실거리다가 결국 칠천량 해전을 통해 조선 수군을 뿌리채 몰락시킨 정말 천하의 역적이다.
이때 거북선 3척등 판옥선 140여척이 침몰되었고 조선 수군 2만명이 궤멸되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원균은 도망치다 죽었다고 한다. 이런 놈이 역적이 아니면 누가 역적이라는 것인가? 이 놈이 선조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선조라는 놈이 얼마나 바보같고, 자기 자식이며 신하들을 경쟁상대로 보고 있었는지 얼마나 피해의식에 쩔어 있었는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이승만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존경한다고 말하고 있고 이곳 미국 뉴욕에도 이승만 연구소 같은 것이 있다. 글쎄 뭐가 이승만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가?
이승만에 대해서는 긍정평가와 부정평가가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무엇이든 그의 부정평가 중 단 한 개만으로도 그의 모든 긍정평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 우리나라 탄핵 1호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니라 이승만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지명되고 탄핵되는 과정을 살펴 보자.

54 이승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지명되고 탄핵되는 과정은 한 마디로 답답하고 한심하다.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평화로운 때도 아니고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독립을 성취해야 하는 절박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인물이다.
우선 그는 양녕대군 16대손이란다. 양녕대군은 누구? 태종의 첫째 아들, 즉 세종의 큰 형이다. 양녕대군에 대한 평가는? 한 마디로 할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호색 및 냉혈 성향만 물려 받은 인물이란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그는 세자였으나 하도 양아치 짓을 해서 결국 폐세자되고 그 자리를 다행스럽게 세종이 받게 된다.
특히 양녕대군은 계유정난, 즉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이 일찍 죽고 14살의 어린 조카가 왕이 되었을 때 그를 내쫓고 결국 죽인 수양대군 세조가 벌인 가족을 향한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적극적으로 찬동까지 했단다. 자기 동생의 아들이 자기 동생의 손자를 죽인 천인공노할 행위에 박수를 치다니… 자기가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화풀이라도 되나? 어쨌든 이런 인물이 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천만다행이고 그 조상의 그 후손 답게 이승만이도 참 양아치 짓을 많이 했다.
우선 한성정부를 보자. 한성정부란 3.1운동 이후 1919년 4월 23일 24인의 13도 대표가 모여 수립한 임시정부다. 물론 이 한성정부뿐 아니라 상해와 블라디보스톡에도 임시정부가 각각 세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항일투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어 대표들이 합의를 통해 한성정부를 적통으로 인정하고 단 위치는 상해에 두는 것으로 결정해 상해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되었다. 즉 일사불란한 투쟁을 위해 많은 사람이 양보하여 만들어진 통합 임시정부다.
최초 한성정부가 세워질 때 추대된 집정관총재가 이승만이었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은 곧 President of Korea 라는 명함을 돌리며 대외활동을 하였지만, 안창호선생이 너는 President 가 아닌데 왜 President 라고 쓰느냐? 그렇게 하지 말라 라고 했더니 이승만은 이렇게 답했단다. <만일 우리끼리 떠들어서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소문이 세상에 전파되면 독립 운동에 큰 방해가 있을 것이며 그 책임이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언급하지 마시오. 1919.8.26> 이때부터 이 싹이 어떤 싹이었는지 알아보았어야 했는데 아마도 교육 실력 등을 강조하던 안창호 선생에게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이승만의 포장이 뭔가 시선을 가렸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후 9월 통합 상해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으로 지명된다.
이때 이승만은 어디에 있었나? 미국에 있었다. 국민들이 낸 돈 받아서 그 돈쓰며 여자들과 미국 일주하며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지명된지 1년이 넘도록 상해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으로 지명됐으면 얼른 상해에 가서 항일 투쟁에 앞장서야 하지 않나? 그 많은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만들어진 정부에서 뭐라도 지시를 하겠지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데 1년이나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러면서 이승만은 한 술 더 뜬다. 그가 미국에 위임통치를 건의했단다. 이게 말이 되나? 자기가 대통령으로 지명을 받았는데 다른 나라에다가 위임통치를 부탁한다?
신채호 선생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나?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를 팔아먹더니 이승만이는 없는 나라까지 팔아먹는구나.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인간이 대통령이라니…
이거 선조가 생각나는 인물이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중국으로 도망치던 놈. 그리고 우리 역사 최악의 왕 중 하나. 게다가 이승만은 또 다른 최악의 왕인 고종까지 생각나게 한다. 나라를 뺐긴 왕. 아니 고종보다 더 한 놈이네. 자기 나라를 통째 들어 다른 나라 아가리에 처넣으려고 했으니. 완전 이완용 수준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인물이 대통령으로 지명될 수 있었을까?
어쨌든 이승만의 이 위임통치 건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해 임시정부 내외에서 더욱 거세졌고 결국 1920년 12월에 상해에 왔다. 대통령으로 지명된지 1년 3개월 만이다. 그렇게 온 이승만에게 위임통치가 어떻게 된거냐?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더니 거부했다. 게다가 대통령이 상해에 없을 때 국무총리에게 결재권 위임을 요구했더니 그것도 거부했다. 왜? 이승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걸까? 하여간 이렇게 저렇게 거부하더니 겨우 5개월 머물고 1921년 5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위험한 곳에서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을 하기는 싫고 우아하게 앉아서 왕처럼 사인이나 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중간에 탄핵 당하고 하지만 안창호 선생이 도중에 또 말리고 하는 과정이 있다가 3년 후 1924년 9월에 당시 국무총리인 이동녕에게 대통령직 대리를 결의했다. 그러니까 1919년 이래 또 1921년 이승만이 미국으로 돌아간 이래 이 3년 동안 계속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이라는 놈은 미국에서 놀고먹고 여행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법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대리를 임명한 것이다. 이 정도되면 낮 부끄러워서라도 주둥이 닥치고 아무 소리 없이 찌그러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 같으면 창피해서 접시물에 코라도 박고 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이는 이 대통령 대리 임명에 반발한다. 게다가 미국에 있던 한인들이 모은 독립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다. 그리고 또 지가 대통령이라고 헌법소원 비슷한 것을 내며 떠벌리다가 결국 6개월 후인 1925년 3월 23일 탄핵되고 박은식 선생이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세상에 무책임한 놈. 대통령이라고 지 스스로 명함까지 파 가지고 다니면서 떠들어 대던 놈이 지가 대통령으로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가 없을 때 총리가 뭘 하는 것도 거부하고. 탄핵을 당하니 헌법 위반이라고 씨부리고 독립자금까지 막고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냐고? 이 놈은 그냥 지 조상처럼 창녀들이나 껴안고 살다가 죽었어야 하는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지명 받은 1919년부터 탄핵되는 1925년까지 3.1 운동을 이어받아 본격적인 대일 투쟁을 해야 하는 그 소중한 시기에 임시정부의 대통령이라는 놈이 아예 정부가 있는 곳에 있지도 않으면서 일은 전혀 안하고 남이 일하는 것도 방해하고 그러다가 짤리니까 짤렸다고 지랄하다가 결국 6년이라는 세월을, 그 너무나도 귀중한 세월을 통째 버리게 만들었다.
이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이승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

55 친일파 청산 실패는 이승만 작품이다.
군대에 왜 장교와 사병이 있는가? 장교들은 왜 직접 전장에서 싸우지 않고 후방에 있는가? 바로 작전과 지휘를 위해서다. 장교가 제대로 작전을 세우고 그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지휘를 해야 전체 부대가 생존은 물론이고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전쟁에서 장교가 죽으면 그 부대는 곧바로 허물어지는 것이다. 갈 길이 어딘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다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이게 바로 장교의 역할이다.
장교가 없이 군대가 유지될 수 없는 것처럼 나라든 단체든 어쨌든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에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그 지휘자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또한 올바른 방법 역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둘 중 하나라도 틀리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심각하게 타격을 입는 것이고 나라 같은 경우는 다른 나라에 그 주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능력있는 지휘자는 올바른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승만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 이름에 따르는 권리만 챙기면서 결국에는 우리 전체 국민들을 6년 동안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이게 얼마나 큰 죄인가? 진짜 이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이승만은 나머지 모든 긍정적 평가를 물리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승만이는 이것 외에도 너무 좋지 않는 짓을 많이 했다. 게다가 그 일들이 정말 우리 역사를 완전히 파멸로 이끄는 심각한 일들이었다.
임시정부 대통령이었다가 탄핵된 이승만은 일단 광복이 되면서 또 다시 기어 들어온다. 이때 그의 나이 70.
