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3자 전쟁

시민사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By.

min read

againt

against

앞으로의 역사는 시민역사학자들에 의해 쓰일 것이다. 물론 이들이 직접 고대사를 바꾸거나 쓰는 것은 어렵다. 반대로 이들의 의견이 우리 즉 일반 시민들과 공유되어 우리에게 힘이 생기면 기존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 고대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혹은 우리의 자랑스런 과거를 되살리거나 우리의 미래를 더 자랑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써 가는 시민역사학자들이란 인쇄술로 무장했던 마틴 루터와 같다.

강단사학자들은 오로지 스승을 떠 받드는 일을 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스승을 거스르는 것만 한다. 스승이란 그들에게 똑같이 하나의 출발점이다. 그들의 밥줄이다. 앞에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이들이 싸우는 운동장은 정해져 있다. 바로 자기들 스승들 혹은 과거 일본놈들이 떠들어댄 얘기들이다. 소위 우리의 역사라고 이름붙여진 한국사이다. 그럼 그놈들이 떠들어댔던 우리 역사는 객관적인 유물이나 어떤 근거를 통해 검증되었나? 전혀! 아무런 검증도 없었다. 그놈들이 떠들어댔던 대부분은 모두 헛소리고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지껄여댔던 소설일 뿐이다.

그들이 백제의 수도가 어디였고 고구려 수도가 어디였다라고 말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하다 못해 고대 역사책에 쓰인 내용과 맞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 근거도 없이 백제는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신라는 저기에 자리를 잡았고 고구려는 여기에서 건국했다고 떠들어 댔다. 물론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조차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 갖다 짜맞추어 놓았다. 정말 아무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그냥 그게 여기라고 말하고 도장 찍고 그렇게 지금까지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은 이미 이렇게 떠들어 놓은 것들을 앞에 두고 그게 동쪽으로 50미터냐 서쪽으로 50미터냐를 놓고 싸워대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떠들어 댄 얘기가 진실이냐 아니냐는 말하지 않는다. 이미 진실인 것처럼 씌여 있으니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에서 조차 처음에는 일본놈들이 경상도 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전라도까지 넘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구체적으로 기문이 남원이라고 확정해서 말한다. 근거는? 없다. 아무 근거 없이 그냥 기문이 남원이란다.

프로세스를 보자.

기문이 남원이라고 책에 쓰고 논문 쓰고 발표한다. 그건 한 연구자가 연구한 연구의 결과로 기록되어 남는다. 즉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하루 아침에 진실로 둔갑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기다린다. 하지만 10년 후에 한국사를 연구하는 어떤 연구자는 기문이 남원이라고 써 있다고 인용할 것이고 그 출처는 바로 오늘 기문을 남원이라 비정한다고 한 그 책이나 연구가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문은 남원으로 확정이 되는 것이다.

일본놈들이 그리고 우리의 강단사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위조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 일단 여기가 거기라고 떠든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중에 그걸 인용하면 되니까. 하긴 여태까지는 이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일본놈들 얘기가 옳은 얘기라고 받아들여졌으니까.

이처럼 우리 역사는 완벽하게 일본놈들이 만들어 놓은 날조된 허구의 역사인데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아무런 비판도 없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야사학자들조차도 지역이 조금 더 넓으냐 좁으냐 조금 더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로 싸우고 있다. 그들도 정해진 운동장에 갇혀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승리는 거의 언제나 강단사학자들이다. 그들이 교수라는 타이틀로 믿음을 획득했고 관도 또 기업들도 모두 강단사학자들에게 돈을 주고 권력을 준다. 게다가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등의 기관에는 대부분 이들과 동일한 의견을 공유하는 그들의 동료 스승 제자들이 포진되어 있다. 재야사학자들은 이 사이에 낄 자리가 없다. 그들은 이방인이다.

지금도 과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배고팠고 친일하던 놈들은 배부르고 등 따시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똑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확실히 우리가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모든 일상에 너무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건 반드시 극복해서 모든 영역에서 반드시 친일파를 쳐내야만 하는 우리의 지상과제다. 반드시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

반대로 시민사학자들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 거리낄 것도 없다. 심지어 그들에겐 책임조차 없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연구하고 떠든다. 아니면 말고다. 그들은 자유롭다. 기존 주어진 전장에 서 있지 않고 또 그곳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밖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이 같은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을 때 시민사학자들이 그 운동장 밖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해 얘기한다. 그런데 운동장이 다르니까 그들이 얘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강단사학자나 재야 사학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삼한을 얘기할 때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모두 삼한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자리 잡고 있었고 어쩌고 떠든다. 그래서 어디 영토가 어땠느니 아니니 싸운다. 하지만 시민사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누가 삼한이 거기에 있었다고 말했나? 그건 일본놈들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누가 그걸 검증했나? 아무도 검증하지 않았다. 그냥 그놈들이 그렇다고 말해서 지금까지 그렇다고 믿고 떠든 것이다.

즉 시민사학자들은 이 기존의 학설 혹은 추론 혹은 헛소리를 출발점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삼한은 그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각각 마한 변한 진한이라고 부른다. 무슨 근거로?

이 지점이 바로 시민사학자들이 빛나는 지점이다. 그들은 근거를 찾아냈다. 그냥 과거에 일본놈들이 했던 것처럼 이것이 저것이다 라고 아무런 근거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책에서, 우리 조상들이 쓰고 중국이 쓰고 일본이 썼던 역사책들에서 그 근거들을 찾아내고 나름의 해석을 붙여 삼한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to be continued.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