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결국 과거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해석이다. 그리고 해석은 주관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역사란 절대로 진실이나 사실이지 않고 오로지 각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각 개인의 해석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해석 이전에 역사는 기록이다. 그 기록이 과연 객관적이고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할까? 우선 물리적으로 있었던 일을 있던 그대로 기록할 수 없다. 축구를 비롯 대부분의 운동 경기에는 수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유사시 그걸 확인한다. 즉 어느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어떤 일어난 일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당연히 다르게 기록될 수 있다. 문제가 있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고 그 판독이 끝나 심판이 판정을 하더라도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전쟁일지라도 전방에서 매일 총싸움했던 사람과 후방에서 술마시고 놀았던 사람이 경험했던 전쟁은 같은 전쟁일 수 없고 그 사건을 누가 기록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건을 기록하는 사람에게도 목적이 있다. 아무 목적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란 한 개인의 일기가 아니다. 역사란 매일의 자기반성이 아니다. 역사란 한 국가의 존립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대한 국가적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부끄러운 부분은 감추고 싶을 것이고 바꾸고 싶을 것이다. 즉 역사책을 쓸 때는 뭐랄까 일종의 애국심이랄까 아니면 국가의 이익이랄까 체면이랄까 뭐 이런 부분들이 당연히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에 대해 우리가 쓰는 기록과 중국이 쓰는 기록이 다를 수도 있다. 즉 완전 객관적인 역사는 쓸 수도 없고 쓰지도 않고 혹시 그렇게 누군가 역사를 쓴다면 혹은 썼다면 그 인간은 바보 멍청이일 것이다. 진실을 기록하는 역사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나의 자랑을 더 알리기 위해 역사를 쓰는데 나의 단점까지 시시콜콜 다 써대는 인간은 모자르기 이를 데 없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우리 자신이 바보라고 말하는 역사를 쓰는 인간들이 있다니, 아니 많다니, 아니 그런 인간들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다시 쓰고 있다니, 정말 천인공노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게 매국노가 아니면 누가 매국노인가?
일본놈들이 우리를 쉽게 지배하고 우리를 3류 시민으로 만들어 모지리로 만들려고 했던 역사를 그대로 물려 받아서 그걸 아직도 국가에서 쓰고 있으니….. 우선은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부터 부수어 버려야 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놈들을 다 묻어야 하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다시 써야 한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역사를 쓰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당연히 우리 모두의 이익이다.
왜 일본놈들이 그토록 일본서기라는 책에 목매며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얘기하고 왜 중국이 그렇게 공을 들여 동북공정을 비롯한 온갖 공정을 행하고 있는가?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역사가 진실이나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것이 진실이며 사실이라면 왜 사람들이 역사를 가지고 얘기할까? 역사라는 학문이 존재하는 자체가 기록된 역사가 진실이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해석되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란 말그대로 그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것이 왕이거나 군주일 수 있고 오늘날에는 한 나라의 역사를 관리하는 부서이며 나아가 국가 원수일 것이다. 하긴 지금 대통령이란 윤뚱뗑이와 그 가족은 벌써 수십년 전에 가져다 버렸어야 하는 온갖 비리를 한 가득 품에 안고 있으니. 그 주변에 있는 놈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고. 그들이 무슨 역사에 관심이 있을 것인가…
어쨌든 조선시대에 고려사를 쓴 이유는 무엇이고 고려시대에 삼국사기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왜 수많은 역사책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대부분의 역사책들이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조선시에 다시 쓰인 이유는 무엇인가? 뭔가 책에서 감추고 싶은 부분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역사책은 다시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상식적으로 우리가 쓴 우리 역사와 일본놈들이 쓴 우리 역사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이 그냥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서로 역사를 쓰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 가지고도 일본놈들이 쓴 역사를 지금 당장이라도 폐기하고 새로 연구해서 우리 목적을 담은 우리 역사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역사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읽힌다. 정권이 어떤 성향이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에 따라 역사는 새롭게 읽힌다. 그래서 일제시대 우리 역사를 읽는 방법과 오늘날 우리 역사를 읽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 왜? 정권이 다르고 정권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시민이 다르고 시민들이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단사학자들도 재야사학자들도 일본놈들이 써 준 우리 역사를 새롭게 읽지 않았다. 기존에 존재하는 서적에 대한 충분한 연구도 하지 않았다. 왜? 자기 스승이며 혹은 과거에 한국사를 새로 쓴 일본놈들이 이미 모든 판을 짜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해석해 놓았고 그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성서가 되었다. 우리의 역사는 조선사 편수회에 의해 친절하게도 잘 쓰였다. 감사해야 하나? 감사하는 놈들도 있지. 아니 많지.
어쨌든 시대가 바뀌었으니 역사도 새롭게 읽어야 한다. 물론 강단사학자놈들은 새로 읽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우리는 아직도 일제시대에 살고 있는 것과 똑같고 또 똑같아야 하니까. 그래야 그들이 현재 있는 그 자리에 대한 정당성이 유지되니까.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선사편수회에서 써 준 역사를 지켜야 한다. 그게 그들의 밥줄이다.
하지만 재야사학자들은? 그들은 왜 거기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 역사를 우리 시대에 맞게 다시 읽고 다시 연구하지 않고 자기가 배운대로 그 안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 이미 얘기했던 정해진 운동장에서.
물론 재야사학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자체가 별로 없고 또 당장 배가 고프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끝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나 깔아 놓은 판에서 벗어나려 하지는 않았다.
사실 대학이란 평생 살아야 하는 터전이다. 내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나왔다는 것은 내가 사회에 진출해서 어떻게 살아갈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래서 대학교수는 중고등학교의 선생님과 다르다. 혹시라도 중고등학교 선생님과 마찰이 있었더라도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선생님 두 번 다시 보지 않더라도 인생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일반적인 학과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특별한 학과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정말 평생을 간다. 왜냐하면 사회에 나가서 계속해서 자기 스승과 또는 동문과 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관계로부터 피할 수 없다. 혹시라도 여차하면 정말 내 인생이 통째 빗나갈 수도 있다. 이게 대학이다. 대학은 졸업해서 죽을때까지 항상 스승과 동문으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자기 스승을 거부하고 반기를 드는 것이 쉽지 않다.
아마도 오늘날 한국사를 배우는 수많은 전공 학생들이 일본놈들이 써놓은 우리 한국사가 잘못되고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스승이 그렇게 가르치면 따라야 한다. 잘못 반발하면 인생이 아작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이유도 재야사학자들이 보다 근본적인 반발을 하지 못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