물론 이때는 임시정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또 그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이후에도 꾸준히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그가 뭘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했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된 뭔가를 했으리라 볼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그곳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박용만과 갈등을 일으켜 한인사회를 분열시켰고 나아가 박용만을 밀고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가 가는 곳은 언제나 분열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는 해방 후에 조선으로 돌아와 미군을 등에 엎고 정권을 손에 쥐고 왕처럼 살다가 결국 4.19로 몰락했다.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한 일도 참 나쁜 일들이 많다. 너무나 많아서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에 대한 평가를 보도록 하고 정말 문제였던 두 가지만 알아보자.
가장 큰 문제이고 정말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오늘 현재까지 우리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으며 우리가 우리로써 사는 것을 방해하는 소위 식민사관 혹은 식민 교육을 탈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아직도 어떻게 보면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특히 우리의 머리 속에 일본에 대한 어떤 경외감마저 가지게 만든 정말 나쁜 놈이 이승만이다.
우리가 해방이 되었을 때 사실 미군 하지 중장이 점령군 비슷하게 38선 이남으로 들어왔다. 이때 이미 여운형 선생 등은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일본의 행정권을 물려 받을 준비를 다 마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는 들어오자 마자 그 조직부터 해산시켰다.
실제로 잘 작동하던 건준이었지만 아무런 힘이 없던 우리가 미군의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었고 결국 건준은 해체되었다. 만일 이때 건준이 해체되지 않고 제대로 작동했다면 아마도 우리의 현재가 20년은 당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건준의 해체로 우리는 역사의 바닥으로 고꾸라질 수 밖에 없었고 정말 일본놈들의 지배를 벗어나자 마자 미국놈들의 지배를 받는 꼴이 되었다. 정말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 중 하나가 이 하지라는 놈이 미군정사령관으로 온 것이다. 아니 어쩌면 미국의 군정 통치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겠지…
어쨌든 이 놈은, 혹은 어떤 미군 장군이 왔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놈이다. 그냥 모든 것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구 해댄 놈이다. 그것도 괜찮다 뭘 좀 알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하지만 이 놈은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아무렇게나 말 그대로 꼴리는 대로 일을 했다.
하긴 이건 미국의 특징이다. 미국은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산다. 지금도 나 미국사람이야 딱 이거 하나로 남들 알기를 진짜 무슨 개밥의 도토리로 안다.
미군이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전후 처리를 잘 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그럼 가장 먼저 할 일은? 공부! 당연히 공부를 통해 어떻게 이 나라를 자립시킬 것인가를 연구하고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미국 사전에 그런 건 없다. 아마 지금도 없을 것이다. 그게 미국이니까.
전형적인 미국인을 꼽으라면 역시 트럼프. 아무 생각 없고 그저 돈이나 있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아무 말이나 하고. 이게 전형적인 미국이다. 이렇게 미국이 우리나라에 와서 생각 없이 일한 덕분에 우리 역사는 정말 불행하게 흘러갔다.
하지가 한 한심한 일들이 많지만 제일 나쁜 것은 친일파를 다시 불러낸 것이다. 즉 건준을 해체하고 대일투쟁기에 공무원으로 일하던 놈들을 그대로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이 하지라는 놈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뭔지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하여간 숨어서 죽을날만 기다리던 일제치하의 공무원놈들이 다시 그대로 나와 행정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골때리는 상황인가? 이 얼마나 정말 말이 안되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인가? 다 죽었어야 하는 놈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옛날에 하던 일 그대로.
경찰 군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돌아와 원래 자리를 차지했다. 말이 안되지. 어떻게 독립군 때려 잡던 경찰놈들이 다시 돌아와? 하지만 돌아왔다. 사실이다. 노덕술을 기억하라.
어쨌든 여기부터 일이 꼬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 제헌의회에서 민족정기를 똑바로 세우려면 일제에 의욕적으로 부역한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라는 목표로 만든 반민특위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이다. 반민특위가 결성되어 친일파 숙청을 시작했지만 그들이 일하는 주변은 사실 대부분 친일파다. 그런데 어떤 놈이 자기 목 치자고 덤벼드는데 거기에 동조할 것인가?
이런 상황이니 행정부에서는 반민특위 활동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예 경찰들을 보내 반민특위 사무실을 뒤집어 엎어 버렸고 결국 반민특위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3개월만에 해체되었다. 이 일을 누가 주도하고 명령했나? 바로 이승만이다.
이때 우리가 친일파를 처단했더라면 적어도 수 백에서 수 천명 정도는 처형함으로써 최소한의 정의라도 실현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많은 갈등 요소들이 사라졌고 보다 건전한 싸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단언컨대 친일파 청산 실패다. 그러면서 교육도 일본놈 것 그대로 군대도 행정도…. 하여간 모든 것을 그대로 일본놈들을 따라하며 정말 말로만 해방되었고 정신은 아직까지 많은 부분 일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도록 만든 가장 핵심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이 하나의 건만으로도 이승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

56 이승만은 용서 받을 수 없다.
이승만이 용서받을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람을 죽인다. 하긴 이 때만 해도 우리는 국민, 즉 국가를 구성하는 한 인자일 뿐이었으니까 좀 죽여도 되나???? 대통령이 뭔데 국민을 죽이나? 우리 대한국민은 누구? 대한의 시민, 즉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결국 우리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가 자기의 주인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건 그가 강조한 반공과 직결된다. 반일이어야 하는데 자기 주변에 맨 친일파만 있으니 반일이라고 말하기는 뭣하고 게다가 미국이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니 이 틈에 미국에게 잘 보이기도 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시각도 뒤집고 하려면 역시 반공이 최고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반공으로 돌아선다.
그의 가장 큰 치적은 서북청년단이다. 서북청년단은 쉽게 말해 주로 황해도 쪽에서 살던 지주쪽이나 혹은 조금 살던 사람들로 공산당이 장악하며 토지개혁을 통해 재산을 뺏기게 되자 남하해 반공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사건에 개입하여 폭동을 주도했고 특히 이들이 강력하게 개입한 사건은 제주 4.3사건이다.
1947년 3.1절 행사가 끝나고 시위 도중 경찰이 탄 말에 어린이가 하나 죽는다. 경찰은 이를 무시했고 결국 화가 난 시민들이 경찰서에 항의하러 갔고 이 자리에서 경찰이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6명이 죽었다. 이후 각종 시위와 충돌이 발생했고 군대를 파견하려 했으나 군에서 거부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여순사건이 발생한다.
어쨌든 이승만은 제주에 서북청년단을 투입했다. 그로 인해 1954년까지 제주도 일대가 완전히 쑥밭이 된 사건이다. 별 문제 아닌 굶주린 사람들의 시위였고 미군정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약간의 공산주의자들의 참여도 있었지만 그건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좌익 쪽에 관심을 갖는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걸 순전히 빨갱이로 몰아 제주도를 완전히 황폐화시켰다. 이승만은 서북청년단을 이 사건에 투입하면서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공식선상에서 부추기기까지 했다.
4.3사건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3만명 정도고,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4만동이 소각되었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수십만이 이 사건의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제주도의 모든 도민들이 이 사건의 피해자일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제주도민에게 이 사건에 대해 국가의 잘못으로 매듭지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후로 벌어지는 여순사건. 여순 사건의 토벌 대상은 이승만이 흥분하던 공산당 빨치산이 아니다. 바로 제주도로 가서 양민 학살을 명령받았지만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갔던 여수 순천 주변의 군대와 주민들이다.
게다가 악명 높은 보안법을 제정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감방에 보내거나 ….하다 못해 6.25 때는 주변의 각료들조차 알지도 못하게 혼자 몰래 대전으로 도망가서 서울은 안전하다고 라디오 방송까지 했다.
이건 선조를 뺨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많은 피난민들이 다리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남진을 막는다며 한강대교까지 폭파시켰다. 이로 인해 죽은 사람도 죽은 사람이고 피난 떠났다가 다리를 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쩔 것이냐? 마치 선조라는 놈이 임진강을 건너 도망가고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도록, 심지어 백성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 배들을 파괴시킨 것과 뭐가 다른가? 악랄하고 무식하고 야비한 대통령이었다.
정말 천하의 용서받을 수 없는 놈 중 하나가 이승만이다. 물론 이승만 뿐이 아니다. 이후 5.16을 거쳐 16년간 대통령 노릇을 한 박정희, 그리고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된 천하의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그나마 잘 나가는 우리나라를 자꾸 바닥으로 끌고 가려던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현재의 윤석열이까지. 정말 빨간 넥타이 매는 놈들은 정말 아직도 이승만 시절에 하던 짓을 그대로 하면서 살고 있다.
한 가지만 추가로 말하면 정읍선언을 뺄 수 없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최대 5년의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시켜 주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충분한 세력이 없었고 특히 미국이 공산주의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으므로 이를 등에 엎고 다니며 자신을 알리다가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본격적으로 분단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우리의 분단을 시작한 인물은 이승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결국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가 바로 이승만으로부터 출발한다.
