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 고구려 백제 신라는 어디에 위치했었나

아마도 이 지도가 우리 영로가 맞을 것이다. 단군 조선이후 저 땅들이 삼국으로 갈렸다 남북국시대를 거쳐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러 저 넓은 땅을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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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원래 하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우리 과거 역사 얘기다.

나는 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듣는 동안 크게 세 가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시민사학자들의 연구와 발표에 의해 이제 그 부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안되던 것은 장수왕의 남하정책이었다. 장수왕은 고구려 역사 최대의 전성기 때 왕이다. 그런데 그가 왜 평양으로 천도했을까? 아마 평양이라는 지명은 분명하겠지만 그가 왜 굳이나 땅도 작고 더 이상 나갈데도 없는 한반도 내에 있는 평양으로 천도했을까? 이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수왕이 전성기가 아니라 다 죽어가는 고구려에서 그나마 나머지라도 지키겠다는 목적이 아닌 이상 그가 한반도로 들어올 단 하나의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평양은 한반도 내에 있어서는 안된다.

두 번째 이해가 안되는 것은 강화도다. 고려 무신 정권이 그 섬으로 피난을 해 수십년을 싸웠다는 것이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몽골이 강화도를 점령하지 못하고 수십년을 허비했을까? 강화도란 육지에서 수백키로 아니 수십키로 떨어진 곳도 아니고 바로 조 앞에 보이는 섬이다. 그거 아무리 바보라도 마음먹으면 사람들 동원해 한달만 땅 파서 메우면 충분히 건널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정복하지 못해 수십년을 발만 동동 굴렀다? 이거 역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이해가 정말 안가는 세 번째는 왕건에 대한 이야기다. 왕건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었나? 송악이다. 그리고 송악은 현재 개성이란다. 그런데 이 왕건 가문이 궁예에게 귀속된다. 그리고 궁예는 철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즉 그들이 신라나 후백제와 전쟁을 벌이던 주무대는 강원도나 경기도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건 강단사학자들이 얘기하는 바이고 많은 수의 재야 사학자들도 이 해석에 별로 반대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런데 뜬금없이 전라도 나주가 등장한다. 왕건이 갑자기 개성에서부터 아마도 서해를 따라 내려갔겠지. 하여간 전라도 나주까지 가서 나주를 점령한다. 그럼 개성부터 전라도 나주까지 견훤은 전혀 해군이 없었나?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옛날에는 배가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항하기 어려웠다. 설사 견훤이 해군이 없었더라도 왕건의 군대가 서해를 가로질러 전라도까지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다가 공격당했나? 견훤이 장님이었나? 이것 역시 도저히 말이 안된다. 정말 아무런 이유없이 경기도 강원도 싸움판에서 갑자기 전라도 나주가 등장하니까 말이다.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지명도 분명 전라도 나주는 아닐 것이고 또 현재의 개성도 아닐 것이다. 이게 현재 우리나라의 나주와 개성이라면 견훤과 견훤의 군대는 모두 장님에 바보 멍청이어야만 한다.

이외에도 우리 역사에는 말이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우리 역사에서 확실한 것은 조선시대 중반 이후에 일어난 일들뿐이다. 그 이전 시대, 하다 못해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우리의 영토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영토가 역사적으로 한반도 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조선 중반 이후고 그 이전에는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나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럼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그건 일본놈들이 3류 한국인을 만들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새롭게 쓴 완벽한 소설이다. 특히 그 소설에서 고조선부터 조선 초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완전히 잘못된 역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장소들이 그들이 그렇다고 써 놓은 것이고 그게 전혀 입증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역사를 계속 재탕하면서 그 역사는 마치 실제 우리 역사처럼 고착화되었고 현재도 우리는 그렇다고 교육 당하고 있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강단사학자들과 역사에 관련된 공무원들 모두를 능지처참해도 부족하다. 정말 그 이전 이병도를 비롯한 이 식민사학 혹은 반도사학자들을 부관참시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우리 역사에 대한 의문을 별로 가지는 사람들이 없었다.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역사에 대한 접근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낙 우리 사회가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교수들의 권위에 대항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역사에 대한 커다란 반전은 박창범 교수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우리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북한으로 넘어갔고 북에서는 일제를 청산했기 때문에 그대로 조금 더 남한보다 열린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보다 광범위한 연구를 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사료가 부족했고 지금처럼 이동이나 유적 발굴 사료 검사 등등이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마저도 일부는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현재 남한의 재야 사학자들과 비슷한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박창범 교수는 삼국시대 문제 두 가에 집중했다. 하나는 일식 관측지,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장마 기록. 그리고 이 둘의 기록을 함께 보면 그 위치가 동일한 지역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그 지역들은 우리가 현재 배우고 있는 한반도 내에 있는 여기 저기가 아니다. 반대로 고구려는 만주와 몽골, 백제는 발해만 부근 그리고 초기 신라는 양자강 유역 그리고 후기에는 한반도 동부로 밝혀졌다.

일식과 같은 천문 기록을 어디 그 나라의 시골 구석에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수도나 적어도 그 근처인 것이 너무도 상식이다. 이 상식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수도가 어디였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 삼국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는 것 다 잊어 버리고 그냥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는 일식과 홍수 기록만 따라가자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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