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 이승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이승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에 대한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전혀 이행하지 않은 용서받지 못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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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and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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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지명되고 탄핵되는 과정 한 마디로 답답하고 한심하다.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평화로운 때도 아니고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독립을 성취해야 하는 절박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인물이다.

우선 그는 양녕대군 16대손이란다. 양녕대군은 누구? 태종의 첫째 아들, 즉 세종의 큰 형이다. 양녕대군에 대한 평가는? 한 마디로 할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호색 및 냉혈 성향만 물려 받은 인물이란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그는 세자였으나 하도 양아치 짓을 해서 결국 폐세자되고 그 자리를 다행스럽게 세종이 받게 된다.

특히 양녕대군은 계유정난, 즉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이 일찍 죽고 14살의 어린 조카가 왕이 되었을 때 그를 내쫓고 결국 죽인 수양대군 세조가 벌인 가족을 향한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적극적으로 찬동까지 했단다. 자기 동생의 아들이 자기 동생의 손자를 죽인 천인공노할 행위에 박수를 치다니… 자기가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화풀이라도 되나? 어쨌든 이런 인물이 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천만다행이고 그 조상의 그 후손 답게 이승만이도 참 양아치 짓을 많이 했다.

우선 한성정부를 보자. 한성정부란 3.1운동 이후 1919년 4월 23일 24인의 13도 대표가 모여 수립한 임시정부다. 물론 이 한성정부뿐 아니라 상해와 블라디보스톡에도 임시정부가 각각 세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항일투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어 대표들이 합의를 통해 한성정부를 적통으로 인정하고 단 위치는 상해에 두는 것으로 결정해 상해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되었다. 즉 일사불란한 투쟁을 위해 많은 사람이 양보하여 만들어진 통합 임시정부다.

최초 한성정부가 세워질 때 추대된 집정관총재가 이승만이었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은 곧 President of Korea 라는 명함을 돌리며 대외활동을 하였지만, 안창호선생이 너는 President 가 아닌데 왜 President 라고 쓰느냐? 그렇게 하지 말라 라고 했더니 이승만은 이렇게 답했단다. <만일 우리끼리 떠들어서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소문이 세상에 전파되면 독립 운동에 큰 방해가 있을 것이며 그 책임이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언급하지 마시오. 1919.8.26> 이때부터 이 싹이 어떤 싹이었는지 알아보았어야 했는데 아마도 교육 실력 등을 강조하던 안창호 선생에게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이승만의 포장이 뭔가 시선을 가렸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후 9월 통합 상해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으로 지명된다.

이때 이승만은 어디에 있었나? 미국에 있었다. 국민들이 낸 돈 받아서 그 돈쓰며 여자들과 미국 일주하며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지명된지 1년이 넘도록 상해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으로 지명됐으면 얼른 상해에 가서 항일 투쟁에 앞장서야 하지 않나? 그 많은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만들어진 정부에서 뭐라도 지시를 하겠지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데 1년이나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러면서 이승만은 한 술 더 뜬다. 그가 미국에 위임통치를 건의했단다. 이게 말이 되나? 자기가 대통령으로 지명을 받았는데 다른 나라에다가 위임통치를 부탁한다?

신채호 선생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나?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를 팔아먹더니 이승만이는 없는 나라까지 팔아먹는구나.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인간이 대통령이라니…

이거 선조가 생각나는 인물이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중국으로 도망치던 놈. 그리고 우리 역사 최악의 왕 중 하나. 게다가 이승만은 또 다른 최악의 왕인 고종까지 생각나게 한다. 나라를 뺐긴 왕. 아니 고종보다 더 한 놈이네. 자기 나라를 통째 들어 다른 나라 아가리에 처넣으려고 했으니. 완전 이완용 수준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인물이 대통령으로 지명될 수 있었을까?

어쨌든 이승만의 이 위임통치 건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해 임시정부 내외에서 더욱 거세졌고 결국 1920년 12월에 상해에 왔다. 대통령으로 지명된지 1년 3개월 만이다. 그렇게 온 이승만에게 위임통치가 어떻게 된거냐?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더니 거부했다. 게다가 대통령이 상해에 없을 때 국무총리에게 결재권 위임을 요구했더니 그것도 거부했다. 왜? 이승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걸까? 하여간 이렇게 저렇게 거부하더니 겨우 5개월 머물고 1921년 5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위험한 곳에서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을 하기는 싫고 우아하게 앉아서 왕처럼 사인이나 하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중간에 탄핵 당하고 하지만 안창호 선생이 도중에 또 말리고 하는 과정이 있다가 3년 후 1924년 9월에 당시 국무총리인 이동녕에게 대통령직 대리를 결의했다. 그러니까 1919년 이래 또 1921년 이승만이 미국으로 돌아간 이래 이 3년 동안 계속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이라는 놈은 미국에서 놀고먹고 여행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법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대리를 임명한 것이다. 이 정도되면 낮 부끄러워서라도 주둥이 닥치고 아무 소리 없이 찌그러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 같으면 창피해서 접시물에 코라도 박고 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이는 이 대통령 대리 임명에 반발한다. 게다가 미국에 있던 한인들이 모은 독립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다. 그리고 또 지가 대통령이라고 헌법소원 비슷한 것을 내며 떠벌리다가 결국 6개월 후인 1925년 3월 23일 탄핵되고 박은식 선생이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세상에 무책임한 놈. 대통령이라고 지 스스로 명함까지 파 가지고 다니면서 떠들어 대던 놈이 지가 대통령으로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가 없을 때 총리가 뭘 하는 것도 거부하고. 탄핵을 당하니 헌법 위반이라고 씨부리고 독립자금까지 막고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냐고? 이 놈은 그냥 지 조상처럼 창녀들이나 껴안고 살다가 죽었어야 하는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지명 받은 1919년부터 탄핵되는 1925년까지 3.1 운동을 이어받아 본격적인 대일 투쟁을 해야 하는 그 소중한 시기에 임시정부의 대통령이라는 놈이 아예 정부가 있는 곳에 있지도 않으면서 일은 전혀 안하고 남이 일하는 것도 방해하고 그러다가 짤리니까 짤렸다고 지랄하다가 결국 6년이라는 세월을, 그 너무나도 귀중한 세월을 통째 버리게 만들었다.

이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이승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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