반민특위를 해체시켜 친일파 놈들을 처단하는 것을 못하게 막음으로써 결국 오늘날까지 우리 역사는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고 그뿐 아니라 역사를 소위 친일파 강단사학자들이 잡으면서 왜곡을 넘어 우리가 오늘날 접하고 있는 우리는 찌질한 민족이야 즉 조선인 찌질이 만들기를 오늘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게다가 정읍선언부터 출발된 분단 논의는 결국 이승만의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 실질적인 분단을 가져왔다.
하지 중장마저 처음에 이승만에게 잘해 주다가 하도 질려서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렸단다. <이승만은 스스로를 위대한 조선의 자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단독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으로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독재 정권> 이라고 평가했단다. 그리고 불행히도 하지의 이런 판단은 맞았다. 그 아무 생각 없고 능력 없던 하지가 한 평가가 맞았다… 씁쓸하다….
결국 현재 우리의 문제인 분단과 역사 왜곡 문제들이 모두 이승만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적지 않는 사람들이 이 이승만 재평가에 나서고 있다. 재평가의 가치가 있을까?

57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본 문화는 악의 온상이다
우리는 지금 이영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놈은 우리가 다 들어본 그 정말 우리 민족에게 칼을 꽃는 책을 쓴 그 놈이다.
당연히 그런 책도 쓸 수 있고 저런 책도 쓸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로 또는 글로 표현할 수 있는게 소위 언론 출판의 자유라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 놈은 우리가 찌질하다라는 내용의 책을 썼고 나는 그 놈이 멍청이라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그 놈도 나도 자유니까.
하지만 저 놈은 왜 자기 얼굴에 침뱉고 자기 주변 사람들 욕하는 내용의 책을 쓸까? 더구나 그 내용도 우리 내부에서 우리끼리 얘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책의 내용은 다분히 외부와 관계가 있는데, 그 외부란 5000년 우리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 나라를 뺐었던 놈들이다. 35년간 치욕의 역사를 겪으며 온갖 핍박과 멸시를 겪은 우리를 비하하면서 강제로 우리를 말살시키려 했던 놈들을 미화하고 숭상한다? 왜? 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도 학자라면 뭔가 글을 쓸 때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게 학자다. 그런데 이 일본과 관계된 모든 글들은 그 글을 썼거나 또 현재도 쓰고 있는 모든 놈들을 포함해 모두 근거가 없다. 우선 처음으로 조선사편수회라는 곳에서 쓴 조선사가 근거가 없고 그러다 보니 그 이후의 모든 글들이 다 탄핵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영훈이라는 놈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정신대로 끌려간 우리의 할머니들이 일부러 돈 벌러 간 매춘부였다는 것이다. 진짜 열불이 터진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또 살기 어려워서 일본놈들에게 돈 받고 딸을 판 아버지나 어머니도 있을 수 있다. 그 당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런 부모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일부였고 일본놈들이 공장으로 보낸다거나 학교 보낸다고 속여서 혹은 납치로 끌고 갔다는 것이 당시 일본군이었던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서도 밝혀진 내용이다. 본인들이 한 얘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이영훈이 말한대로 정신대는 매춘부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너무 무책임한 말이고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영훈이라는 놈은 아마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도저히 그 놈의 의도를 모르겠다. 학자라는 놈이. 학자가 글을 쓰면서 그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밝혀도 엉뚱한 출처를 밝히고 또는 자기가 찾을 수 있었던 것들이나 대충 찾아서 자기 의견이 옳다고 씨부리고. 그 하바드에서 정신대가 창녀라고 떠들었던 그 미국놈 램지어라는 그 시베리아 벌판에서 십상시들과 개나리나 깔, 그 놈과 똑같은 놈이다. 아니 훨씬 더 나쁜놈이다. 아니 학자로서 양심이 없는 놈이고 이런 놈이 우리나라 수재들만 다니는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는 것이 참 부끄럽다.
게다가 우리가 또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를 우리가 왜 아직도 계속해서 붙들고 있고 또 그놈들 문화가 얼마나 우리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이해한 것이다.
바로 저런 교수라는 놈들이 일본이 우리에게 심어준 그대로를 떠받들며 애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그게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을리 없다. 당연히 초중고등학교에도 수많은 선생님들이 바로 저놈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참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다. 그때는 모든게 사랑의 회초리로 해결되는 문화였고 선생님이 애들을 때리는 것은 그냥 상식이었다. 학교보다 한 술 더 뜨는 곳은 군대. 말할 필요도 없지. 내가 군에 갔을 때 막 군대 폭력 없앤다고 하던 때다. 그래서 한달에 한 번씩 옷들 벗겨 놓고 구타 흔적이 있나 를 확인하곤 했다.
모든 종류의 학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 때리는 것은 모두 용납되었다. 나도 그런 폭력 선배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수가 된 이후에도 한 동안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폭력을 허용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하는게 올바른 일이라고 여기던 때니까. 다행스럽게 이런 폭력에 바탕을 둔 많은 문화들이 지금은 상당히 사라져 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도 지난 날에 대해 많이 후회한다.
이런 문화,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 한 마디로 나쁜 문화였다. 이런 문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에게 옛날부터 이런 문화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서로 할 말은 하는 문화였다. 예를 들어 고려와 조선에도 감히 왕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대간들이 있었다. 즉 왕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해도 처벌받지 않는 치외법권의 관리들이 있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우리는 수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말할 수 없다.
분명 정부 조직에도 영의정부터 시작해서 품계와 순서가 있었지만 회의를 할 때는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 정부였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한 순간 사라진다. 그리고 무조건 아무 이유 없이 상하관계 속에서 위의 눈치만 보는 문화가 생겼다.
특히 일본의 지배 이후 아주 나쁜 문화가 생겼다. 역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신고하지 않는 문화.
우리에게 신고란 특히 내부고발과 같은 신고란 마치 뭔가 동료를 배반하는 것 같고 또 매우 나쁜 일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고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누구든 해야 하는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문화 입장에서 보면 신고란,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신고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테니까, 결국 자기 자리를 넘어서는 일이 된다. 그래서 신고란 나쁜 일이 되는 것이다. 이게 일본 문화다.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이식한 문화다. 즉 각자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 가만히 주둥이 닥치고 있으라는 문화다. 이게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일본문화. 자기 자리를 알고 지키기.
그래서 일본인들은 흔히 얘기하는 주제 넘는 짓을 잘 하지 않는다. 자기 주제를 알고 그 내에 머물기 때문이다. 설사 윗사람이 잘못해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그건 내 주제를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문화가 아니다. 우리는 소위 우리를 바탕에 두는 문화다. 즉 공동체 문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사람들이 언제나 나보다 우리를 먼저 찾는다. 그런데 이런 우리 문화가 일본의 자기 라는 문화에 의해 억압되고 변질되었다. 그리고 그 문화에 35년간, 즉 완전히 1세대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그 지배는 나는 멍청이야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35년간 나는 멍청이야를 외치면 멍청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나는 멍청이야 라고 스스로 외치는 것이다.

58 극복하자 자기비하
이쯤해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왜 나는 이 글을 쓰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찌질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것은 별로 시원찮고 우리는 절대 1등이 될 수 없고 우리는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조선인 찌질이론에서 벗어나자 가 바로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세계와 경쟁하자 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출발점은 바로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로 저 이병훈이라는 놈처럼.
저놈이 어떤 책에서 유관순이 가짜다라고 썼단다. 그럼 그 놈이 그걸 쓸 때 무슨 근거가 있었나? 없다. 단언코 저 인간은 그런 근거를 찾아서 합리적인 글을 쓸 놈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써 낸 책의 내용이 나중에 다른 놈들에 의해 인용되고 또 인용되어 하나의 정설이 되는 것이다. 이게 현재까지 한국 역사가 진행되어 온 과정이고 방법이다.
한 놈이 이건 이렇다라고 그냥 책에 써 놓으면 다른 놈이 그걸 따르고 또 다시 따르면서 이건 확실하게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현재 우리 역사다.
그런데 사실 이 조선인 찌질이론은 정말 큰 문제다. 유튜브에 잠시 검색을 해보면 우리 스스로를 욕하고 비하하는 수많은 영상들이 있다. 정말 그런걸 본다는 자체가 역겨워 하나도 보지는 않았는데 대략 제목을 읽어 보면 그런 것들이다.
뭐 유관순이 가짜니 또 정신대가 매춘부니 이런 내용들. 일단 그들이 가짜든 매춘부든 어쨌든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고 우리의 가족이다. 그들이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이고 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한 것 아닌가? 그들이 불행한데 내가 여기서 신나게 웃는 것도 참 머쓱한 일이다. 그럼 그들이 설사 죽었을지라도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면 나도 좀 더 마음이 가벼워질 것 아닌가? 마치 내 조상이 꼭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던걸 못했는데 내가 그것을 성취한 것처럼.
