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독립과 미국의 진입

미국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최소한의 공부라도 좀 하고 들어와서 우리가 스스로 잘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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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했나?

우선 우리가 어떻게 독립하게 되었는가를 보자.

우리의 독립이 처음 언급된 것은 1943년 미국 영국 중국이 참가한 카이로 회담을 통해서이다. 이때 전세는 이미 기울었고 연합국이 승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이 회담에서 특히 영국의 입장이 문제가 되었다. 영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인도나 버마 등을 계속 지배하기 원했다. 그래서 문서로 확실하게 여러 나라들이 독립되는 것에 사인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 때문에 우리의 독립에 대한 내용도 논의될 수 없었다.

앞에 한 번 얘기한 것처럼 우리 독립이 논의된 것은 장개석에 의해서이다. 물론 장개석이 자신의 땅을 제대로 지키고 빼앗겼던 곳을 찾으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장개석은 무엇보다 한국인에 대한 일종의 존경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아시아 모든 국가를 지배하는 동안 누가 가장 격렬하게 투쟁했는가? 우리였다. 중국의 5억이 넘는 인구는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겨우 2000만의 인구로 안중근 의사를 비롯 수많은 한국인들이 목숨을 버리며 일제에 항거했고 수많은 투쟁을 하며 우리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장개석은 이 한국인의 기개에 매우 큰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자기들이 정부를 옮기며 이사다닐 때 김구 선생도 항상 함께 모시고 다녔다. 그리고 카이로 선언에서 영국 때문에 한국에 대한 독립이 어려워지자 루즈벨트를 설득해 독립을 얘기한 것이 바로 장개석이다.

그 이후 포츠담 회담을 통해 신탁통치라는 일정 기간을 거쳐 한국을 독립시키는 것이 결의되었고 결국 남과 북에 소련과 미국이 진주하여 5년 이내에 독립국가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동아일보의 오보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내용은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미국이었고 또 그 신탁통치도 5년 이내 나라를 제대로 갖출 때까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국내의 모든 파벌들이 분리되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신문에서 그냥 덮어놓고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제 소련과 미국의 지배로 들어간다는 것처럼 보도함으로써 극렬하게 좌우가 나뉘게 되었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이는 남북이 분단되는 사건으로 귀결된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남북 분단의 시작은 이승만부터이다. 그러고 어떤 면에서 보면 해방 이후 우리 정부가 생기는 1948년부터 이승만이 실각하는 1960년까지 우리 현대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슬픈 사건들이 결국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1946년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정부를 조직하자고 강조했고 결국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정부를 세우며 나라는 갈라지게 된다.

물론 이때 남으로 들어온 미군이나 북으로 들어온 소련군이나 모두 해방군이었다. 그리고 이들 미군이나 소련군이 들어오기 이전에 여운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작업을 통해 전국에 건국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 독자적으로 이미 사회질서가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흔하게 생길 수 있는 약탈 같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련은 이 단체가 행동하는 것을 거의 문제삼지 않았지만 미국은 이 단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처음부터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에 대한 신탁통치를 시작했다. 미국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고 들어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건국준비위원회의 행동강령은 세 가지였다. 대동단결하여 일본을 쫓아내고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 조선의 완전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세력을 박멸한다. 민주주의적 대중의 해방에 치중한다. 이런 생각으로 나라가 유지되고 있었고 아무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 해체시켰고 이들이 한 가장 첫번째 일은 숨죽이며 숨어있던 친일 부역 공무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일본을 쫓아낸 후 우리에게 생긴 첫번째 불행이 이렇게 시작된다. 정말 모조리 다 잡아 죽였어야 할 인간들이 마치 바퀴벌레들처럼 스멀스멀 기어나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사람들에게 호령을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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