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자들이란 간단하게 말해 식민사학을 거부하는 역사 전문가들을 말한다. 그렇다. 이들은 대부분 역사를 전공한 역사 전문가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비주류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 있지 않다. 재야사학자 중 대학교수는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주류는 식민사학자들이다. 즉 대부분의 사학과 대학교수들이 식민주의 사학을 따르고 있다.
대학교수의 말은 중시되고 진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국가 혹은 지방 자치단체 차원에서의 대부분 역사에 대한 일들이 이들에게 맡겨진다. 즉 돈이 이들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들이 바로 주류, 즉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돈이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모든 평가는 결국 돈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흘 굶어서 담 안 넘는 놈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돈이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쯤해서 그림을 한 번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주류는 강단사학자들이고 이들이 돈을 쥐고 있으니 그 반대말을 하는 사람들, 재야사학자들은 당연히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고 뭔가 자신의 전공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학과 출신들, 특히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스승들의 의견을 따라 말 잘 듣는 식민사학자가 되거나 아니면 그냥 스승을 거부하고 재야사학자가 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사학계를 완전히 떠나거나.
재야사학자는 배고프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별도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연구소를 만들거나 아니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한다.
하지만 결국 주류는 강단사학자들이니 이 재야사학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정부나 기타 자치단체들도 교수라는 권위를 가지는 강단사학자들의 얘기를 계속 듣지 재야사학자들의 의견은 중시하지 않는다.
여기에 재야사학자들의 딜레마가 있다. 현재 대학 교수들이 주장하는 식민사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이유는 그 근거라는 것들이 일제시대 일본놈들과 이병도 같은 놈들에 의해 계속해서 새롭게 역사가 쓰여졌고 그것을 지금까지 재탕해서 완전히 식민사관이 우리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학교들에서 가르치는 한국사는 어떤가? 삼한은 어떻고 단군은 어떻고 삼국시대는 어떻고 고려시대는 어떤가? 우리 학교들에서 가르치는 한국사가 과연 제대로 된 한국사인가?
이 역사는 이병도를 비롯한 식민사학을 하는 놈들이 새롭게 만들어 놓은 한국사다. 왜? 한국인은 자발적이지도 못하고 자주적이지도 못하고 그저 매일 욕이나 먹고 두드려 맞기나 하면서 고개 숙이고 살 줄 밖에 모르는 놈들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이게 지금 한국사이고 한국사를 새롭게 쓴 목적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아마도) 잘 알면서도 식민사학자들은 그걸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왜? 그게 돈줄이니까.
이렇게 운동장이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든 사학이라는 분야에도 들어서면 이미 공부해야 하는 내용이 정해져 있다. 재야사학자들에게도 같은 운동장이 주어진다. 즉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이나 강단사학자들이 연구하는 대상이나 대상은 결국 같다. 그리고 주어진 틀 내에서 서로 싸우는 것이다.
이건 사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재야사학자들이 공부하면서 그들의 공부나 연구 영역은 이미 한정되어졌다. 그들 스승들에 의해 또는 주변 사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래서 그들이 보는 책이나 참고하는 것들이 대부분 강단사학자와 비슷하다. 단지 서로 중점적으로 보는 내용이나 해석하는 내용이 다를 뿐이지 결국 같은 책들을 들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책으로 싸우면 당연히 재야사학자들이 밀린다. 왜? 돈이 강단사학자들에게 가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권위도 그들에게 가니까. 그래서 재야사학자들은 일종의 사이비처럼 보이고 대학교수들은 뭔가 올바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치장을 했고 주변을 온통 그렇게 쳐발라 놓았으니까.
결과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은 새로운 안목을 가지지 못했다. 이것이 이들의 한계이다. 완전히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하는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그것이다.
대학에서 자기 스승들로부터 우리 역사에 대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그로 인해 이들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반박만 할 수 있었지 그 밖을 보는 혹은 밖으로부터 내부를 들여다 보면서 넓은 시각을 가지거나 혹은 새로운 뭔가를 찾아 발표하는 것이 부족했다. 이것이 바로 재야사학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한계이다. 이미 처음부터 놀아야 하는 운동장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