물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소위 표현의 자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할 권리가 당연히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정말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왜 저런 말도 안되는 얘기들을 공공연히 떠들까? 왜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을까? 그렇게 했을 때 자기에게 생기는 것은 무엇인가?
설마 그 따위 짓거리를 하면서 나는 올바른 역사를 쓰느니 가르치느니 하면서 주둥이에 역사라는 단어를 올리려나? 지구상 어떤 국가가 자기 조상들이 머저리라고 쓰는 나라가 있는가? 설사 진짜 머저리일지라도 그렇지 않다고 순화해서 써야 하는 것이 역사다. 하물며 그들이 그렇게 거품을 물고 부정하는 그 내용들은 아직 역사가 아니다. 그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 따위로 말할 수 있나? 정말 천번 만번을 뒤돌아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 이병훈이나 이병도나 이놈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한 번 이런 생각을 해보자.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기 비하를 할까? 아마 다른 나라에도 자기 나라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물론 내 나라를 가끔씩 자주 욕한다. 하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처절하게 자기 비하를 하는 사람들은 명백하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일본놈들의 교육이 아직도 작동하는 일부 십장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내 나라를 욕하는 것은 현재 상황이 올바르지 않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보다 뭔가 나은 미래를 생각하고 해야 하는 행동 아닌가? 내가 지금 이 긴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거다. 우리가 일본이라는 철천지 원수가 만들어 준 그 찌질이 조선인 프레임에 갇혀서 바보짓을 하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그 프레임으로부터 탈출해서 객관적으로 세계와 나, 즉 우리를 보자. 이게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그냥 비난하고 비하하기 위해서 욕하는 것은 정말 멍청하고 역겨운 짓이다. 그런데 그런 역겨운 인간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인간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에게는 훨씬 더 많다 왜? 그게 바로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심어 놓은 교육이니까. 정말 일본놈들의 조선인에 대한 교육은 해방 80년이 다 돼가는 아직도 너무 너무 잘 작동하고 있다. 교육!! 정말 피가 끓는다……

59 3.1운동은 아직도 살아 있는 우리 정신이다
다시 3.1운동으로 돌아가서 3.1운동에 연관된 애국자들을 몇 살펴보자.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은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최린 한용운 백용성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홍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등이다.
물론 이들의 거사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며 이 독립선언문에 사인을 했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3.1운동 방법에 대해서 나는 완전히 만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독립선언문에 사인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이며 정말 우리가 독립되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것이다.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내가 거기에 사인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자신이 없다. 설사 그들의 행동에 아무리 큰 잘못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나로서는 감히 발끝도 따를 수 없는 위대한 인물들이다. 정말 이들은 모두 위대한 너무나 훌륭한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다. 일본놈들의 교육이 이다지도 정교하고 아직까지도 너무나 우리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에.
내가 아마도 대학 다닐 때 보았던 뮤지컬이라 생각한다. 한용운에 대한 뮤지컬이었는데, 그때 대사나 혹은 설명에서 독립운동가 33인 중 만해 한용운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변절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난 그 내용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럼 실제로 그런가?
이들 중 최린 박희도 정춘수 세 명은 결국 나중에 변절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옥에 투옥돼 대체로 징역 2년을 살았고 손병희는 병보석으로 풀려 났지만 3년 후 사망했고 또 양한묵은 옥사했다.
그 대본을 썼던 사람이 받은 교육은 무엇이며 무슨 근거로 모두가 변절했다고 대본에 썼을까? 약간의 검색을 해보니 공연은 1996년 이었던 것 같고 주인공은 김갑수가 맡았었다. 내가 누구와 그 공연을 함께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공연을 통털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것은 바로 3.1운동 33인 중 만해를 제외한 모두는 변절했다는 것. 이 하나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마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고.
어쨌든 김상열이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재미는, 그러니까 뮤지컬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모두 변절했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만해를 더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든가 아니면 그가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로 대본을 썼든가…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불손한 생각은 무엇인가?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지 않을 수 있냐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런 서류에 사인을 했다는 자체로서 그들은 이미 영웅이다. 절대 그들의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도 험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래서 우리 헌법에서도 이들의 이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다.
참고로 이들은 대부분 종교를 통해 연합했는데 천도교와 불교 그리고 기독교이다. 여기에 천주교는 한 사람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유는 3.1운동이 있기 전 흥선대원군에 의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조선이라는 나라가 개판이었던 것도 맞고 3.1운동이 진행되었던 것이 만족스러운 방향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평가를 해도 우리가 하고 욕을 해도 우리가 하는 것이고, 그런 평가는 언제나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기 위한 목적이 내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오답노트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듯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알고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지만,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기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목적이어야 한다.
이런 민족대표 외에도 신한청년당에서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고, 김순애 여운형 김향화 정칠성 신익희 신태윤 윤치영 이광수 조병옥 박헌영 임영신 허정숙 등의 인물이 기록에 남아있다.
그리고 결국 3.1운동은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도록 하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항일 활동은 점점 더 치열해져 갔다. 결국 일본 정부는 조선 통치의 방향을 바꾼다. 소위 문화통치라는 것을 시행하게 되었다.
잠깐 여기에서 대일투쟁기 중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대표적인 기업을 4(5)개 든다. 유한양행, LG/GS, 교보, 동화약품.

60 우리는 저항의 민족이다
문화통치. 이는 무슨 뜻인가? 일단 느낌은 매우 좋아 보인다. 폭력통치 강압통치 이런 표현보다는 훨씬 뭔가 우아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폭력 통치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비열한 방법이다. 앞에서는 마치 우리를 대우해주고 모든 것을 다 우리를 위해 베푸는 것 같지만 실상은 뒤에서 모두 빼앗아 가는 정말 야비한 통치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직접 죽이지 않고 서로 죽이도록 만들겠다 뭐 이런 통치 방식이고, 내 손에 피 묻히지 않고 너희들끼리 싸우다 죽어라 이것이고, 그리고 서로 멸시하고 싸우게 만들어 손 안 대고 코 푸는 정책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이 통치하던 것을 민간인이 통치하도록 만들려고 했지만 군인들이 거부해서 총독이라는 놈은 계속해서 군인이었다. 하지만 군인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일 것인가?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일텐데. 군인이나 경찰이나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속에서 과연 차이가 있었을까? 제국주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남들을 할 수 있는 끝까지 빨아들여 내가 잘 먹고 잘 살자. 이게 바로 제국주의이다. 이런 제국주의에서 군인이든 아니든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대일투쟁기 초반 일본의 기세는 무서웠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강압적이었지만 3.1운동 이후 살짝 군인의 색깔을 없애려고 했다. 아마도 3.1운동으로 일본이 놀라기는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에 대한 열등감 내지는 우리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매우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난히 강한 것처럼 보이려 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개가 짖는 것은 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무섭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꾸 짖어대는 것이다. 이 무서워하는 강아지 이게 바로 일본이었다. 누구를 대상으로? 바로 우리를 대상으로.
하지만 우리는 일본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일본은 복종의 민족인 반면 우리는 저항의 민족이다. 일본에서는 예를 들어 대장이 하나 항복하면 그 아래 모든 사람들은 무조건 다 항복한다. 그걸로 끝이다.
많은 영화나 기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의 항거는 대단했다. 정말 죽기 기를 쓰고 저항했다. 그 결과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28만명이 희생되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숫자다. 같은 기간 유럽 전선 전체에서 죽은 미군이 20만명이다. 시가전을 비롯 수많은 전투를 벌였던 유럽 본토보다 태평양에서의 피해가 1/3이나 더 크다. 정말 태평양에서의 28만이라는 숫자는 엄청나게 큰 숫자이다.
어쨌든 미국은 이런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억지로 전쟁을 해 나갔고 더 이상 전쟁을 하면 희생이 더 클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희생을 줄이고 한 방에 끝낼 목적으로 원자탄을 사용한 것 아닌가? 그리고 실제로 일본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고 결국 항복했다.
미국은 이런 강력한 저항을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다. 특히 페리제독이 처음 일본의 문을 열 때도 이런 저항은 없었다. 오히려 환영을 받았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을 통해 극렬한 저항을 경험하면서 미군이 일본 본토에 들어갈 때 엄청나게 주의를 기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 저항이 있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며 일본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완전히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미군이 진입할 때 꽃다발 들고 나와 환영했고 일본인 모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완벽하게 복종을 했다는 것이다.
왜? 졌으니까. 천황이 방송해서 우리 졌다고 손들었으니까. 그걸로 끝이고. 나머지는 그냥 아무 이유없이 졌다니까 졌고 그래서 조용히 같이 손드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역사는 정권의 역사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이 내 나라이고 내가 사는 곳을 빼앗으려는 놈들은 내가 일어서 퇴치한다. 즉 항거의 민족이다. 대가리가 어떻게 되건 말건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지킨다.
