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 일본놈들은 죽지 않았다

우리의 임시정부는 미국에 의해 와해되었고 일본놈을 때려 잡았어야 하는 반민특위는 이승만이 파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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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을 보자.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다. 우리에겐 당연히 정부가 있었다. 상해에 있던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미국은 그들과 함께 한국 내 침공작전까지 계획하고 함께 훈련까지 했다. 그리고 그 정부에서 잠깐 동안 대통령 노릇을 하다 탄핵당한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임시정부는 미국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당시 임시정부 간부들은 모두 자신의 직을 버리고 개인의 입장에서 국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까지 수많은 일을 하던 우리의 임시정부였다. 그런데 그걸 미국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임시정부의 임원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도 막았다. 개인의 자격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정부일에 관여치 않겠다는 서약까지 하고 들어와야 했다. 그들이 그때까지 주도해 오던 많은 항일 사업들과 미국과의 공조, 예를 들면 함께 국내로 들어와 후방교란을 하려고 했던 특수부대의 구성과 훈련 등의 모든 사업이 다 없던 일이 되었다. 그냥 그들이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개인의 일이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국내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승만도 들어왔다. 이승만은 이미 임시정부에서 탄핵된 인물이었지만 그는 영어에 능통했고 당시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어느 줄을 잡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세력을 만들기 위해 미군과 손을 잡게 된다.

미군 입장에서도 기왕에 있는 세력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그 세력이 매우 똑똑하고 강직한 세력이었고 오로지 우리의 자주독립을 주장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굉장히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관리하기 편하고 쉽게 컨트롤 가능한 사람을 찾았을 것이고 그것이 이승만이었을 것이다.

이때 이미 우리 사회는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시골 동네까지 세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조직이 그대로 국가 조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가능했다. 이미 모든 것은 다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이 조직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조직이 다소간 사회주의 냄새를 풍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미군은 이 조직을 와해시키고 처음부터 시작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유경험자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당시 유경험자란? 바로 대일투쟁기 일본에 부역하던 친일파 세력이었다.

해방을 맞이하며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했고 동시에 친일하던 부역자들은 숨기에 급급했고 언제 죽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곧 죽게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미군이 그들을 다시 원래 자리로 부른 것이다.

무늬만 일본에서 미군으로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은 과거와 동일하게 진행되게 되었다.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군을 죽이던 경찰이며 군대를 포함한 수많은 친일 공무원들이 모두 그대로 돌아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독립군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라는 사람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정말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인간들이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과거와 동일한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했다. 뭔가 좀 더 나은 어떤 것을 기했던 사람들은 모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헌국회를 통해 반민특위, 반민족행위자특별처리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단절된 정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일제에 부역한 놈들을 찾아 처단하는 일이었기에 제헌 국회에서 통과되어 친일파 색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활동한 후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는 해체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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