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 시민사학자들과 넓어지는 지평

시민사학자들의 관점은 기존 강단사학자나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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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학자들의 등장은 정말 우리 역사를 제대로 된 길로 이끌 희망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몰랐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고 서로 서로 확인하면서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뭉치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이들의 연구와 세가 서서히 확산되다가 유튜브를 타고 본격적인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모두 이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이들의 존재 자체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또 알려 지더라도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들은 아마추어였으니까. 프로와 아마추어는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하지만 시민사학자들의 연구는 생각과는 매우 달랐다. 이들은 그냥 단순히 역사에 취미가 있어서 심심할 때 한자나 몇 글자 찾아보는 수준이 아닌 정말 한자 전문가들이었으며 또 이들이 보는 책이나 자료는 한국어로 번역된 것들이 아닌 원서였고 특히 이들의 관점은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운동장 바깥에 서 있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론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강단사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무시하면서 한편으로는 더더욱 강력하게 반발했다. 시민 사학자들의 연구가 더 확장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면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 있게 될 것이므로 이를 차단해야 할 것이며 막상 공격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편으로는 깔보면서 그들은 그냥 취미로 역사책 몇개 뒤적이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 무시했고 자기들은 전문가라 저들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저들의 논리가 확대되어 그들의 영역을 침범할까 노심초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재야사학자들도 영향을 받았다. 사실 시민사학자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생긴 매우 큰 소득 중 하나가 바로 재야사학자들이 변화를 시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민사학자들의 폭넓은 연구는 재야사학자들을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등장으로 재야사학자들은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자기들의 전장터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뛰쳐나온 사람도 있고 또 아직도 그 내부에서 싸우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이 재야사학자들이 워낙에 자기들 스스로 자기들 영역에 취해있기 때문에 쉽사리 운동장을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시민사학자들의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우리 역사 범위를 매우 넓혔다는 것이 될 것이다. 강단사학자들은 우선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백제가 매우 늦게 건국해서 별 볼일 없이 찌질이 노릇을 했고 백제와 신라 모두 한반도 남쪽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고 고구려는 북쪽과 약간의 만주 지역을 차지했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재야사학자들의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 단지 조금 더 넓게 우리의 영토를 그리려 했지만 사실 재야사학자들이 그렇게 활발하게 연구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그들도 각각 나름대로 연구를 했지만 그것들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이 한반도에 머무는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시민사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이들의 관점과 다르다. 대부분의 시민사학자들은 강단사학자나 재야사학자들처럼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에서 찾지 않고 한반도 바깥, 특히 저 북쪽과 중국의 동쪽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연구한 내용을 발표한다. 그걸 누구에게 심사하라고 요청하지도 않고 학술 연구라는 이름으로 학회지에 게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그리고 그들의 발표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지지자가 되는 것이고. 이런 방법으로 그들의 이론들이 일반인들에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역사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일단 연구란 크게 논문과 책을 통해 발표한다. 그리고 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학교수들이다. 그리고 관련있는 영역에 존재하는 연구소들, 특히 역사 같은 경우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역사기관들의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발표한다.

연구의 발표는 기본적으로 논문이다. 논문은 주로 학회지를 통해 발표된다.

어떤 주제 혹은 연구 분야에 대한 학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사를 연구하는 곳은 한국사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사연구회 등 수많은 한국사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기관들이 있다. 이 기관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각 전공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그 제자들과 정부기관 연구원들이 학회에 가입하고 자기의 연구를 그들이 출판하는 학회지 혹은 학술지에 게재한다. 각 학회는 적게는 1년에 한권 많게는 1년에 6권 이상까지 학술지를 출판한다. 그리고 각 학회에 참가하는 회원들은 학회지에 자신의 연구를 투고할 수 있으며 일정 심사를 거쳐 게재를 하게 된다.

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심사다. 누가 심사하나? 각 학회는 학회 논문 심사위원들을 두고 있다. 물론 학회 회원들 중에서 임명한다. 당연히 주로 대학교수들이다.

여기에서 왜 대학의 한국사 연구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지 그 이유가 나온다. 바로 심사 때문이다. 심사를 통해 심사위원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논문들은 게재가 되지 못한다. 즉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더라도 발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발표되지 못하고 공유되지 못하는 논문은 아무 쓸모가 없다. 게다가 논문을 발표하지 못하면 대학교수가 될 수 없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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