그래서 삼국시대가 끝났어도 후삼국 시대가 있었고 그 이후에도 끝없이 모든 외세의 침입에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섰던 민중들이 있었다. 그때 그들은 총칼을 들었었고 오늘날에는 촛불을 들고 있다.
임진왜란 때도 왕이라는 놈은 백성들 다 버리고 헐레벌떡 도망치기에 바빴지만 수많은 의병이 일어나 결국 일본은 도망갔다. 당연히 그 이전 이후에도 매 사건마다 의병이 일어났고 또 그렇게 일어났으면 온통 세상이 전쟁 투성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불의가 있으면 반발하고 항거하고 그 이후에 스스로 해산하고. 또 문제 있으면 일어서고 또 스스로 해산한다. 이게 우리 역사다.
프레데릭 맥켄지라는 기자는 1907년 경기도 양평군에서 만난 의병들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다. 그때 어떤 의병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어차피 싸우다가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크고 어렵고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그냥 내가 저항할 수 있으면 끝까지 즉 죽음까지 저항하고 끝나면 되는 것이다. 이게 우리다.
이런 저항의 민족들이, 게다가 덩치도 자기들보다 큰데, 그냥 일본놈들이 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겠나? 그건 조선인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 일본은 키 크고 덩치 좋은 조선인에게 꿇리지 않기 위해 강압적으로 나갔지만 결국 그런 행위는 우리의 거국적인 저항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은 통치방식을 바꾸게 된다.
흔히 말하는 문화통치.

61 문화통치를 통해 일본은 우리를 서로 이간질시키고, 특히 자리를 지키라는 더러운 문화를 이식시켰다
일본의 통치방향은 소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뀐다.
우선 치안을 유지하던 것이 군대, 즉 헌병이었는데 그것이 경찰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더 나쁜 일이다. 경찰 숫자가 엄청 증원되었고 사복경찰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조선인들을 요소 요소에 기용해 우리끼리 싸우고 서로 죽이도록 만들었다. 노덕술 같은 놈들이 아마도 이런 때에 경찰이 되지 않았을까? 흔히 얘기하는 수많은 순사들이 생기면서 소위 경찰국가로 변해버렸다.
참고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경찰 출신은 총 880명이 수록되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는 총 5,207명의 친일파 및 매국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모두 철저하게 응징되었어야 하고 진짜 추방이라도 시켰어야 하는 인물들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이완용이 대표적인 이유는 이놈은 을사늑약 정미7조약 그리고 한일합병 이 세 가지에 모두 사인한 유일한 놈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 등이 창간되었다. 신문이란 여론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올바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도록 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검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열이 있는 신문은 오히려 더 나빠진다. 왜냐하면 잘못된 여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들 기준에 맞추어 자기들 정책에 부합되면 기사로 나갈 수 있고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다면 기사는 삭제 당하거나 아예 나갈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일을 전두환 때 겪었다. 그때 신문들은 중간 중간 구멍이 난 부분도 있었다. 그런 부분들은 검열을 통해 삭제된 부분이었다.
이때 대표적인 민족 신문이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쓰레기 신문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다. 이때만 해도 이 신문들은 나름 의미있는 활동도 했고 특히 동아일보는 아주 유명한 애국적인 일을 하나 했고 그 결과 정간되었다.
그 사건은 바로 손기정 사건.
우선 손기정은 그 스스로 대단한 애국자였다.
손기정은 일단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당시 동메달은 남승용이었다. 1등과 3등이 조선인이었다.) 그 스스로 가슴의 일장기가 부끄러워 그걸 자신이 들고 있던 꽃으로 가렸었다. (이때 남승용 선수는 손기정이 그렇게 부러웠단다. 그가 금메달 딴 것이 부러운게 아니라 그가 꽃을 받아서 그걸로 자신의 가슴을 가릴 수 있었던 것이 너무 부러웠던다. 고개 숙인 두 사람의 사진을 보자.) 그리고 저녁에 일본놈들이 금메달 수상 축하연을 벌이는데 그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대신 조선인들이 모인 두부공장인가에서 조선인들끼리 자축했단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두 번 다시 뛰지 못하게 되었다. 당연히 일본이 그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이길용이라는 기자는 이 손기정 금메달을 보도하면서 사진에 있는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 일로 정간되었고. 즉 신문들이 있었지만 뭘 제대로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이렇게 의지 넘치던 신문이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이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이 가장 대표적으로 사라져야 할 쓰레기가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고향 원주의 국회의원 박영록을 기억한다. 그는 베를린에 갔을 때 밤에 몰래 올림픽 기념탑에 새겨진 손기정 선수의 국적 표시 Japan 을 Korea로 바꾸었던 인물이다.
다음으로 일본은 조선의 지방자치를 확대해 갔다. 그러면서 당연히 조선인에게 참정권과 피선거권, 즉 투표를 할 수 있고 투표 대상으로 입후보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참정권이란 내가 국가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정말 훌륭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게 과연 그럴까?
최근 홍콩 투표를 보자. 과거 홍콩의 투표율은 보통 70%대였었지만 이번 투표율은 20%대로 떨어졌다. 왜? 어차피 모든 후보가 다 공산당에 의해 이미 선택되어졌기 때문에 투표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를 뽑든 다 똑같은 일이고 그들은 그저 남들 대신 손을 들어주는 거수기일 뿐이다.
투표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다. 이건 시위로 보는 것이 맞다. 홍콩인들은 지금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투표는 최소한의 권리다. 그것도 당연히 무기명 투표이어야 한다. 투표가 없다는 것은 최소한의 자기 표현이 안된다는 뜻이다.
일본놈들이 조선인에게 부여한 참정권은 당연히 이런 투표가 아니다. 중국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은 무늬만 투표인 투표였다.
게다가 이 뭔가 한 자리 차지하는 놈들을 앞세워 친일파를 양산하는 정말 일석이조를 넘어 일석다조의 아주 좋은 정책이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정말 최악의 정책이었고. 그리고 당선된 놈들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들러리 역할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선출된 놈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계급을 만들었다. 사실은 이 선출된 놈들은 내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의 머슴이다. 그래서 국민의 말을 잘 듣고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는 대신 이들을 대우해 줌으로써 상하질서를 도입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질서라는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라는 놈들, 최근에는 무슨 시의원, 도의원 등등 하여간 이 의원이라는 놈들 뿐 아니라 대일투쟁기의 공무원들이 일본을 등에 엎고 거들먹 거리면서 같은 조선인 못살게 굴던 습관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자리를 강조하며 온갖 쓰레기 짓거리를 하고 있고 그 덕분에 우리는 갈라졌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이것이 고도로 계산이 되었든 아니면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든 어쨌든 일본놈들의 술책이지 않겠는가?

62 일본놈들이 시행한 투표는 우리를 분열시키고 싸우게 만들었다
물론 투표가 만사는 아니다. 오히려 투표가 더 나쁠 수도 있다.
지금 수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뽑고 있다. 중국처럼 대놓고 투표를 하지 않는 나라도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투표를 한다. 하지만 그런 투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나라들이 매일 그 자리에서 뱅뱅돌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그랬다. 이승만 때 무슨 이런저런 부정선거를 했고 박정희 때도 많은 부정 투표와 돈이 오갔고 전두환이 때는 아예 투표가 사라지기도 했었고 어쨌든 투표란 참 큰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투표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도 틀림없다. 왜냐하면 투표를 통해 당선된 사람들이 정권에 기생하며 오히려 부패를 더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이 하는 일은 그냥 단순한 거수기일 뿐이고. 그러니 투표를 통해 누가 되든 다 똑같이 이미 정해진 일이 진행될 것이고 오히려 마치 민의를 대변하는 듯한 행동을 통해 더 나빠질 수 있는 것이 투표다.
그리고 그게 일본놈들이 우리로부터 기대했던 것이다. 더 나빠지는 것. 결국 일본은 우리에게 참정권을 주면서 투표를 통해 편을 가르고 서로 다른 클래스를 만들어 자기 자리를 지키라고 강요하는 그런 일본의 개똥문화가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일본의 두 가지 최악의 문화는 1 냄새가 나면 덮어라 2 네 자리를 지켜라 이다. 이중 지금은 2번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다.
일본놈들이 우리에게 시행한 투표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오로지 새로운 계층, 특히 친일파를 중심으로 일종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양성하기 위한 책략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직접 통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에 그런 친일파 오피니언 리더들이 끼어들면 훨씬 통제도 쉽고 또 설득도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친일파를 대우해주면 그들은 심적 물적으로 일본에 모든 것을 다 가져다 바칠 것이고 그리고 자기들이 보기에 힘없이 보이는 민중들을 들이 짜댈 것이다. 그러면 편도 갈라지고 대립도 생기면서 사회가 분열되고 특히 민중이 일본에 항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양성되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항거할 것이므로 일본은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아주 높은 수를 추구한 것이다. 선거란 정말 양날의 칼임에 틀림없다.
