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 3.1운동은 우리의 얼을 되살렸던 저항이다

3.1운동 이전에 무오독립선언이 있었고 2.8독립운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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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1운동으로 돌아가자.

물론 3.1운동이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만세운동은 아니다.

3.1운동 이전에 우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있고, 이에 고무된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39분이 무오독립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이 독립선언에 참가했던 분들은 이 선언서를 작성한 조소앙을 비롯 김규식김좌진, 박용만박은식신규식신채호유동열, 이동녕이동휘이범윤이상룡이승만이시영이세영정재관 등 차후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이끌던 인물들이었다.

내용도 3.1운동과 매우 다르다. 이 선언에서 이들은 일본을 동 아시아의 적, 국제법규의 악마, 그리고 결국 인류의 적이라 규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을 이렇게 끝낸다.

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국민본령을 자각한 독립임을 기억할 것이며, 동양평화를 보장하고 인류평등을 실시하기 위한 자립인 것을 명심할 것이며, 황천의 명령을 크게 받들어 일절 사망에서 해탈하는 건국인 것을 확신하여,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3.1운동 독립선언서의 내용과는 너무 다른 내용이다. 3.1 독립선언문은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것처럼 매우 평화로운 내용이다. 흔히 간디의 비폭력투쟁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쓴 사람은 최남선이다. 아마도 나중에 변절을 이미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마지막 단락을 좀 보자.

오등(吾等)이 자(玆)에 분기(奮起)하도다. 양심이 아(我)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울한 고소(古巢)로서 활발히 기래(起來)하야 만휘군상(萬彙羣象)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하게 되어도다. 천백세 조령(祖靈)이 오등(吾等)을 음우(陰佑)하며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前頭)의 광명으로 맥진(驀進)할 따름인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뭐 어쩌자는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진짜 누군가 비판했던 것처럼 이건 마치 지하철 역 노숙자가 세계 평화를 지키자고 외치는 한심한 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쟁을 통해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이 무오독립선언서에서는 투쟁을 시민들이게 요구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근거는 우리의 독립과 동양 평화 보장 및 인류평등을 내세웠고 이에 따라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쟁취하리라 촉구하고 또 이후 스스로 그 길로 뛰어들어 우리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가장 대표적인 우리의 조상들이다.

이 무오독립선언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김규식이 지시하여 조소앙은 일본으로 건너가 2.8 독립선언을 이끌게 된다.

2.8 독립선언. 도쿄 한 복판에서 한달간 항일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참가자는 당시 유학을 가 있던 유학생들. 최팔용이 조선청년독립단을 선포했고 나중에 변절하게 되지만 이때만 해도 조선독립을 소원하던 이광수가 2.8 독립선언문을 썼으며 백관수가 낭독하였고 장영규최팔용윤창석김철수서춘김도연송계백윤치영, 정공균, 변희용강종섭, 이정훈, 이봉수, 김승민 등 500여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내용도 무오독립선언에 비해서는 많이 조용한 내용이지만 3.1 독립선언문 보다는 과격하다.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전 제항의 요구가 실패될 시에는 (우리가 독립되지 못할 시에는) 일본에 대하야 영원히 혈전을 선함. 차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오족(조선 민족)이 기책을 임치 아니함.

이 사건은 당시 상해로 피난해 있던 이광수에 의해 조선에 전달되어 뭔가 시위가 벌어질 수 있는 분위기는 무르익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3.1운동이 고종의 장례식을 기해 벌어졌던 것이다. 정말 3천리 방방곡에서 3개월간 106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그리고 당연히 일제는 총칼을 사용하여 우리 강산을 핏물로 적셨다.

나라를 빼앗고 남의 왕과 왕비를 죽인 것도 모자라 나라를 되찾겠다는 무고한 시민들을 총칼로 죽였다. 그 놈들이 통계로 기록한 숫자는 554명. 이건 시위 현장에서 사망한 숫자고 그 이후 감옥에서 또 병원에서 혹은 집에서 아니면 그 아무도 알지 못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통계로 대략 7천명 정도에 이른다는 것이 기록이다.

10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으므로 당시 조선 인구를 2천만으로 계산할 때 어린이와 노인을 빼고 거의 전 조선인의 10%가 시위에 참가했던 것이다. 세계 역사에 이런 일이 있나? 단연코 없다. 우리에게만 있는 특징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