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56 – 이승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이승만은 결국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인 분단과 역사왜곡의 시발점이다.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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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ible Lee Seu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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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용서받을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람을 죽인다. 하긴 이 때만 해도 우리는 국민, 즉 국가를 구성하는 한 인자일 뿐이었으니까 좀 죽여도 되나???? 대통령이 뭔데 국민을 죽이나? 우리 대한국민은 누구? 대한의 시민, 즉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결국 우리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가 자기의 주인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건 그가 강조한 반공과 직결된다. 반일이어야 하는데 자기 주변에 맨 친일파만 있으니 반일이라고 말하기는 뭣하고 게다가 미국이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니 이 틈에 미국에게 잘 보이기도 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시각도 뒤집고 하려면 역시 반공이 최고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반공으로 돌아선다.

그의 가장 큰 치적은 서북청년단이다. 서북청년단은 쉽게 말해 주로 황해도 쪽에서 살던 지주쪽이나 혹은 조금 살던 사람들로 공산당이 장악하며 토지개혁을 통해 재산을 뺏기게 되자 남하해 반공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사건에 개입하여 폭동을 주도했고 특히 이들이 강력하게 개입한 사건은 제주 4.3사건이다.

1947년 3.1절 행사가 끝나고 시위 도중 경찰이 탄 말에 어린이가 하나 죽는다. 경찰은 이를 무시했고 결국 화가 난 시민들이 경찰서에 항의하러 갔고 이 자리에서 경찰이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6명이 죽었다. 이후 각종 시위와 충돌이 발생했고 군대를 파견하려 했으나 군에서 거부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여순사건이 발생한다.

어쨌든 이승만은 제주에 서북청년단을 투입했다. 그로 인해 1954년까지 제주도 일대가 완전히 쑥밭이 된 사건이다. 별 문제 아닌 굶주린 사람들의 시위였고 미군정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약간의 공산주의자들의 참여도 있었지만 그건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좌익 쪽에 관심을 갖는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걸 순전히 빨갱이로 몰아 제주도를 완전히 황폐화시켰다. 이승만은 서북청년단을 이 사건에 투입하면서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공식선상에서 부추기기까지 했다.

4.3사건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3만명 정도고,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4만동이 소각되었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수십만이 이 사건의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제주도의 모든 도민들이 이 사건의 피해자일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제주도민에게 이 사건에 대해 국가의 잘못으로 매듭지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후로 벌어지는 여순사건. 여순 사건의 토벌 대상은 이승만이 흥분하던 공산당 빨치산이 아니다. 바로 제주도로 가서 양민 학살을 명령받았지만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갔던 여수 순천 주변의 군대와 주민들이다.

게다가 악명 높은 보안법을 제정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감방에 보내거나 ….하다 못해 6.25 때는 주변의 각료들조차 알지도 못하게 혼자 몰래 대전으로 도망가서 서울은 안전하다고 라디오 방송까지 했다.

이건 선조를 뺨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많은 피난민들이 다리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남진을 막는다며 한강대교까지 폭파시켰다. 이로 인해 죽은 사람도 죽은 사람이고 피난 떠났다가 다리를 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쩔 것이냐? 마치 선조라는 놈이 임진강을 건너 도망가고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도록, 심지어 백성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 배들을 파괴시킨 것과 뭐가 다른가? 악랄하고 무식하고 야비한 대통령이었다.

정말 천하의 용서받을 수 없는 놈 중 하나가 이승만이다. 물론 이승만 뿐이 아니다. 이후 5.16을 거쳐 16년간 대통령 노릇을 한 박정희, 그리고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된 천하의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그나마 잘 나가는 우리나라를 자꾸 바닥으로 끌고 가려던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현재의 윤석열이까지. 정말 빨간 넥타이 매는 놈들은 정말 아직도 이승만 시절에 하던 짓을 그대로 하면서 살고 있다.

한 가지만 추가로 말하면 정읍선언을 뺄 수 없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최대 5년의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시켜 주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충분한 세력이 없었고 특히 미국이 공산주의에 대해 거부감이 강했으므로 이를 등에 엎고 다니며 자신을 알리다가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본격적으로 분단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우리의 분단을 시작한 인물은 이승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결국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가 바로 이승만으로부터 출발한다.

반민특위를 해체시켜 친일파 놈들을 처단하는 것을 못하게 막음으로써 결국 오늘날까지 우리 역사는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고 그뿐 아니라 역사를 소위 친일파 강단사학자들이 잡으면서 왜곡을 넘어 우리가 오늘날 접하고 있는 우리는 찌질한 민족이야 즉 조선인 찌질이 만들기를 오늘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게다가 정읍선언부터 출발된 분단 논의는 결국 이승만의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 실질적인 분단을 가져왔다.

하지 중장마저 처음에 이승만에게 잘해 주다가 하도 질려서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렸단다. <이승만은 스스로를 위대한 조선의 자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단독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으로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독재 정권> 이라고 평가했단다. 그리고 불행히도 하지의 이런 판단은 맞았다. 그 아무 생각 없고 능력 없던 하지가 한 평가가 맞았다… 씁쓸하다….

결국 현재 우리의 문제인 분단과 역사 왜곡 문제들이 모두 이승만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적지 않는 사람들이 이 이승만 재평가에 나서고 있다. 재평가의 가치가 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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