뿐만아니라 일본은 쌀 증산 정책을 실시했다. 그리고 철도까지 놓았다. 다 좋은 정책들이다. 그리고 아직도 몇몇의 한국인은 이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기차를 칭송한다.
일본놈들은 왜 우리나라의 쌀을 증산시켰고 또 철도까지 놓아주었는가? 왜 이런 정책을 실시했는가?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다. 전쟁이 지속되고 특히 여기저기 온통 여러 나라들을 침범하면서 군수품과 양식을 운반해야 했고 그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온갖 착취를 해갔고 보다 착취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철도까지 놓은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일본이 우리를 발전시키려는 목적이 당연히 아니고, 지들 전쟁 수행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아직도 이런 일을 가지고 일본에 고마워하는 모지리들이 있다. 도대체 그들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나?
그리고 관세를 철폐했고 은행도 설립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곡물부터 하다못해 집의 밥그릇에 세수대야까지 모두 뺐아갔다. 나아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 물론 손에 들 수 있지만 그보다는 아예 손에 잡히지도 않도록 은행을 만들고 토지를 재정비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런 정책을 통해 얻은 이익은 전혀 없었고 반대로 계속해서 우리의 자본이 빨려 나가게 되었다. 결국 일본이 수행한 문화통치는 우리를 말려 죽이려는 정책이었을 뿐이다. 정말 이런 통치를 옹호하는 놈들은 그 혓바닥을 묶든가 뽑든가 해야 한다.
이런 문화통치를 통해 우리는 점점 더 피폐해져갔고 특히 일본 내부에서 군부가 점점 더 강력해짐에 따라 아예 일본은 1930년대 이후로 조선인 말살 정책으로 선회하게 된다. 그래서 조선의 정체성 자체를 없애기 위해 창씨개명 등을 통해 완전히 조선 민족 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이런 정책이 30년, 그러니까 한 세대만 더 진행되었더라면 조선인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63 우리 역사는 아직도 100년전 일본놈들이 만들어 준 역사에 근거한다.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면서 가장 집중했던 것은 교육일 것이다. 정말 근대식 의미에서의 공교육의 목적을 제대로 완수한 것이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교육이다.
최초의 공교육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단다. 목적은? 당연히 국민들에게 국가의 정책을 제대로 교육해 국가가 원하는 국민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프로파간다가 목적이었다. 아마도 이 공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히틀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교육을 통해 전 독일인들을 세뇌시킬 수 있었다. 단순히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유태인이라는 특정 계급을 지목해 인종청소까지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일본도 이에 젼혀 뒤지지 않지만…
물론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는 이 프로파간다가 교육의 최우선 목적이다. 특히 중국과 같은 독재국가나 일본과 같이 감출게 많은 나라들에서는 교육이란 그 무엇보다도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적절한, 즉 비판의식 없이 그저 요구하는 대로 말없이 따르는 국민양성이 목적일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에서 이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것은 가리고 유리한 방향으로 모든 것을 다 왜곡시키고 나아가 통제한다. 당장 중국과 일본을 보면 모든 것이 이 왜곡 통제에 딱 들어맞는다.
그나마 소위 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는 의무 교육 혹은 공교육을 통해 최소한의 지식을 갖춘 시민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왜곡과 통제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리고 이 교육에서 빼놓지 않는 과목이 있다. 물론 국영수도 중요하지만 역시 역사에 대한 교육이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역사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통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신라 시대 영토상실 혹은 남북국시대로 표현하면 우리는 아직 통일을 하지 못한 국가이고 통일을 통해 함께 살아야 하는 국가가 된다. 하지만 삼국통일이 되면서 우리는 통일한 국가가 되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그냥 노래에만 나오는 통일이 되었고 그만큼 통일에 대한 욕구가 적을 수 밖에 없다.
결국 한 국가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이렇게 했으니까 앞으로는 그것을 본받거나 혹은 그것을 수정해서 다른 방향으로 나가자는 외침이다. 역사란 과거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준비이다. 이것이 세계 모든 국가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목적을 반대로 실행하는 국가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 역사 교육은 그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그 원인은 애초에 상식적이지 않게 기술되었거나 혹은 만들어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올바른 방향 혹은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으로 수정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그것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상식적이지 않은 역사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일본이다. 물론 그 이후에 그것을 수정하지 못한 것은 부끄럽게도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이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이승만은 절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서는 안된다. 결국 이승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못가게 막았으니까.
일본은 프로파간다 교육을 조선인에게 적용했다. 소위 내선일체를 통해 조선이란 원래 일본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다시 옛날처럼 일본에 복종하고 잘 따르는 것이 훌륭한 국민이 된다는 논리로 교육을 강화했다.
그러니까 앞에서 우리가 말했던 소위 식민사학 혹은 반도사학이라는 것들이 바로 조선인을 찌질한 인간으로 교육시키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관점이 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관점이 제대로 교육되었고 그 후유증이 아직도 우리에게 심각하게 남아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정말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피가 끓는 일이고 정말 이렇게 만든 우리의 몇몇 선배 혹은 친일파들에 대한 원망과 그들을 처단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울분 또 처단을 방해했던 인물에 대한 한탄과 저주를 퍼붇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 의해 시작된 우리의 근대 교육은 그 출발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방향이 아직도 많이 바뀌지 않고 100년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사실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는 조선인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단다. 조선인에게 일본혼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선인의 민족적 반항심이 타오르게 된다면 이는 큰일이므로 영구적이며 근본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조선인의 심리연구이며 역사연구이다.
일단 학술적이니 과학적이니 이런 걸 다 떠나서 상식적으로 문화 문명은 어디에서 어디로 흘렀는가? 그냥 상식적으로 모든 일본 것은 다 조선으로부터 건너갔다. 하다못해 왕족도 백제 왕족이고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도 백제가 멸망하면서 생겼고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조선에서 일본으로를 가리키고 있다. 이게 상식이다.
즉 상식적인 역사에서는 일본이 조선을 통치할 근거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있는 역사를 그대로 교육할 경우 조선인들의 기세만 높여주는 꼴이 된다. 그러니까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는 원래 상식과는 다른 역사 교육이 필요해졌고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왜곡이 들어가야 한다.
굳이 역사적인 연구나 근거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일본이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 왜곡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64 일본은 우리 역사를 지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일본에 의한 우리나라 역사 지우기 혹은 왜곡은 1910년부터 시작된다. 같은 해 11월부터 14개월 동안에 걸쳐 일본은 조선 전국 강토를 구석구석 다 뒤져 문화와 역사 등에 관한 서적 51종 총 20만권을 강제로 압수해 불살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이후 일본이 한 짓을 생각하면 당연히 첫 단계는 기존에 존재하는 역사와 문화를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에 이미 말한 데라우치라는 총독의 이야기를 잊지 말자. 조선인의 민족적 반항심이 타오르게 된다면 이는 큰일이므로 영구적이며 근본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사업? 이게 바로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역사를 지워야 조선인을 재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우리 역사를 지운 것은 일본만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우리 스스로도 우리 역사를 이미 지웠었다.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 그건 바로 조선 시대에 태종이나 성종 같은 왕들이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책들을 빼앗아 모두 불질러 버린 사건들이었다.
아마도 조선이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사대로 시작한 역사이기 때문에 특히 우리의 영토가 중국 땅에 있었던 부분에 대한 재정리 혹은 흔적 지우기 차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 스스로 우리를 한반도 내에 고립시키는 것을 선택하고, 그때까지 우리 조상들이 지배하거나 아니면 대등하게 싸우던 중국을 이제는 반대로 섬기는 사대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 역사의 치욕은 조선조에 시작되었다.
일본도 이렇게 우리의 책들을 빼앗아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자기 역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조선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 특별 기구를 만들었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일본이 우리 역사 지우기 혹은 왜곡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이 기구는 3년 후 1925년에 조선사편수회로 재편된다.
