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 공유의 확대

학자들은 논문를 쓰고 그걸 학회지에 발표하려 한다. 그게 발표가 되려면 심사라는 과정을 거쳐 정해진 운동장에 적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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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를 다시 한 번 보자.

보통 대학교수들은 1년에 정해진 분량 이상의 연구 성과를 성취해야 한다. 그 가장 기본이고 핵심이 바로 논문 발표이다. 그래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도 또 교수가 된 이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연구를 하고 보통 1년에 두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다. 만일 논문이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연구를 인정받을 수 없고 그러면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를 보면 왜 강단사학자들이 대부분 식민사학자들인지 쉽게 이해가 된다. 대학교수가 되려면 연구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만일 관점이 식민사학이 아니면 연구 실적을 쌓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아무리 새롭고 훌륭한 연구를 해서 논문을 발표하더라도 그것이 학술지에 게재되어 출판되지 않는 한 그건 연구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 연구가 인정받아지기 위해서는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식민사학자들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기존 대학 사학과에서 한국학을 하는 교수들은 많은 수가 식민사학자들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알까? 자기들의 연구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아마 아는 교수들도 있고 모르는 교수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구를 번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괜히 찍히면 자기만 여러 모로 불편해지니까. 물론 노선을 바꾸는 교수들도 있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고 보면 될까?

이런 이유로 연구와 그 연구의 공유자체가 최근까지 막혀 있었다. 아니 끼리끼리만 진행되고 있었다. 어차피 연구에 필요한 능력과 자료와 관점 중 능력은 그렇다치고 자료는 자기들이 보던 자료만 계속해서 울궈 먹으면 되고 관점이야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그런데 이런 정해진 운동장이 밖으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민사학자들의 등장에 의하여. 아마도 기존의 사학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의 능력을 갖추었고 자료는 오히려 시민사학자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강단사학자들은 굳이 다른 책들을 볼 필요 자체가 없다. 다른 책을 본다는 것은 아마도 불경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그들이 해야 하는 연구의 영역은 확정돼 있었으니까. 게다가 뭔가 자기들 의견과 다른 책이 있거나 하면 저건 위서야 거짓말이야 역사책으로써 가치가 없어 그리고 버리면 됐다. 그럼 기자들부터 시작해 모두 동일한 내용을 한번 뒤풀이 함으로써 그 새로운 발견은 그냥 헛소리가 되고 위서가 됐다. 그러니까 기존 사학자들은 아주 편하게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고 논문을 막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게 강단사학자들이다.

그리고 거의 동일한 능력과 자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로 약간은 서럽게 살던 사람들이 재야사학자들이었다. 단지 이 둘은 결과만 반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같은 운동장에서 놀되 노는 부분이 서로 다를 뿐 결국 같은 곳에 항상 함께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시민사학자들의 세가 불어나고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이 시민사학자들은 정해진 운동장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 운동장을 정한 것이 불손한 목적을 가진 일본놈들이었고 매국노들이었기 때문에 그 운동장 자체를 거부하고 다 무시한 상태에서 새로운 판을 짰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우리 역사는 이 시민사학자들에 의해 시작된다고 보아도 된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일제시대의 모든 한국사를 싹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이 시민사학자들이 시작한 연구를 정통으로 만들어 그걸 심화 연구하면 그게 우리 역사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독립운동 때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던 때 독립운동 단체가 거의 7000개나 됐었단다. 이걸 또 어떤 사람들은 단합이 안된다고 얘기하겠지. 하지만 이건 단합의 문제가 아니고 너무나 똑똑한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3.1운동 때 발표된 독립선언문을 내팽개쳤다. 왜?

여기서 잠깐 독립운동 시절로 가보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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