이 조선사편수회는 일본 총독 직할 기구였고 이들이 1938년 총 35권의 조선사를 출판했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던가? 어떤 한 국가에서 자기 역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를 대신 쓴다? 그것도 하루 이틀 일 이년이 아니라 장장 13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을 드려? 아마도 인류 역사에 이런 경우는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희귀할 것이다. 정말 일본은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어쨌든 상식적으로도 이런 상황은 이해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역사를 쓰려면 엄청난 시간과 인력과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런 모든 소비를 감수하면서 다른 나라의 역사를 기술한다? 13년 간이나? 뭔가 대단한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 이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이 역사책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아야만 한다. 특히 그들이 이 책을 쓴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이 책의 모든 부분을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

65 이병도 등이 외친 실증사학이란 핑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쓴 우리 역사책, 조선사편수회가 출판한 35권의 조선사를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작업은 이미 오래 전에 했어야 하는 일이다. 아니면 아예 읽거나 재론한 필요도 없이 모두 폐기처분 시켰거나 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방해로 인해 친일파 청산이 좌절되면서 조선사편수회가 만들어 준 역사도 우리는 그래도 껴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다시 출판한다고 한다.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에서 이 책과 해제를 출판한다고 한다. 한 눈에 일본이 우리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보여질 수 있는 출판 사업이다. 2023년에. 그런데 이 책이 출판 금지를 당했단다. 출판금지? 21세기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 출판 사상의 자유는 기본인데 출판을 금지한다고? 그것도 국가로부터? 금지가 아니라 모든 시민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고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알려줘도 시원찮을 판에… 진짜 대한민국이 언제나 일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까?
그런데 또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흔히 얘기하는 더러운 것을 봄으로써 내 눈을 더럽히게 되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보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사실 이 책은 한 마디로 존재할 가치 혹은 읽을 가치가 없는 역사책이다. 그냥 한 마디로 쓰레기다. 왜냐하면 한 마디로 말해 우리 역사가 아니니까. 즉 다시 말해 우리 역사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니까.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 역사가 뒤로 후퇴하도록 만든 책이니까.
중국이 왜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긋고 있을까? 일본이 왜 꺼떡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옛날에 임나가 우리나라 전라도와 경상도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우길까? 설마 중국과 일본의 사학자들이 무엇이 사실인지 모를까? 그건 불가능한 얘기다. 적어도 학자라면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와야 하는지 아니면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니까.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역사다. 그게 역사가 가는 방향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그건 올바른 역사고 그 반대라면 그냥 우리 역사가 아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처럼 그렇게 도를 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처럼 비실거리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확하게 힘있게 얘기하지 않고 그냥 대충 뭉개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중국이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왔다고 하면 우리는 역사책 끄집어 내서 북경이 우리 고려의 서경이었다고 말하고 싸우면 된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면 우리는 일본을 세운 것은 바로 백제였다고 되받아 치고 일본 땅 다 내놓으라고 하면 된다. 쟤들이 한 마디하면 우리는 열 마디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만히 있다. 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고 또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떠들어야 하는 주체들, 즉 역사학자들이 바로 일본이나 중국놈들이 말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역사를 만들어 놓은 일본놈들은 이미 우리 역사가 왜곡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우리 사학자들, 특히 강단사학자라는 놈들은 여전히 80년전 왜곡된 역사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다. 무슨 황야의 늑대새끼들이냐! 이 개나리 십장생들 같으니라고!
불행하게도 이들이 소위 식민사학자들 혹은 반도사관 사학자들이다. 이들이 현재 우리의 역사를 만들고 가르치는 인간들이다. 이들의 시각은 조선사편수회의 사관을 따른다. 그리고 조선사편수회의 사관은 소위 식민사관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학자라는 놈들이 믿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왔고 독도는 일본땅이라 믿는 것이다.
이런 식민사학을 만든 것이 바로 조선사편수회. 그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끝내주는 놈들이지. 우리나라 해방기에 이병도 같은 놈들은 실증사학을 부르짓는다. 실증사학? 역사를 보는데 일본이나 또는 우리 조선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진짜 지나가는 개가 다 웃을 소리 아닌가?
열심히 일본놈들 추겨세우고 빌붙어 살면서 호위호식하다가 자기의 뒤를 봐주는 일본이 망해 나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갑자기 자기가 주장하던 것을 뒤집으면 여태까지 자기가 한 짓거리가 들통날 것이니 뒤집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계속 그 자리에서 옛날처럼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꺼내든 묘수가 나는 친일파 아니다. 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저 객관적인 역사를 보는 학자다 라고 씨부리는 헛소리가 바로 실증사학 아닌가? 이 실증사학이라는 것은 그냥 단순한 핑계일 뿐이다. 실증은 무슨, 개뿔!

66 시민사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실증사학이라는 표현 자체도 한심한 소리다.
다시 한 번, 역사는 왜쓰나? 나 못났다라고 역사를 쓸까? 내 조상들이 모지리라고 역사를 쓸까? 그런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잘난 것만 써도 부족한 역사를 왜 못난 것까지 쓸까? 물론 역사서에는 못난 부분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서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것인데 실증사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더불어 어떤 역사적 사실은 수 많은 사람들이 겪은 현상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참전했던 월남전을 어떤 한 군인의 인터뷰를 가지고 실증이 됐다고 말할 수 있나? 만일 그가 월남전에서 후방 부대에서 사무만 보던 행정병이었다면 또는 그가 최전방에서 싸우다 다리를 잃은 군인이라면, 이 한 사람의 경험으로 월남전을 일반화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애초 실증사학이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이병도 같은 실증사학이라는 걸 부르짖은 놈들이 말한 실증, 즉 어떤 증거나 사실이 있는가? 그리고 애초에 실증이란 그냥 핑계일 뿐이다.
어쨌든 그들이 실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그들 자신들이 쓴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다. 그런데 그 책은 역사적인 근거가 없이 쓴 책이다. 그러니 실증의 바탕이 되어야 할 소스가 탄핵되고 전혀 헛소리가 되고 만다. 즉 실증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이병도 패거리들아. 너희들이 한 짓은 그냥 단순히 너희들 잘먹고 잘살려는 그 순진한 생각이었겠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완전히 파괴되고 왜곡되고 그로 인해 조선인은 찌질한 민족으로 거의 전락되었다. 거기서 이제 벗어나는 중이다. 따지고 보면 이 놈들이 이완용이보다 더 나쁜 놈들일 수도 있다. 하긴 이병도라는 놈은 이완용이의 조카니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조선사편수회에서 출판한 조선사라는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 한국사를 싹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조선사편수회가 쓴 책 뿐아니라 그 이후 소위 실증사학을 부르짖으며 써댄 이병도와 그 제자 및 강단사학자 놈들의 책들도 모두 다 가져다 버리고 완전히 처음부터 우리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 필요하다.
이놈들이 이렇게 썼다 저렇게 썼다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이런 얘기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얘기는 단지 연구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고 그래서 일부 학자들이 연구차원에서 앞으로 이런 황당한 짓거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연구로 이 책을 연구하도록 하고 우리 역사는 완전히 새로 쓸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뭐가 잘못됐다 얘기할 필요 없이 아예 싹 무시하고 새로 쓰면 된다는 것이다.
단 이번에는 그 역사전문가라는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 모두 빼버리고, 그들이 지금까지 해놓은 연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시민사학자들이 모여서 우리 역사를 다시 쓰게 하면 어떨까?
이미 여러번 얘기한 것처럼 시민사학자들은 모두 사학자로서의 능력을 갖추었다. 그리고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처럼 오랜 동안에 걸쳐 연구를 했다.
시민사학자들과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들과의 차이는 이들이 그들 선배들로부터 역사 교육을 받지 않았고 그들로부터 학위를 받지 않았으며 오염된 소스를 가지고 공부를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비교적 왜곡되지 않거나 깨끗한 상태의 소스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역사적 소스는 다소간 오염되어 있다. 현재 우리의 삼국사기도 조선 조에 다시 쓰였고, 중국의 수많은 역사책들도 많은 경우 명나라 때에 다시 쓰여졌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던 무슨 중국이라는 나라를 앞세우고 있으나 그렇더라도 역사를 통째로 모두 왜곡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도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손을 댈 수 없었고 그런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과거 우리의 위치나 지위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시민사학자들이 한 작업이다.
이들은 이병도나 이기백과 같은 매국노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다시 쓰려면 바로 이런 사람들이 다시 써야 한다.

67 이완용 조카 이병도, 그의 손자들
계속해서 조선사편수회에 대해 알아보자.
일단 이 조선사편수회에 참가한 우리가 알 수 있는 이름을 몇 보자.
고문으로 이완용 권중현 박영효가 있었다. 이들 이름만 들어도 벌써 이 단체가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역사를 직접적으로 날조하고 아마 우리 역사상 최악의 사학자인 이병도의 스승 이마니시 류, 최남선, 그리고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문리과 대학장, 영남대학교 대학원장 그리고 국사관장과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일한 신석호와 이병도 등 수많은 일본과 한국놈들이 있었다.
위에 언급되는 기관의 이름들이 벌써 소름끼치지 않는가? 우선 대학교 대학원 국사관장 국사편찬위원회. 도대체 누가 우리 역사, 즉 한국사를 썼나? 그리고 그 내용이 정말 우리 역사답게 우리에게 이롭게 씌인 것이 맞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런 역사책을 쓴 이후에 자신들이 했던 일에 대해 반성이라도 했거나 혹은 자신의 역사에 대해 방향 전환이라도 했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우리 역사를 왜곡시켰고 그 이후에 전혀 반성도 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방향 전환이라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고 오히려 일본놈들 따르며 자기들이 쓴 왜곡된 역사를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고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이들은 우리 과거 역사를 조작해 민족의 미래를 팔아먹었다. 이 세 명의 이씨가 아마 조선 역사 5천년 최악의 3인방이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건 한 가지를 알아보자. 지난 2007년의 사건이다. 참고로 이런 종류의 사건은 너무도 많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우리나라 국립 중앙박물관 관장이었던 사람이 있다. 이건무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형인 이장무라는 사람은 2006년 서울대 총장에 임명되어 2010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었다. 그 시대는 노무현 대통령 때인데… 이 훌륭한 대통령이 역사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문외한인지… 자기가 모르면 밑에 있는 놈이라도 제대로 된 놈을 쓰던가.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에 대해 명백하게 발언하고 정말 우리가 두 번 맞이하기 어려운 괜찮은 대통령이었다. 아주 찌들어 있던 정경유착을 타파했고 남북 갈등을 완화시켰고 재벌 개혁도 했고 불공정이나 담합 등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대응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토대를 닦은 사람이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박물관장이나 서울대 총장으로 저런 인물들을 허용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에 대해서는 허당이었나?
도대체 저 이건무와 이장무는 누구인가?
이건무와 이장무는 형제다. 둘 다 서울대학교를 나왔다. 하나는 고고학과 또 다른 하나는 공대. 고고학과를 나온 이건무는 문화재청장까지 해먹었고 공대 출신의 이장무는 서울대 총장을 거쳐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까지 역임했다. 그 아버지는 역시 서울대 농대 학장을 지냈던 이춘녕이다. 여기까지 보면 참 괜찮은 집안이다. 그 아버지와 두 아들까지 공부도 잘했고 능력도 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누굴까? 그리고 그 증조할아버지는 누굴까?
이들의 할아버지는 바로 우리의 미래를 팔아 먹은 이병도다.
우리의 현재 역사를 왜곡으로 가득차게 만든 조선사편수회의 바로 그 천하 역적 이병도. 한 술 더떠서 이병도의 삼촌이 누구냐? 바로 이완용이다. 그렇다 을사늑약 정미조약 한일합방까지 모두 앞장서서 찬성했던 우리 역사 최악의 매국노. 그의 조카가 바로 이병도다. 그러니까 증조할아버지는 나라를 팔아먹은 놈이고 할아버지는 미래를 팔아먹은 놈이다. 물론 그 부모를 보지 않고 당사자만 보는 것이 옳겠지만…

68 우리 역사는 뒤틀려 있다
대한민국 중앙 박물관장이란 우리나라 역사를 책임지는 인물 중 하나다. 땅 속에서 발견된 비문에 써 있는 글자를 해석하고 거기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나라에 대한 애착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요구되는 인물이고 결국 미래를 제대로 설계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이다.
이건무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맞나?
물론 그건 할아버지 때 얘기고 나는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거치면서 집안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자기 선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선조를 지적하는 순간 그가 밟고 있는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자기가 커밍아웃 하는 순간 그때까지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방향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바꾸지도 않았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기 조상들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현재 상황을 고착화시키고 더욱 강화시키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 반일 항일 뭐 이런 일본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모두 묻고 헛소리로 치부하고 막았을 것이다. 이건 상식 아닌가? 실제로 그에 대한 평가는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역사인식 없는 정부의 문화재청장 인사.
그리고 사실 이 모든 것이 다 이승만 때문이다. 그 놈이 반민특위를 다 때려 부순 덕분이다.정말 두 번 세 번 열 번 천 번을 생각해도 이승만은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다.
하긴 저런 놈들을 뽑는 그 주변의 모지리들이 더 문제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결국 서로 비슷한 인간들 아닌가?
대략 70년대까지의 대학 교수들은 적어도 독립운동가 자손이 되기는 어려운 자리였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었을테니까. 이뿐 아니라 오랜 시간 공부를 해야 하는 모든 직업들은 모두 특정 집단에게만 허용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건이 되는 집단.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들의 카르텔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친일파 후손이 가장 많이 하는 직업은 의사와 대학교수이다. 참 현재도 매우 암울하다…. 공무원도 경찰도 군대도…
이제, 조선사편수회를 마무리하자.
이들이 한 일은? 한국사를 일본이 원하는 대로 다시 쓰는 것. 왜? 그래야 조선인들이 쓸데 없이 항일 의식 불태워 시끄럽지 않고 조용히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할테니까. 성공했나? 성공했다. 불행하지만 무지하게 성공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일본놈들이 만들어 준 한국인에 대한 평가로 살아가고 있다. 무슨 냄비근성이 어떻고 우리 한국인이 저떻고를 씨부리며…
조선사편수회는 1945년 8.15광복으로 해산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이들이 펴낸 책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존재했고 그냥 단순하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바이블로 존재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조선 역사의 매국노 이병도는 1948년에 조선사대관이라는 책을 그리고 1954년에 국사대관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이병도가 1934년 만든 진단학회에서 1959년 한국사 7권을 발행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역사 매국노 이기백은 1967년 한국사신론을 썼다. 이 모든 책의 바탕은 바로 조선사편수회가 낸 조선사 35권이다.
이 책들이 현재까지 우리나라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책들이다. 즉 강단사학자도 재야사학자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들이 노는 운동장이다. 덕분에 우리 역사는 아직도 일본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이 만들어 준 역사를 따르는 강단사학자라는 놈들 덕분에 우리 역사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해방이 1945년이니까 2024년이 시작된 현재 8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역사는?
후퇴했다.

69 우리 역사는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다
역사란 객관적인 서술이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된다. 역사란 단순하게 현상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그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과 그로 인한 결과까지도 직접 기록하거나 만일 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적어도 후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해석할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 역사란 현재나 과거의 기술이 아니다. 그건 철저하게 미래를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참 시끄러웠던 전라도 천년사라는 책을 보자. 물론 그것이 처음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에 팔아 먹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도 그리면서 독도 안 그려 넣은 지도까지 만들었던 작자들이고 국립박물관에 유물 전시하면서 고조선을 아예 빼버린 놈들이다.
이번에 이놈들이 출판하려고 한 전라도 천년사의 핵심은 임나일본부설. 즉 일본이 우리나라 전라도 경상도를 지배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임나일본부설은 지난 2010년 한국과 일본 사학자들에 의해 폐기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본학자들도 임나일본부설은 부정한다. 그런데 그걸 우리나라 역사학자라는 놈들이 다시 끄집어 내 임나를 얘기하면서 그때 말한 (예를 들어) 기문이 남원이다 라고 책에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기문이 남원이라는 것에 대한 근거가 있냐고? 없다! 전혀! 그냥 이병도 같은 놈들이 이곳이 이곳이야라고 말한 것 밖에. 그럼 이병도에게는 근거가 있었나? 없었다! 전혀! 흔히 말하는 대로 일본놈들과 이병도 같은 놈들이 그냥 여기가 거기라고 비정했다. 즉 생각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근거는 없고 그냥 생각해서 이곳이 이곳이다. 그리고 그게 우리 역사가 됐다.
그렇게 떠들어대면 또 한 동안 시끄러워진다. 재야사학자와 특히 최근에는 시민사학자들이 모두 난리를 치게 되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든다고 온통 시끄러워지면 또 이런 논리가 슬그머니 들어간다. 지금도 그렇다. 작년에 그 전라도천년사를 가지고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난리를 치니까 조용해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추가해서 우리 땅을 일본에 또는 중국에 가져다 바칠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렇게 역사를 가져다 바친다고 돈을 받는 것도 무슨 명예를 받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기 얼굴에 계속 똥칠만 하는데.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놈들이 이 우리나라 강단사학자라는 놈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뽕에 가득차서 대한민국 찬가를 불러 제끼고 있는 뭐랄까 민족주의 역사학자가 아니다. 또 기존에 존재하는 우리 역사에 대해 잘잘못을 찾아서 따지는 그런 역사학자가 필요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학자는 자기만의 연구를 통해 근거를 제시하며 우리 역사를 새롭게 쓸 시민사학자다. 일본이 우리에게 만들어 준 기존 우리 역사는 아예 버려야 한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 따질 필요도 없다.
완전히 새로운 운동장에서 하얀 백지에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미 그려진 그림은 아무리 수정해도 수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버리면 된다. 그건 잘못 그려진 그림이고 존재할 가치가 없는 그림이다. 그리고 그걸 수정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냥 다 버리고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